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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매 2 - 고우영 원작 동화
고우영 지음, 박신식 엮음, 이관수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2월
평점 :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날,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이 부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그 나무 아래 곱상한 청년이 거닌다.
작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지매’의 한 장면이다. 인기 있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면 어딜 가나 드라마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워낙 텔레비전을 즐겨보지 않기에 그들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진 못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듣곤 한다. 채널 돌리기가 취미인 남편이 어쩌다 고정시킨 화면에서 위의 장면을 보았을 땐, 떨어지는 꽃잎이 벚꽃 잎인 줄 알았는데 그 꽃이 매화꽃이라는 것도 고우영 원작 동화를 새롭게 아이들 시선으로 엮어낸 「일지매」를 읽고서 알게 되었다. 우습게도 ‘일지매’에 대한 나의 기억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초등학교 때 까마득히 높게만 느껴지던 중학교 선배들의 전설적인(?) 폭력배 모임이 ‘일지매’였던 것. 그 후로 ‘일지매’에 대해서 관심 가질 일이 없었기에 잊고 살았는데「일지매」를 읽고 의적임을 알게 되면서 나의 무지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양반 아버지와 노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버려진 일지매가 거지 걸치와 열공 스님의 돌봄으로 목숨을 유지하고 멀리 청나라에 양자로 보내진다. 그러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일지매가 조국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찾지만, 매몰차게 돌아선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걸치를 찾아 간다. 걸치와 생활하던 중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큰 풍랑을 만나 왜국에서 6년여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찾아와 그곳에서 배운 무술실력으로 부패한 양반들의 재물을 훔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며 힘없는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어준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청나라와 내통해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매국노를 직접 심판하고자 하나 열공 스님의 만류로 살인을 금하고 중국 황제의 침실에 숨어들어 황제의 단검을 훔쳐와 전쟁을 막기 위해 또다시 먼 길을 떠난다.
2권으로 엮은 「일지매」는 숱한 역경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분노를 희망으로 바꾸는 일지매의 행보를 통해 나라를 사랑하고 약한 자에게 힘이 되어 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정의를 위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이 생기고 기존의 질서가 무너질 수 있는 경우라면 의분을 잠시 참고 대의를 위해 새로운 계획을 세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다.
단순히 고우영님의 창작물인 줄 알았던 ‘일지매’가 소설가 정비석님의 글로도 남아있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실존인물이란 설과 가공인물이란 설이 있다. 조선 순조 때의 문인 조수삼의 ‘추재집’에 도둑질을 하고 스스로 매화 한 가지를 찍어 놓아 표지를 해놓았다는 대목이 있으니 실존인물일 가능성도 많아 보이는데, 아무리 아름답게 표현을 해도 도둑은 도둑일진대, 칭송받지 못할 도둑이 나서서 어려운 백성을 돌보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참 가슴 아프다. 지금도 일지매가 살았던 그 시절만큼 어렵고 흉흉한 세상인데, 이 시대에도 어디선가 일지매가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진 않을까 하고 꿈같은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