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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발전소 : 찌릿찌릿 맞춤법 ㅣ 상식발전소 시리즈 3
우연정 지음, 이국현 그림 / 소담주니어 / 2010년 12월
평점 :
초등 3학년에 올라가는 딸아이의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2학년 2학기에 수시로 평가했던 받아쓰기 급수장이 나왔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아무데나 던져놓았기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급수장이 요즘 끝간데 모르고 추락하는 우리말 신세랑 비슷한 거 같아 쉽게 버리지 못하고 한 번 더 들춰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시험은 쪽지시험이라도 부담되기 마련이니 받아쓰기 시험도 아이들 입장에서 결코 반갑지 않은 존재였으리라. 내가 보아도 헛갈리기 쉬운 단어가 너무 많아 힘들어 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아이들과 만날 기회가 잦은 나로서는 아이들이 쓴 글씨를 보면서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는 차지하고라도 맞춤법이 틀린 글씨가 너무 많아 한숨이 나올 때도 많다.
우리 안에 담긴 수많은 생각을 말로 표현하면서 그것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되는대로 내뱉거나 글로 썼을 때 그 결과까지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모를까, 한마디 말도 허투루 뱉거나 쓸 수 없는 건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말하지 않고, 직접 종이에 글을 쓸 기회가 적을 뿐 더 많은 말을 기계를 거쳐 하게 만드는 세상을 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하기에 그 파장은 실로 대단하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말이 이토록 의도적으로 본질을 훼손하거나, 세계화의 흐름에 발맞춘다는 명목 하에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진짜 세종대왕이 본다면 얼마나 통탄하실까. 정말 무덤을 박차고 나오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탄생한 우리글이 오히려 지키고 보호해야 할 존재들로부터 훼손되고 박대 받을 때 그 민감한 시작을 감지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이따금씩 학교 도서실에서 우리말 달인이나 맞춤법에 대한 책을 보면서 나 역시 아이들보다 몇 개 더 알고 있을 뿐 ‘오십 보 백 보’라는 것을 자각하고는, 나와 같은 세대가 받았던 교육과 현재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아하, 이렇게 쓰임이 다르구나.’, ‘이건 이렇게 써야했구나.’라는 걸 책을 읽으면서는 모두 알 것 같으면서도 뒤돌아서면 잊고 마는 훌륭한 망각능력 덕분에 늘 새로운 것을 대하는 것과 같은 책 중의 하나가 바로 맞춤법 책이 아닐까?
그럼에도 희망적인 건 6만 자나 되는 한문처럼 글자 한 자마다 뜻을 담고 있는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글은 소리글자라 얼마든지 글로 쓰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맞춤법이 왜 필요한지, 소리 나는 대로 쓰지 못하고 정해진 글자로 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알게 되면 우리말과 글을 더 존중하면서 아름답게 지켜 가는데 모두가 노려갈 것이라 생각한다.
「찌릿찌릿 맞춤법」에서는 소년으로 환생한 세종대왕이 맞춤법 꽝인 소남이와 영어가 최고라는 라라와 함께 평소 자주 사용하면서 틀리기 쉬운 단어를 대상으로 맞춤법 강의를 해준다는 재미있는 상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에서 품앗이를 하는 고학년 아이들과도 퀴즈 형식으로 책에 나온 문제를 내보니 역시나 맞는 것보다 틀리는 게 훨씬 많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것에 대한 기쁨과 평소 모르고 지냈던 말의 의미, 생각 없이 아무데나 붙여 오던 말에 대해 알게 되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며 매 시간마다 하자고 졸라댔다.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정공법으로 아이들 앞에 다가서면 고리타분하다며 싫어하는데, 재미있고 이해되기 쉬운 예화를 만화로 보면서 ‘맞춤법 강의’를 읽으니 호감도가 훨씬 높아졌다. 자신들이 평소에 사용해왔던 말들 중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국적불명의 단어나 헷갈리던 대상을 직접 다뤄주니 더 피부에 와 닿았던 모양이다. 부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제대로 된 말과 글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