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 스물여덟 명의 아이들과 함께 쓴 희망교육에세이
고정원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해를 참 바쁘게 살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의 흐름이 감당이 되지 않는다던 어른들 말씀을 실감하며 사는 요즘, 크리스마스와 2010년의 마지막 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얼떨떨한 기분이다. 잠시 올 한해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칭찬받을 수 있을 만큼 잘 한 일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 금방 생각나는 게 있다. 바로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1년 간 수업시작 전에 책읽기 봉사를 한 일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배치된 학급을 찾아가 15분에서 20분간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 책과 함께 아이들과 만나는 게 얼마나 즐겁고 보람된 일인지 아마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이 내가 읽어주는 것을 싫어하지 않을까, 많은 아이들이 읽은 책이면 어쩌나, 학년별로 어떤 책을 선정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아이들은 정말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또한 책을 읽어주는 사람에게도 많은 애정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내 경험과는 별도로 독서에 관한 어느 조사에서 저학년 때 정말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5%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고학년이 되었을 때 책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이 5%정도에 그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경쟁위주의 지나친 학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런 부담 없이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책 속 주인공이 되는데 걸림돌이 없던 아이들에게 책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 책이라면 만화책도 싫다고 외치는 아이로 만드는 요즘의 교육 현실은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문제 있어 보인다.

위와 같은 이유로 책과 친하지 않은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나 중학생 아이들에게 책을 매개로 해서 다가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는 많지만 독서 수준은 형편없이 낮고, 그런 자신들의 처지를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들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쉽게 보이는 그림책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책을 보여주며 반감이나 선입견을 심어주기보다는 책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단계별로 적용해가는 것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역사회교육전문가로 활동하는 고정원 선생님이 책과 함께 만난 아이들과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는 어리지만 어른들보다 더한 고통과 삶의 무게로 허덕이는 청소년들이 고정원 선생님을 통해 책과 소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책을 읽다보면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청소년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좀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주려고 노력하는 선생님의 모습과 아이들에게 다가서는데 좋은 책을 찾고자 무척 애를 썼다는 게 느껴지는 책 이야기, 그 책들을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북아트로, 연극으로, 사진 작품집 등으로 만들어내며 성취감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성공’이라는 게 저마다 정한 크기와 정도가 다르기에 ‘요만큼’ 이루면 성공했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고, 그 성공에 꼭 ‘책’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우리가 얻는 위안과 지식이 저마다 다르게 측량하는 ‘성공’에 한 몫을 담당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요리사라는 꿈을 찾게 된 성훈이에게도, 왕따를 당하며 위축되었다가 작은 무대에 서면서 자신감을 찾는 승희에게도, 길고 진한 외로움 때문에 단짝 친구와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어 했던 유진이에게도 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선생님이 만난 아이들 중 일부는 과거의 반항기나 어두운 모습을 버리고 자랑스럽게 홀로서기에 성공한 아이들도 있고, 선생님과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까움만을 자아내게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선생님이 느꼈을 기쁨이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책에서 묻어나 여러 번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나 역시 책과 함께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마음처럼 쉬이 아이들에게 다가서지 못해 늘 만족하지 못한다. 책을 한 권씩 선정할 때마다 즐겁게 책 속 이야기에 빠지기보다는 이해의 정도나 삶과 접목했을 때 문제 해결력에 더 큰 비중을 두었을 뿐이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프게 알고 있는 독서지도 방법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고 나를 점검해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과 함께 하는 인생의 즐거움을 이미 맛본 나이기에 이러한 기쁨을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나와 함께 책으로 만나는 아이들은 공부의 연장선보다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고정원 선생님과 아이들이 ‘매그넘 코리아’ 전시회를 보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진 찍기로 사진집을 만든 것처럼 나도 아홉 살인 딸아이와 열 살 조카를 데리고 늘 보아왔던 ‘우리 동네’를 사진 찍어 책을 만들어 보았다. 아이들이 자라 자신들이 살았던 곳을 떠올릴 때 지금 만들어본 책이 소중한 기억이 되고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다행히 딸도 조카도 무척 재미있어하며 앞으로 2권, 3권을 계속 만들겠다고 한다. 1권은 우리가 살고 있는 빌라 단지 내에서 보이는 것만을 찍었지만, 2권과 3권에서는 ‘학교 가는 길’과 ‘교회 가는 길’, 계속해서 한다면 계절별로도 한 권씩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직접 책을 만들며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동네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어린 시절(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린)을 떠올리는 딸아이의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