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여턴 스프링스 이야기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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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로 잘 알려진 작가 앤디 앤디루스의 고향인 ‘소여턴 스프링스’가 작가의 기억 저편에서 떠올라 「소여턴 스프링스 이야기」로 우리 앞에 선보였다. 특별한 기억이 없어도 ‘고향’ 하면 푸근한 느낌과 함께 마음이 넉넉해지는데, 앤디 앤디루스는 고향에서 어떤 에너지를 공급받아 지금의 그가 되었을까 궁금했다.

작은 마을이기에 이웃 간에 모르는 일이 없어도 일주일에 한 번 발행되는 마을 신문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읽거나 이웃의 이야기를 읽으며 기뻐하고 슬퍼하는 곳, 불시착한 도회지의 세련미 넘치는 부부가 피크닉에 초대되어 낯설음 없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곳, 월척과 함께 구입한지 얼마 안 된 낚시 보트가 물속에 가라앉아도 친구가 있고, 그 친구로 인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소여턴 스프링스다. 극적인 이야기라곤 전쟁 때 떨어진 포탄이 수십 년간 나무에 걸쳐 있다가 어느 날, 그 나무 아래를 청소하던 이의 머리에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사건뿐이지만, 이곳 소여턴 스프링스가 앤디 앤디루스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그가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책을 읽다가 내 고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태어나서 2년을 살았다는 전라도 정읍의 한 작은 마을은 저수지가 된지 오래여서 물 가운데 삐죽 올라와 아직도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내는 소나무가 없다면 그곳이 뭍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도시를 순례하듯 살았던 10살 이전의 기억은 가물거리기만 하니, 내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능앞’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중심 부분엔 보호수로 지정되긴 했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1000년 넘게 산 향나무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는 이곳에서 빨래를 했다. 여름이면 동네 개구쟁이들은 물뱀을 잡아 꼬맹이들을 놀려주기도 하고,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사랑방 앞쪽의 넓은 마당엔 온 동네 아이들이 해 떨어질 때까지 노느라 늘 시끌시끌했다. 취미도 참 거시기해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터울이 많이 나는 막내 동생을 돌보며 동네 꼬맹이들 귓밥 파주고 손톱 깎아주는 게 낙이었고, 상당히 큰 종이박스 안에 동그란 딱지를 가득 모을 만큼 딱지로 하는 게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농사짓던 동네 어른들을 도와 딸기도 따고 고추도 따고 고구마도 캐며 농사일을 거들면 어리다고 홀대하지 않고 서운치 않게 먹거리를 나눠 주시던 거며, 봄이면 논두렁 여기 저기 피어난 제비꽃을 한 아름 꺾어 좋아하던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던 생각도 새록새록 난다.

이만하면 나의 고향은 앤디 앤디루스나 어느 소설가, 시인의 고향처럼 아름답고 풍요롭진 않더라도 빈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딸아이가 커서 과거를 추억할 때 고향에 대한 소중한 기억 한 자락 남지 않을 것 같은 지금의 삭막한 풍경에 마음이 오그라든다. 고향이라는 게 늘 생각하지 않더라도 치열하게 살다가 잠시 안주할 수 있는 휴식처가 될 수 있는 마음의 재산인데,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고향에 대한 추억을 심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이 서른을 넘기고 딸아이가 태어난 후 쭉 위와 같은 주제로  생각이 많았었다. 결혼 전이나 아이가 없던 2년여의 신혼기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 넘치게 많은 재물이나 뛰어난 재주를 욕심내 본 일 없이 평범하기만 했던 내가 아이가 생기고 나선 욕심이라는 게 생겼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욕심이...

아이가 세 돌 무렵, 목적기가 걸어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곳이라면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듯이 온 동네를 다녔다. 이렇게 다니면 남편의 차를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알 수 없었던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작지만 눈물겹게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인 바람과 꽃, 물, 나무를 보기도 하고, 너무도 불편한 인도나 지저분한 뒷골목과 개성 없이 지어진 아파트나 빌라 단지를 지나면서 문득 내게 온 생각.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 고향을 생각한다면 어떤 모습을 그리게 될까?’

조금이라도 더 정겹고 아름다운 모습을 심어주고자 미술관, 도서관, 공원, 축제에 참 많이도 다녔다. 100여 가구가 채 안 되는 빌라 내에서 동네 엄마들과 힘을 모아 아이들이 주인공이 된 ‘꾸러기 장터’도 지난 2년간 개최해 아이들 용돈도 벌어보고, 함께 기부도 해보았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에겐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이 그저 놀이처럼, 일상처럼 생각될 테지만, 먼 훗날 이 기억들이 아이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둥 하나가 되어 줄 것을 믿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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