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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고물상
이철환 지음, 유기훈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종합병원의 병실에서는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90이 넘는 나이에도 평생 살고 있는 고향땅이 좋다며 자식과 손녀 손자들이 살고 있는 안산에서 살길 거부하고 정읍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고 하지만 하룻밤 새에 어떻게 운명을 달리하실지 모르는 연세이기에 늘 걱정이 되는데, 할머니는 그래도 가족같이 보살펴주는 이웃이 많고 사돈댁(내겐 큰 외삼촌댁)이 가까이 있어 괜찮다며 올라오시면 사흘을 못 넘기고 시골로 가셨다. 그러던 분이 2주일 전에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모셔와 입원을 시켰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나마 병실이 10인실이라 심심할일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루만 같이 지내도 약해진 몸 따라 마음도 약해지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지는 그분들은 일부러 묻기도 하고, 때론 묻는 이 하나 없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한편의 이야기책과 같은 느낌이 든다. 암으로 입원했는데 정작 할머니는 자신의 병이 중한지 모르고 기운이 없다며 날이 갈수록 시들해지시는 모습이나, 재수가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듯 넘어져서 외상이 생긴 게 아니라 장이 파열되어 구급차에 실려 온 모습,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을 만큼 건강해 보이고 모두의 일에 간섭하시는 중년의 아주머니 모습까지 그냥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고, 재미있기도 하다.
그들 중에서 제법 젊은 층에 끼는 분들은 조용히 책을 보기도 하는데, 할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자리를 지키지만 내내 무료했던 나는 책을 쌓아놓고 보시던 환자 한 분에게 책을 빌렸다. 10여권의 책 중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책 「행복한 고물상」을 들고 책장을 들추니 낯익은 이가 웃고 있다. 아하! 이철환님의 책이었구나. 「연탄길」과 「아름다운 꼴찌」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작가의 책이라 무척 반가웠다. 더군다나 이철환님의 글은 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려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기에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손을 떼지 못하고 활자로 기록된 감동을 가슴에 저장하는데 분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껴 읽고 싶은데, 마음과 달리 손은 먼저 다음 장을 들추기 위해 움직인다.
여기에 메부수수(말이나 행동이 메떨어지고 시골티가 나다), 싸묵싸묵(‘천천히’의 전라도 사투리), 떼꾼한(눈이 쑥 들어가고 생기가 없다), 종주먹(쥐어지르며 을러댈 때의 주먹을 이르는 말), 가뭇없이(눈에 띄지 않게 감쪽같다)와 같이 평소에 잘 사용하지도 않고 들어보지 못한 우리말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덕분에 국어사전을 열심히 찾아보며, 우리말의 어감이 얼마나 감칠맛 나는지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철환님의 아버지께서 행복한 고물상을 운영하시면서 겪었던 소소한 일상을 기억 저편에 묻어두지 않고 꺼내어 읽는 이로 하여금 동감하며 미소 짓게 만든 「행복한 고물상」은 고물상을 운영한 시간보다 더 오래오래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