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목골 빨강머리 루비
루스 화이트 지음, 이혜선 옮김 / 봄나무 / 2009년 10월
평점 :
지금 사는 곳에서 천국을 찾아본다면 빨강머리 루비가 사는 ‘오목골’이 되지 않을까?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오목하게 들어앉아 있다고 해서 ‘오목골’인 이곳은 1700년대 영국인 탐험가에게 처음 발견된 후, 그를 따라 정착한 사람들의 후예가 살고 있는 곳이다.
1944년 6월의 어느 새벽, 법원 앞에 버려진 빨강머리 아이를 탐험가의 마지막 후손인 아뷰터스(여관 루스트의 주인)가 맡아 기르는 것을 시작으로 오목골의 약국과 이발소, 철물점, 병원, 은행, 우체국 등 작은 마을 안의 구성원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책,「오목골 빨강머리 루비」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간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이가 버려지면 사회복지시설부터 찾는 것이 수순이겠지만, 아뷰터스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돌보는데 망설임이 없다. 발음도 부정확한 어린 아기일 때 마을로 왔기 때문에 ‘루비’라는 이름 하나만 기억할 뿐인 빨강머리 소녀가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나 일가친척이 없어도 넘치는 사랑을 받고 밝게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관 루스트의 장기투숙객 중에는 수년간 단 한 페이지의 글도 쓰지 못한 작가와 돈 없이 ‘우아함’ 하나만 남은 미망인이 있으나, 이들에게 농담으로라도 비아냥거리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병원의 의사 부부는 진료비를 부당하게 책정하는 경우는 절대 없을뿐더러, 하나밖에 없는 병원 문이 닫힐까봐 걱정한 주민들은 병원에 손님이 뜸하다고 하면 회의를 해서 돌아가며 정기검진을 받으러 다닌다. 약국에서는 딱한 사람들에게 약값을 받지 않거나 헐값에 넘겨 늘 적자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
루비의 열세 살 생일을 앞둔 어느 날, 이웃 마을에서 장난감 권총을 들고 은행을 털러 온 강도가 돈 한 푼 훔치지 못하고 위협 당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오히려 그가 처한 딱한 형편을 위로받고 오목골에 와서 정착을 한다. 그에겐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빨강머리 루비를 보곤 ‘표범에게 잡혀간 아이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란 소리를 듣고 난 후부터 루비는 자신에게도 가족이 있을 것이란 기대와 10년 넘게 오목골에서 행복하게 살아온 날들을 포기하게 될까봐 마음이 복잡하다.
용기를 내어 가족을 찾는 노력 끝에 루비가 얻게 된 것은 괴팍한 할머니와 자신에게 할머니 돌보는 일을 떠넘기려는 삼촌 가족뿐이다. 하지만 루비는 타고난(어쩌면 오목골에서 얻은) 따뜻한 마음과 오목골에서 받은 사랑의 힘으로 할머니를 깊은 숲속에서 이끌어 내 오목골로 함께 오게 된다.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는 동안 루비가 아기일 때 오목골에 오게 된 신비한 이야기가 아뷰터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루비에게 닥친 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생긴 장기투숙객들과, 날마다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는 라이프 할머니, 전쟁의 상처로 술에 빠졌던 파머씨 등 오목골의 많은 사람들이 희망찬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오목골 주민들에게는 공통된 믿음이 있는데,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게 분명하므로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뭔가가 없어지는 일은 좀처럼 드물었다. (133쪽)
선량함을 기본 성품으로 갖춘 사람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지.” (209쪽)
그 선량함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을 당당하게 가꾸는 오목골 사람들의 모습을 읽는 시간 내내 따뜻함이 내 마음을 감싸고돌았다. 사람이 가장 무서운 세상이 된 지금, 아이들도 어른들도 오목골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잠시라도 행복한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곳을 따스함이 넘치는 ‘오목골’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