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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까투리
권정생 글, 김세현 그림 / 낮은산 / 2008년 5월
평점 :
일곱 살 난 딸아이는 우체국 택배로 도착한 「엄마 까투리」를 보자마자 제가 먼저 읽겠다며 냉큼 가지고 갑니다. 아이가 책을 읽는 동안 분주히 집안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정말 감동적이다!”라고 말하며 책을 덮습니다. 권정생 선생님 동화야 워낙 많이 접해봤기에 글에 담긴 서정성이나 그 깊이에 대해 이미 짐작되지만, 무엇이 그리 감동적이냐고 물어봤습니다. “엄마 까투리가 새끼들을 위해서 불에 타 죽었는데, 새끼들이 효자야. 엄마를 버리지 않거든. 엄마가 죽었는데도 흩어져서 먹이를 구해 먹고는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와. 엄마의 향기가 좋으니까.”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나니 대강의 책 내용이 그려집니다. 얼른 책장을 펼쳐보니, 내용에 앞서 권정생 선생님께서 친필로 쓰신 글귀가 보입니다. "까투리 이야기 써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충분하다고 봅니다. 좋은 그림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5. 3. 5. 권정생 드림"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쓰신 글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서글퍼졌습니다. 자신을 강아지 똥에 비유하시며 한 없이 낮은 자의 자리에서 겸손한 모습으로 세상을 사셨지만, 선생님의 글을 읽는 이들에게 남기신 유산은 결코 작거나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좀 더 오래 사시지 못하고 가심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봄이면 숲의 고마움을 이야기하고 날까지 정해 나무를 심지만, 인간들의 부주의와 건조한 일기가 합세해 기존의 숲을 태우기 때문에 사라져가는 나무들이 더 많습니다. 숲에 불이 났으니 사라지는 것은 나무 뿐만은 아닙니다. 숲에서 사는 동물과 식물, 곤충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불로 인해 재가 되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가슴이 아플 따름입니다.
꽃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봄에 산불이 납니다. 꽃샘바람이 불어오며 이리저리 번져 나가는 산불로 인해 다람쥐도 산토끼도 새들도 모두 불을 피해 달아나는데, 엄마 까투리는 아직 날지 못하는 어린 꿩 병아리 아홉 마리를 두고 갈 수가 없습니다. 날개가 있기에 본능적으로 불길이 덮치면 훌쩍 날아오르지만, 이내 아이들 생각에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하다 불길이 더욱 거세어지자 아이들을 품안에 모아 날개로 감싸고 불에 타 죽는 엄마 까투리.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엄마의 향기를 맡으며 자라는 꿩 병아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간담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연재해나 갑작스런 사고로 아이나 배우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 숭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상상해 보곤 합니다. 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내 목숨보다 귀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딸아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 내 이성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본능은 엄마 까투리의 날개를 닮아서 생의 끈을 놓고 싶지 않는다면? 상상만으로 끔찍하고 몸서리 쳐지기에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멈추곤 하지만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그 일을 해내고야 마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그 순간까지 지켜주고 응원하며, 홀로 선 순간에도 늘 제 편에 서서 지지하는 엄마가 있음을 우리 딸이 잊지 않도록 지금 말해 봅니다. “가온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