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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마냥 순진했던 10대 때 처음 만난 이외수 님의 소설 ‘꿈꾸는 식물’을 읽다가 포주의 등장과 난폭한 장면들이 비위에 거슬려 ‘이외수’라는 작가를 별로인 작가로 치부했었다. 그러다 이외수 님의 빛나는 팬인 남편을 만나면서 조심스럽게 그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결혼 전까지 중단편 모음집인 ‘자객열전’을 시작으로 ‘황금비늘’, ‘벽오금학도’, ‘들개’, ‘칼’, ‘내 잠속에 비는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 수첩’, ‘감성사전’등을 읽었고, 결혼 후에는 나도 남편처럼 작가의 팬이 되어 신간이 나오는 족족 한 두 권씩 사서 읽고 모으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안타까운 건 ‘장외인간’이나 ‘괴물’등 2000년대 이후에 출간된 책에서 과거에 ‘이외수’ 하면 느껴지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빠진 것이다. 가벼워진 것도 같고, 무뎌지기도 한 것 같은... 남편과 이를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 역시 바뀌지 않겠냐?’며 서로 아쉬운 마음을 주고받은 후에도 화가 정태련 님과 함께 만든 책을 하나씩 사서 책꽂이에 꽂아 놓고 보는 즐거움은 여전하다.

책장을 들추면 옛날 즐겨 씹던 껌 ‘이브’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넉넉한 여백과 짧은 글을 빛나게 하는 세밀화가 빽빽한 줄글만 있는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을 언제 다 읽나 하는 부담도 없고,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읽어야할 필요도 없다. 읽으면서 ‘맞다, 맞아!’하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그저 그렇게 흘려보는 부분도 있다. 책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작가의 삶에서 보여주듯, 책에도 고스란히 옮겨 나보다 한참 젊은 정신을 소유한 청년이라는 사실에 부러움이 한껏 든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행동해도 모두 다 본이 되는 경지에 오른 사람처럼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일들을 별 기교도 없이 거침없이 써내려간 글들이 순간순간 감동을 주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 나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냥 흘려보냈지만, 작가는 그 순간들을 글로 남겨 ‘순간’의 시간을 ‘영원’으로 옮겨 놓아 다시 생각하고 깨달을 기회를 준다.
남편과 함께 소생법, 생존법, 비상법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짧은 단상들을 모아 세 권의 책을 연달아 출판했기에 우스개 소리로 ‘요즘 이외수 작가는 돈을 좀 쉽게 버는 것 같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작가의 과거 작품들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글들 역시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 부부는 이외수 작가의 빛나는 팬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