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 최인호 동화집 ㅣ 처음어린이 9
최인호 지음, 이상규 그림 / 처음주니어 / 2010년 2월
평점 :
한 권에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상중하로 쓰는 작가들은 참 힘들겠다 생각한 일은 있지만, 이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분이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분량의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는 게 어렵다는 말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겨울 나그네와 고래 사냥 등을 쓰신 작가 최인호님이 동화를 쓰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려워서 못썼다는 게 괜한 엄살처럼 보였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라는 동화집을 내셨다는 광고를 보고 관심 갖고 있었는데, 직접 읽어보니 그 말씀이 이해된다. 아이를 아이 입장에서 보지 않고 어른 입장에서 ‘작은 어른’으로 보기에 아이들로 하여금 쉽게 감동을 줄 수 없고, 때문에 동화를 많이 쓰지 못했다는 작가의 말씀은 지금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역시 다르지 않음을 알게 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그 피곤하고 혼란스럽고 외로운 ‘어른’이 왜 되고 싶을까? 딸아이는 문방구 앞에 놓인 싸구려 뽑기를 하루에 백 번씩 하기 위해서, 불량 식품을 원 없이 사먹고 싶어서, 절대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안자고 책 읽기 위해서, 아무 때나 늦잠자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동화집 안의 도단이도 엄마의 잔소리들 즉, 학교에 가지 않고, 공부도 안하며,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오락실도 맘껏 가는 등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해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어른이 되면 정말 이렇게 많은 것들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을까? 우리 어른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그래서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지 못한다. 지나간 것에 대한 향수로 아이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보니 부족한 것은 많았어도 어릴 때가 훨씬 즐거웠는데, 지금 딸아이를 비롯한 아이들도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을 테지...
동화집이라 서로 다른 이야기가 여러 편 실려 있을 줄 알았는데, 도단이라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여 도단이가 겪는 여러 가지 일과 상상, 꿈들로 이루어져있다. 늘 피곤해 하는 아빠와 성적이야기 외엔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엄마에겐 도단이가 꽃을 가꾸고 노래를 불러도 관심 밖이다. 멈추어지지 않는 딸꾹질로 힘들어하던 도단이, 나쁜 마음을 먹어 말을 거꾸로 하는 도단이, 아빠 옷과 신발, 모자를 쓰고 어른 흉내를 내는 도단이, 어린 시절 한 번쯤 상상해보았을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왠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건 작가 최인호 선생님이 전문 동화작가가 아니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어른들이 어떻게 해서 어른이 된 건지 모르듯, 지금 자라는 아이들도 어떻게 어른이 되가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책임져야 할 일이 있고,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규율의 폭과 감당해야할 사회적 몫이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다. 이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도록 좀 더 여유로운 마음을 지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현재를 맘껏 즐기며 밝게 웃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