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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 ㅣ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집 「완벽주의자」를 읽다보면 나방이 생각난다. 뜨거운 불빛 가까이 다가가면 타 죽을게 뻔한데도 밝은 불빛 주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은 종종 불안한 예감을 받으면서도 뒤돌아서지 못하는 일시적 의지박약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이름이 내게는 생소했으나, 이름만 들어도 그들의 영향력을 익히 알 수 있는 세계적인 거장들이 왜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수없이 영화화했나를 이 한 권이 책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독특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간 작가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흥분을 자아낸다.
‘설마,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을라구...’ 1부에 해당하는 완벽주의자를 포함한 여성 혐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은 같은 성을 가진 내가 읽어도 참 당황스런 설정아래 불쾌함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여성들의 치부를 드러낸다. 자연계에서 스스로를 번식자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아내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엄청난 욕구(번식자), 속옷을 갈아입듯 남자를 바꾸어가며 잠자리를 이동하는 여자(이동식 잠자리), 사랑하는 남자를 붙들기 위해 평생 누워 지내는 것을 선택했다가 결국 아무도 모르게 살해당한 여자(누워만 지내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2부로 바람 속에서 서서히, 서서히에는 처녀작에 대한 호된 비평에 다시 종이위에 활자를 배열할 자신이 없는 한 소설가가 평생을 열 네 권의 소설을 쓰는데 바치지만, 모두 머릿속에만 저장한 우스꽝스러운 사내가 등장한다(머리로만 책을 쓴 남자). 죽음을 앞두고 산소 텐트 아래에서 자신이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문인 구역에 묻히는 상상을 하며 추도연설문을 읊고 장례식의 복작한 상황을 정리하는 아버지를 보며 씁쓰레한 심정을 느끼는 아들은 8년 후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문인구역에 묻힌 아버지 옆자리에 자신의 자리가 없을 것이라 여기며 아쉬워할 때, 아마 가능할지도 모른다며 알아보겠다고 대답해 어머니에게서 미소를 이끌어낸다. 또 다른 단편에서는 삼 개월 전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엘리노어가 네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이사한 집의 정원에 연못에서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연못). 인부를 불러 물을 퍼내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수초를 잘라내기도 하며 잉어를 사다 물에 풀기도 하지만, 연못은 잉어와 아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결국 엘리노어의 생명까지 거둔다. 관계 맺은 이들끼리 서로를 살뜰하게 보살피는 이들(인맥)에게서도 연못의 수초가 뒤엉켜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을 받고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광기를 감지하게 되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30여 편의 짧은 글에서 유쾌함을 찾기란 힘들다. 평범하게 보이는 것 속에 깃들어있는 어두움을 끄집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각각의 작품이 장편에서 보여주는 자세한 기승전결 없이도 일상과 특별한 일을 짧은 글 속에 담아내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기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불빛을 쫓는 나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