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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와 시인들 - 사랑의 이야기
클라우스 틸레 도르만 지음, 정서웅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제주를 사랑해서 일평생 제주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던 김영갑님, 성산포를 사랑해 많은 시를 남긴 이생진님, 일제강점기 때 미국 영사의 딸로 와서 우리 산천을 사랑해 많은 그림을 남겼던 릴리안 밀러 등 일생을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해 자신만의 독특함으로 표현한 사람들을 볼 때 마다 내 안에서 낯선 감정이 생긴다. 그들이 본 것에 사랑의 감정을 덧입혀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할 때면, 너무도 평범한 나의 감성구조가 싫어져 살며시 질투가 생긴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평범하게 지나치고 말 것을 더 주목하며 찾게 되니 참 고마운 일이다.
‘베네치아의 시인들’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사랑하고 찬미한 이들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다. '클라우스 텔레-도르만'은 천년 고도의 베네치아가 무슨 연유로 수많은 지성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듣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사실적인 자료들을 엮어서 책을 펴냈다.
15세기,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인쇄업자이며 학자였던 ‘알도 마누치오’는 모든 나라의 연구자들에게 그리스․로마 시대의 지식을 전하는 것을 의무라 여겨 적당한 가격의 양서를 보급해 줌으로써 이탈리아 밖에서 그리스․로마 문화에 열광하게 만든다. 음악과 차,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수 세기 동안 경쟁해 온 산마르코 광장의 카페 플로리안과 콰드리는 삶 전체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탈리아 인들의 생활을 보여준다. 하루 종일 카페에 나가 빈둥대며 지나가는 여자를 바라보는 젊은 아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아버지를 베네치아 말고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어처구니없는 문화(가사에 보탬이 되도록 딸을 사랑의 도우미로 밀어 넣는 충격적인 사실)의 열매, 16세기 창부이며 시인인 베로니카 프랑코를 보며 우리나라의 황진이(황진이의 삶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인물과 시, 서, 음률이 뛰어 났기에 교양 면에서는 단연코 앞설 것이라는 희한한 우월감도 생겼다)를 생각하게 되었다. 베네치아를 먼저 알지 못한다면 로마와 이탈리아도 시시하게 생각했던 몽테뉴를 비롯해서 베네치아를 여행하며 여행기를 남긴 이들의 기록을 전해준다. 베네치아를 아름다움의 정수라 표현한 토머스 코리에이트, 프랑스 공사의 비서로 채용되어 베네치아를 방문하게 되어 영혼을 지닌 노래에 깊이 빠진 장 자크 루소, 피폐해져 황량한 베네치아에서 영감을 얻어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조지 고든 바이런 등 너무도 유명해서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만한 위대한 사상가, 시인, 작가들이 베네치아를 찬미했다. 조르주 상드와 알프레드 드 뮈세가 뭇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해 선택한 곳, 소설가 단눈치오와 여배우 두세가 만난 곳, 마르셀 프루스트가 죽인 연인의 그림자(그녀가 입었던 외투와 비슷한 옷을 입은 그림을 통해)를 만나는 곳이 베네치아다.
저자가 베네치아를 사랑한 시인들의 행적과 글을 모아 낸 ‘베네치아의 시인들’을 읽으며, 사람들을 어딘가에 머무르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되었든 그 자체의 독특함도 있어야 하지만, 그곳을 다시 찾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 아닐까? (여기서 잠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시 찾고픈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들은 지나간 흔적을 값지게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가능하면 그것을 공감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커피향이든, 관광객이 뿌려준 먹이에 달려드는 비둘기들이든, 잔잔한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곤돌라이든 그것들과 함께 우리의 감성을 건드려주는 사람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베네치아가 지금의 명성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신혼여행 때,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 딱 한번 몸을 실어본 경험이 있긴 하지만 워낙 겁이 많아 물 건너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데도 기회가 된다면 베네치아의 궁전 피자집과 플로리안에 들려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시인들이 거쳐 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했으며 묻힌 곳들을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