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있어 ‘물리학’이란 용어 자체부터 어렵다. 생물학이 생물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건 알겠는데, 물리학은 고등학교 교과에서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너무 먼 당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스스로를 공부꾼이며, 앎을 훔치는 도둑이라 칭하는 물리학박사 장회익 선생님이 온갖 풍파(35세 연상의 할아버지가 학업을 중단케 한 일, 6․25 동란, 스스로 학비를 벌고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던 일, 4․19 혁명 등)를 이겨내고 선생님만의 독특한 학습방법으로 공부하며,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의 숲에서 유유히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얄미운(?) 이 공부꾼의 70년 공부 인생 이야기인 「공부도둑」은 읽던 도중, 들고 있던 책과 함께 나의 자세를 바로 앉게 할 만큼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만 36년의 생애 전반을 뒤돌아볼 때, 나는 언제 장회익 선생님처럼 앎에 목말라 하며, 해갈에 힘썼던 일이 있었나? 나 역시 연필 한 자루, 공책 한 권을 사는 것에도 자유롭지 못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다섯 군데를 다녔고, 늦둥이 동생을 돌보는 일로 학창시절의 즐거움에 푹 빠져보지 못했다. 학교 선생님과 동네 언니들이 빌려주는 책이 유일한 피난처였던 그 시절에 ‘가난’을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자존심만 있었을 뿐, 장회익 선생님처럼 미래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아는 것’의 기쁨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공부도둑」은 천재와 영재 가까이에는 가지 못했지만, 무엇이든 시작하면 같이 배우는 동기들보다 빠르게 습득하는 나의 장점이 초창기에는 빛을 발하며 우쭐하게 만들곤 하지만, 이 때문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쉽게 난관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엔 포기하게 만드는 단점이 되어 나 스스로 나를 그다지 미더운 인간으로 평가하지도, 대접하지도 않았음을 시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쌓아 올린 내 36년의 세월은 결코 ‘앎’에 대한 욕구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변명거리를 찾으며 성큼 발을 옮기지 못하게 했다.
아인슈타인과 같이 비슷한 환경과 비슷한 꿈을 가졌음에 기뻐하고, 조용한 방과 하루 세 끼 식사가 보장되면 나머지 시간을 학문적 사색을 위해 바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지난한 환경조차도 주는 대로 받아먹고 자란 인삼밭의 인삼뿌리가 아닌 산삼뿌리가 될 수 있도록 긍정적으로 바꾸어 사고하고 행동하는 장회익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니, 여태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온 내 삶이 새롭게 바뀌어야 함을 깨달았다.
여태 세상에 이런 분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며 장회익 선생님에 대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캐리커쳐 화가들이 무지 좋아할 것 같은 익살스러움과 단아함이 야릇하게 어울리는 사진과 그간 펴내신 인간과 자연이 함께하는 국학, 과학과 메타과학, 이분법을 넘어서 등의 저서를 훑어보며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을 모르고 넘어갈 뻔 했던 아찔함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이해가 부족한 ‘온생명’에 대한 신문기사의 일부를 옮겨보며, 70년 된 공부꾼 장회익 선생님을 알게 된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
“생명에 대해 너무 엄격한 경계를 두는 건 옳지 않습니다, 자연 현상 속에서 볼 때도 그렇고, 인간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는 건 오히려 위험합니다. 생명존중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 생명의 존중과 같은 정도로 비인간을 존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나머지와 인간의 격차가 커지죠. 인간생명에 대해서도 적절한 이해를 해야 되고 거기에 맞는 가치를 부여해야 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전체 생태계, 내가 말하는 온생명에 대한 가치, 인식을 하고 그 안에서 그것들이 갖는 상대적인 가치와 공통점을 같이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겨레 2004년 1월 6일자 - 장회익 & 황우석 테마대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