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하룻밤에 일곱 명, 한두 명도 아닌 무려 일곱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도 단서라고 할 만한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 살인에 귀신같은 재능을 가진 극악무도한 누군가는 종적이 묘연하다. 목요일 밤 8시를 전후해 금요일 새벽 1∼2시 무렵에 걸쳐 자행된 살해사건이 삼일이 지난 월요일에 발견되면서 사망 추정 시각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수사는 더더욱 난항을 겪는다. 결국 중년의 여의사 유코의 손가락에 감긴 머리카락을 토대로 이 엽기적인 살인행각은 임상심리사 아카네가 저지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다.

 

원죄(寃罪,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 봉사를 하는 주인공 나미키는 피해자 자녀가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도와주면서 동시에 이 아이들이 세상에서 당당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강인해지게 만드는데 몰입한다. 그러나 이 일로 아이들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누리긴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의미 있는 개개인이나 사물에 대한 관념 없이 다른 사람의 목숨에 가치를 두지 않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나미키는 더 이상의 관여는 물론이고, 사회의 존립기반을 뒤흔들 무시무시한 존재로 자란 히토미, 마리에, 유키를 제 손으로 죽일 것을 결심한다.

 

만약 누군가를 죽여야 할 만한 상황이 된다면, 그러나 그 사람을 죽이고도 나는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살인 전과 같은 삶을 누리고자 마음먹었다면 생각해야할 것이 무수히 많다. 나미키 역시 세 사람을 죽이고자 계획을 세우지만, 살인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꼭 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실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결전의 순간은 나미키 본인의 계획과는 무관하게 다가오고, 살인은 물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틈도 없이 3시간에 걸쳐 여자친구인 아카네, 히토미, 마리에와 마리에의 애인 모토오카, 유키의 애인 시미즈를 죽인다. 이제 남은 건 유키 뿐이다.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고 교수형에 처해진 남자가 흘린 정액에서 피어난 전설의 식물 알라우네. 이 알라우네를 뽑아 정성스럽게 돌봐주면 주인에게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원죄(寃罪)로 죽은 아버지들의 자식인 히토미, 마리에, 유키는 알라우네고, 이 알라우네가 뽑히는 순간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을 염려한 나미키가 직접 그 위험을 제거하려 나섰다가 자신 역시 대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죄책감 없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비참해한다.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는 대부분의 추리 소설과는 달리 사건을 파헤치는 똑똑한 형사나 경찰은 등장하지 않고, 나미키가 예측하고 상상한 것, 시간이 지나면서 맞춰지는 조각들로 하여금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색다른 소설이다. 잔혹한 살인행각을 읽으면서도 나미키의 의도가 워낙 분명하기 때문에 죽어가는 이들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미키가 짧은 시간동안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과업이라 생각한 살인을 하는 동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다. 때때로 이런 소설이나 영화의 영향이 점점 더 난폭하고 삭막해지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중간에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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