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잡상인 - 2009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우승미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지하철 안에 잡상인들이 떴다. 한 시간 가량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다보면 두 세 번씩은 만나게 되는 걸어 다니는 상점. 그들이 팔고자 하는 온갖 잡다한 상품들 중에  딱히 내게 필요한 물건이 없다. 그래도 내 시선을 그들에게서 떼어내지 못함은 뭐라 단정적으로 이름 지어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 때문이다. 의사를 묻지 않고 무릎 위에 올려놓는 물건에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을 가진 사람에겐 시끄러움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반면에 지하철 잡상인에 입문한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은 수줍은 목소리와 낯빛을 대할 때면 저래서야 오늘 수고비는 건질 수 있을까, 한 개도 팔지 못하고 꺼내놓았던 물건들을 다시 가방 안에 차곡차곡 넣어 다음 칸으로 이동할 때면 나라도 하나 사줄 걸 그랬나 하는 마음과 필요 없는 물건을 왜 사니 하는 마음이 순식간에 들고난다.

세상과의 연을 끊고자 결심했던 차에 바라보았던 도시의 불빛이 마음으로 들어와 건넨 ‘괜찮다.’라는 한 마디로 다시 삶을 선택하고 사람들에게 빛을 팔고자 지하철 상인으로 나선 잡상인계의 전설 미스터 리, 책에 그림을 그리지만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약간의 리터치 과정을 거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으로 인해 서글퍼지는 것을 견디는 방법으로 더 낮아지는 것을 선택해 ‘수치심’을 파는 농아인 수지, 한 때 잘나가던 여배우였지만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연예계를 떠난 조지아 할머니에게 머리 검은 짐승으로 거두어들여져 개그계에 입문했다 바로 퇴출당하고 할머니의 강권으로 미스터 리의 지도하에 칫솔 아니, ‘개운함’을 팔게 된 스물아홉의 청년 김 철(개그콘서트의 허경환이 생각나는 건 애일까?). 「날아라, 잡상인」의 지하철 안에서는 유형의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무형의 감정까지도 팔 수 있다.

책을 읽는 수고로 우리는 개그 프로를 볼 때처럼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유쾌함, 얄미운 이들의 행동마저도 고개 주억거리며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움, 세상에 태어난 이라면 누구라도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좀 내려놓고 지극히 주관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살 수 있다.

언뜻 보면 가벼워 보이지만 모나지 않은 그래서 한심해 보이기보다 철없는 막내 동생을 보듯 조마조마하면서도 막연히 잘 될 거라는 기대를 품게 만드는 철이와 철이 주변의 노숙자 고려인, 벼룩의 간을 빼먹고도 남을 환상의 복식조 해롱이 아저씨와 달롱이 아줌마, 수지의 조용하고 재능 있는 삼중고(헬렌 켈러 같다.)에 처한 동생과 그 동생을 동정도 하고 연민도 하고 사랑도 하는 똑 부러지는 성격의 왕싸가지 애인 지효가 합세해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수치심이라는 게 말이야,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니더라고.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더란 거지. 자기를 낮추어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 있고, 자기에게 기대는 사람을 받아 줄 수 있게 되는 거, 이게 바로 수치심의 긍정적인 면이야.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자만이 타인에 대해서 배려든 관심이든 사랑이든 쏟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안 그래, 동생?』 - ‘고려인이 철이에게’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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