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올 봄에 상영된 ‘연을 쫓는 아이’에 대한 자자한 호평에 꼭 한 번 극장나들이를 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시간을 놓쳐 안타깝던 차에 원작을 먼저 읽게 되었다. 요 근래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하루에 끝을 본 일이 드문데, 「연을 쫓는 아이」는 550여 페이지나 되는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모두 읽어낼 만큼 강한 흡인력과 함께 감동을 자아냈다. 안타까움과 자랑스러움, 설레임, 고통과 그리움 등이 마치 나의 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놀랍고도 슬픈 이 소설은 한 때 우리의 어른들이 겪었던 아픔을 기억나게 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평화를 향한 무거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장군님, 저희 아버지가 하인의 아내를 범했습니다. 그녀가 하산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산은 지금 살아 있지 않습니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아이가 바로 하산의 아들입니다. 제 조카인 셈이죠. 사람들이 물으면 그렇게 말씀하세요.”

  주인공 아미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데려온 조카 소랍을 장인에게 보이며 하는 이 말 속에 소설 전체의 내용이 함축되어져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미르와 하인의 자식으로 태어난 하산, 둘은 신분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고 형제(실제로 두 사람 모두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어 한 유모에게서 같이 젖을 먹고 자랐다.)처럼 지낸다. 늘 아버지의 절대적인 사랑과 관심에 목말라하는 아미르와 하인의 신분으로 배우지는 못했으나 재주 많고 영민한 하산. 하산을 사랑하기도 하며 경계하기도 하는 아미르는 연 대회에서 1등을 하며 아버지의 관심을 받게 되던 날, 포악한 성격을 지닌 동급생 아세프에게 하산이 성폭행 당하는 것을 보고도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괴로워한다. 괴로움은 자학으로 이어지고 끝내 하산에게 누명을 씌워 하산 부자가 스스로 집을 떠나게 만든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군의 점령으로 격변을 맞게 되고 이를 피해 아미르는 아버지와 미국으로 이주한다.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소설가로 명성을 쌓아가는 와중에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의 부름을 받고 되돌아갔을 때, 하산이 이복동생이며 결혼 후 아들 하나를 남기고 탈레반에 의해 총살당했음을 알게 된다.

  아미르와 하산이 나누는 감정의 교류, 하산을 배신한 후 끌어안고 사는 상실과 고통의 그림자, 아프가니스탄의 비극, 이상의 나라로 알고 있던 미국에서의 고단한 삶, 그 속에서도 고국의 전통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읽혀지는 것과 상반되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인종과 종교, 각국의 이익에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벌어지는 분쟁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폭력성을 동반해 힘없는 자들을 억압하고 잔인하게 살상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나의 단순함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주 작은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꿈꾸고 싶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품었던 꿈처럼(사람이 피부색이 아니라 성품으로 평가받는 날을 꿈꾼다) 어느 곳이든, 어떤 이유로든 차별과 폭력, 기아가 없는 세상이 되기를..

책 속에서..

아버지(바바)가 아들(아미르)에게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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