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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즐거움 -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필립 길버트 해머튼 지음, 김욱현 외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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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도 작은 딸 사랑해”
계집아이는 배울 필요 없다는 외할아버지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초등학교 문턱도 못 밟아보고 스물도 넘기기 전에 결혼해 자식 다섯을 낳아 기르던 엄마가 야간 한글교실에 다니신지 5년 만에 처음 내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이 1년 정도의 시간에 한글을 얼추 깨치는 것에 비해 쉰이 다 된 나이에 시작한 한글공부의 진도는 달팽이 수준이었다. 배우는 엄마도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매주 3일, 두 시간씩을 투자했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얼마 전에는 운전면허증도 따셨다. 아직도 같이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다닐 때면 천천히 간판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집안일과 회사일이 버거워 따로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고, 공부하려고 앉아도 젊은 사람들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기에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한 엄마만의 특별한 공부법이었다. 이후 장보러 갈 때 필요한 물품을 종이에 적어 걸어서 40분이나 걸리는 딸집에 들려 틀린 글자가 있는지 물어보고 다시 적는 엄마의 모습에서 ‘안다는 것’, ‘알아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분명 존재하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상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앎’에 대한 욕구가 있다. 엄마가 어려서 충분히 누렸어야 되는 것을 누리지 못해, 그로 인해 한층 높은 ‘지적인 생활’에 대한 동경, 생활 속에서 당했을 불편과 자격지심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것은 직접 당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짐작된다.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엄마는 목표하고 있던 것을 이루었고 지금은 ‘초등학교 검정고시’라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엄마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지적으로 생활하는 기술이란 주변을 유리한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일상생활과 관련된 온갖 사정과 제약을 극복함으로써 풍요롭고 강인한 지성을 만들어 가는 것에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P. G. 해머튼의 「지적 즐거움」은 사회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지적인 생활을 원하고 책과 사람, 자연을 선생님으로 삼아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쓴 책이다. 약 200년 전에 살았던 이가 불특정다수에게 편지형식의 글로 쓴 「지적 즐거움」이 지금의 시대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도 더러 있긴 하지만, 지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갖추어져야할 다양한 요소에 대해 찬찬히 쓴 글은 분명 어느 한 곳에 치중하면 다른 곳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다루어 문제가 생기는 병폐를 없애준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 교육, 짜임새 있는 시간 관리, 금전의 문제, 결혼과 교제, 직업, 환경 등 인생의 전반에 걸쳐 다루어지는 글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적절한 지혜를 나누어준다.
사람을 지적으로 만드는 것은 머릿속에 든 지식이 아니라 덕(德)임을, 지적인 생활이란 큰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진리를 추구해 가는 것임을, 그래서 늘 꿋꿋하게 고귀한 쪽을 선택하는 것임을 알게 해 준다. 이처럼「지적 즐거움」은 불리한 입장에 있거나 귀찮은 일에 휘말렸을 때, 흔들리지 않고 내 정신이 추구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사람과 자연,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 갖고 부딪치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