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성 - 자연의 색채를 사랑한 화가 어린이미술관 13
신수경 지음 / 나무숲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키 작은 사과나무엔 가지가 휘어질듯 주렁주렁 사과가 매달려 있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붉은 사과는 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게 한다. 무성한 가지 사이로 언뜻 보이는 약간 흐린 하늘빛과 하얀 구름은 점점 초록의 생기를 잃어가는 사과나무 잎의 색깔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나무 그림자로 검게 변한 땅과 햇살 아래 붉은 땅, 주변 풀밭의 탁한 초록빛이 실제 풍경을 보고 있는 듯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사과나무 옆에는 한 마리의 닭이 알을 품고 또 한 마리의 닭이 그 옆을 지키고 있어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10대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이며 한국과 일본에서 천재화가라 일컬어지던 이인성이 30세 때 그린 <사과나무>라는 그림을 액면 그대로 읽어보았다. 20대 초반, 친구와 함께 한 여행지에서 우연히 가지가 부러질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매달린 사과나무를 보고 내 것도 아닌데 마음이 충만했던 기억이 있다. 눈으로 찍어 마음에 담아둔 사진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의 느낌처럼 그림은 그 시절로 순간 이동해 행복한 추억을 회상하게 만들어주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궁핍했던 시절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에게서도 지지받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림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이들이 많아 어려운 상황에서도 붓을 꺾지 않아도 되었고 이인성은 이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수많은 미술전에서 입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내가 찾던 게 바로 이거야. 붉은 땅, 푸른 하늘, 초록 잎... 우리나라 자연을 그대로 그림에 담아야지.” 하며 붉은 색,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등의 원색을 사용해 강렬하고도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을 그렸던 이인성은 나이 서른이 되기도 전에 ‘화단의 중진’, ‘조선의 보물’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작가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

‘천재는 하늘이 내린다.’고도 하지만, 하늘은 천재를 시기하기도 하는 게 분명하다. 수많은 천재들이 박복하고 단명 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찬란하기만 했던 이인성의 생도 아들과 아내의 죽음, 재혼한 아내의 가출, 혼자 몸으로 두 딸을 키우다 세 번째 결혼 이후 헌병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총에 맞아 죽고 만다. 6.25 동란으로 시국이 어수선해 천재화가의 죽음은 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이렇게 조선의 보물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간다. 그림에 작가 자신의 철학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더 깊은 감명을 주기에, 나이로도 중진화가라 불릴 수 있을 만큼 살아서 창작활동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나무숲의 「자연의 색채를 사랑한 화가 이인성」은 이렇게 잊혀진 우리나라의 훌륭한 화가를 다시 수면위에 떠오르게 만들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미 유실된 작품도 흑백사진으로 남겨진 것을 꼼꼼히 챙겨 실은 것을 포함해 40여점의 작품을 통해 화가 이인성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고갱, 고흐, 에셔, 램브란트 등의 거장들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화가들에 대해서는 부모부터 무지한 경우가 많다. 다행히 나무숲의 ‘어린이 미술관’ 시리즈는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미술가들의 작품과 삶을 소개하고 있으니 나부터 먼저 챙겨 읽고 아이와 함께 공감하는 시간을 마련해보야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