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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스 아저씨의 위대한 유산 -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은 이웃이 전해 준 단순한 믿음
에이미 홀링스워스 지음, 임창우 옮김 / 살림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사람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단연 그 사람과 연관 지어지는 ‘관계’일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선생님과 제자, 친구, 이웃, 동료 등의 관계를 통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커갑니다. 여기에 종교와 책, 음악과 미술과 같은 예술, 그 사람이 살아가는 시대의 산물과 맺는 관계도 사람의 관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시대가 주는 비중이 특히 크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중 하나가 텔레비전이 주는 영향입니다.
30여 년 전,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때 텔레비전이 있는 이웃에 가면, 그 집에 저녁상을 들이며 눈치를 줄 때까지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무아의 세계에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의 아쉬움은 어찌나 크던지 누군가 소원 하나를 말하라면 망설이지 않고 ‘텔레비전’이라고 말할 정도였지요.
지금은 텔레비전의 가벼움과 소음이 싫어서 멀리하고 있지만, 일곱 살 난 딸아이가 좋아하는 유아용 프로를 함께 볼 때, 텔레비전에서 본 것을 그대로 기억해서 이야기하고 따라하는 모습에서 그 영향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딸아이가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못하며 텔레비전과 관계를 맺어 때때로 말이나 행동에서 실수를 하게 될 때는 내 이성과 감성 모두에게서 텔레비전이 갖는 유익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맙니다.
이러한 때에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텔레비전의 어린이 프로를 제작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천진한 아이들의 수준으로 내려와 믿음직한 이웃이 되어준 ‘프레드 로저스’의 이야기 「로저스 아저씨의 위대한 유산」을 읽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로 시작된 만남이 로저스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까지 계속되어 이 책을 쓰게 된 에이미 홀링스워스는 로저스씨가 남기고 간 유산(책에서는 토스트스틱이라고 표현합니다. 토스트 스틱을 만들어 주던 동네 할머니 마마 벨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꼬마였던 로저스씨에게 토스트 스틱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세상을 떠납니다.)을 우리에게 함께 나누어 줍니다.
로저스씨는 속도무제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느림이 주는 선물과 온갖 소음으로 난무하는 세상에서 침묵이 갖는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상처받을 정도로 자신을 개방하며, 텔레비전 안에서 맡은 역과 밖에서의 모습이 한결같음을 보여주며 믿음을 줍니다. 텔레비전이 폭력성을 보일 때 바로 끌 수 있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임을 가르쳐 주고 폭력에 대한 분노 역시 ‘승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방식(스포츠나 예술을 통한 발산)으로 배출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개인으로 보면 지극히 작지만, 작은 자들이 세상을 품었을 때 일어나는 놀라운 일을 통해 내 손도 토스트 스틱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알게 합니다. 이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존재해도 ‘나’는 ‘나만의 특별함’이 있음을 알게 하고 사랑하게 하며, 관계 지어진 모든 사람에게 ‘축복’과 ‘행운’의 말을 전한 ‘프레드 로저스’.
프레드 로저스가 죽고 나서도 그의 이름이 회자되고 그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이 시청되며 재조명되어지는 이유는 그가 남긴 유산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코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로저스씨와의 관계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혼자 사용하지 않고 책을 통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유산을 공유하게 한 저자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나라의 EBS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의 뚝딱이 아빠에 대한 기사가 생각납니다. 유아교육과 교수이며 동요학교 교장이기도 한 김종석씨가 아이들에게 심어준 이미지를 흩트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어린이와 청소년이 해로운 것에 중독되지 않고 사랑과 나눔, 배려와 같은 긍정적인 요소에 중독되어지길 바란다는 기사였습니다. 인기와 돈을 위해 유명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프레드 로저씨와 김종석씨 같은 분들이 모델이 된다면 이루고자 하는 꿈의 모양은 같아도 목적하는 바가 틀리기 때문에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