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주석이 많은 책은 읽기 힘들다. 주석이 있음을 알리는 숫자나 문양이 보이면 눈이 주석을 향하지 않아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주석을 읽지 않고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면 주석을 읽는 행위 자체가 오히려 책읽기의 흐름을 방해해 아예 읽지 않으려고 마음먹는데도 은연중에 주석으로 향해 은근히 짜증난다.

 

J. M. 쿳시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첫 장부터 시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윗부분은 ‘국가의 기원’이라는 거창한 주제의 글이 시작되고 아랫부분은 한 남자의 독백 같은 글이 시작된다. 바보같이 3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 주석을 읽듯 위와 아래를 차례로 읽어가며 호기심과 더불어 책읽기의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다가 35쪽부터 세 부분으로 나뉘는 곳에서야 좀 더 현명한 책읽기(사람마다 이 읽는 방법이 다 틀리겠지만)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먼저 이처럼 특이한 구조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70이 넘은 노신사(겉으로는 지극히) 세뇨르 C와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알고 활용할 줄 아는 미모의 여인 안야. 세뇨르 C와 안야는 살아온 방식이나 지적 수준, 지양하는 바가 서로 다른 상태에서 만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설렘과 기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부족한 부분이나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두 사람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동네 세탁실에서 젊고 매력적인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 “하느님, 제가 죽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소서.”라고 말할 때 ‘어떻게 남자들은 나이가 젊으나 늙으나 생각하는 건 똑 같네!’란 생각이 들었는데, 너무 구체적인 소원이라 창피해 그 소원을 철회했다는 글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뇨르 C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청춘 안야가 점점 그에게 빠져가는 모습, 그래서 세뇨르 C로 하여금 두드러진 행동이나 말이 표출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삐치는 안야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안야와 세뇨르 C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읽는 도중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가장 늦게 나오는 안야 파트 부분에서 끝까지 한 번, 세뇨르 C 부분에서 또 한 번, 지루한 이야기 같지만 꽤 흥미로운 정치적 논쟁이 분분한 주제로 ‘강력한 의견’을 내놓은 부분에서 또 한 번... 이렇게 세 차례 책장을 넘겼다. 누구든지 이 책을 읽고자 마음먹었다면 나만의 책읽기 계획을 세워야 머릿속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금세 세뇨르 C와 안야에게 마음이 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에 몸과 함께 마음도 얼어붙는 것 같은 요즘, 노랗고 빨갛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고운 단풍잎 같은 세뇨르 C와 안야의 사랑이야기와 노신사의 깊은 고찰이 담긴 에세이에 빠져들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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