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말들
박이문 지음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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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시(詩)가 죽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이었던 8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고 쓰기도 했는데, 요즘엔 나부터도 시집을 찾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왜일까? 유치환님의 ‘바위’를,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과 ‘알 수 없어요’를, 김소월님의 ‘초혼’을 윤동주님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줄줄 외우고 다닐 만큼 시를 좋아했고 주변의 모든 현상과 사물을 시처럼 생각했던 그 시기가 어느 날 갑자기 내게서 사라져버린 것은...

이유는 나 자신의 내적인 이유와 문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외적인 이유가 같이 존재했겠지만, 가볍고 얇은 책속에 진중한 무게가 있는 시집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우연히 지역 예당의 아카데미 강좌에서 시인 강사로부터 문학 수업을 듣게 되면서부터다. 화려한 언변은 아니지만 단아한 이미지와 진솔한 말씀은 같이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잊고 살았던 시에 대해 다시 관심을 돌리게 되어 박이문님의 「부서진 말들」이란 시집을 읽게 되었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바스라질 것 같은 마른 나뭇잎 하나가 놓인 표지에 ‘부서진 말들’이란 시집의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를 이루는 ‘말’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았다. 왜 ‘부서진 말들’일까? 이젠 누구나 자기 말만 하고 들으려하지 않기에 누군가의 귀로 흘러들어가 머리와 가슴을 움직이지 못하고 허공에서 맴돌다 먼지처럼 부서지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그랬을까?

시집을 펼쳐보니 크게 inside, outside, side by side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내면에서 바깥으로 그리고 함께 하는 것이 인간세상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교수이며 시인인 박이문님은 삶 전체가 이미 시다. 시의 소재로 특별히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전반적인 생활 자체가 다 시의 소재가 된다. 비가 내리든, 바람이 불든, 눈이 내리든 창을 끼고 보는 바깥 풍경은 마치 그림엽서처럼 평온해 보이진,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창문 너머’에서 그리고 있다. 길고 긴 여름의 흔적은 자취를 감추고 이제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텅 빈 정원 의자들’,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사물을 그 사물 자체로만 보지 않음으로 보이는 것을 앞에 두고 그 내면의 것을 보려고 하거나 보이는 것을 보지 않으려 하는 묘한 심리가 담긴 듯한 ‘보느냐, 보지 않느냐’ 등 시인의 눈과 머리와 마음은 이 세계가 온통 시로 인식하는 듯하다.

제목처럼 서정적인 느낌은 없는 이 책을 처음엔 일상의 모든 순간과 주변의 물질을 시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쓰신 글 속에서 한 박자 쉬고 천천히 걷는 듯한 여유로움이 느껴져 기차를 타고 갈 때 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눈으로 쫓듯 읽어 나갔다. 하지만, side by side에서는 세상을 향한 사유와 시가 표현 할 수 있는 분노, 인간들에 대한 절망에 한껏 움츠러들게 만드는 쐐기 같아 편치 않은 시집이었다.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시를 쓰고 계신 박이문님. 시에 대한 사랑과 나와 주변, 세상을 사랑하는 게 느껴지는 「부서진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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