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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평점 :
고등학교 때, 작가 이외수의 글을 처음 접하면서 경험했던 당혹감과 낯설음은 이후 10년 이상을 이외수란 작가의 책은 물론이고 이외수란 이름 자체를 피하게 만들었다. 이에 반해 남편은 이외수의 광팬이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후 벽오금학도와 황금비늘, 자객열전, 칼, 들개 등을 취한 듯 읽어 내려갔다. 지금은 좀 뜸해졌지만 장외인간과 괴물이 나오기까지 꾸준히 이외수의 글들을 수집하듯 읽고 있으니 이외수를 몰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소녀의 감성을 불쾌하게 건드렸던 이외수의 글은(지금으로 치면 아주 건전한 축에 낀다고 해야겠지만) 순진에 가깝다고 할 만큼 적나라하고 불쾌하고 여운이 오래 남으며 부정하고 싶은 작가를 만났다. ‘천운영’, 2000년에 등단을 했고, 데뷔작 ‘바늘’이 워낙 강렬했던 탓에 문단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나는 그녀를 몰랐다. 그리고 내게 있어 천운영을 처음 알게 한 「그녀의 눈물 사용법」은 평온한 마음에 불편함과 불안, 분노를 느끼게 한다.
여덟 편의 짧은 소설 모음집에는 많은 만남이 존재한다. 그 만남의 모양들이 어찌 그리 다양한지. 아내의 넘치는 삶의 열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끝내 그 열정을 증오하는 사진작가, 제자와의 부적절한 만남으로 사회적 위신과 자존감마저 깡그리 날려버린 대학교수, 죽은 동생의 혼과 함께 동행 하는 여자와 그녀의 친구가 만드는 또 다른 부적절한 만남, 크리스찬으로서 내 모습을 잠시 점검하게 만들면서 봄이면 핏물이 고이도록 몸을 긁어대어 동면에 들어가는 가여운 여인과 늘 안타까운 심정으로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 뛰어난 감각으로 사업에 성공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재능은 있지만, 마음을 채우는 데는 부족한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다섯 마리 개 등..
어느 이야기 하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게 없다. 읽다 보면 늪의 물풀과 뱀들이 다리를 휩싸는 것 같고, 피부색이 다름으로 인해 수모를 당하는 혼혈아 알리가 더 분노하지 않는 것에 화를 내게 된다. 세균을 박멸한다고 아낌없이 락스를 쓰는 것도 꺼려야 할 것 같은(그렇게 깔끔 떨고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아주 가.끔. 햇살 같은 희망을 그리게 해 강물을 힘차게 차며 헤엄치는 소년의 이미지가 들어오고 줄넘기로 삼단뛰기와 사단뛰기를 하고 더블터치를 성공하는 알리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천운영씨, 당신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글, 당신이 쓴 것을 끝까지 읽어내는 데는 적지 않은 인내심과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했거든요. 그러니 그것을 읽어낸 후의 깊이까지 강요하지는 말아 줘요. 당신이 쓴 남의 이야기가 끝까지 부정하고 싶지만, 나의 이야기도 됨을 고백하는 건 당신의 글이 주는 힘이겠지만, 다시 당신의 다른 글을 읽기까지는 해독의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이미 나의 뇌는 천.운.영. 당신 이름 세 자를 똑똑히 기억하고 잊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