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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 Reading Asia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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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며칠 전에 일곱 살 난 딸아이가 “엄마,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을걸 그랬어.”하고 말했다. 어린아이가 할 소리가 아닌지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불이 나서 사람이 타 죽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아빠가 집에 없고 혼자 있을 때 집에 불이 나면 아프게 죽을 것 아니냐고. 그러니까 아예 태어나지 않아서 그런 무서운 일을 당하지 않는 게 더 좋지 않느냐고 묻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당장 딸아이에게 엄마아빠도 없이 우리 딸이 집에 혼자 있을 일이 없다, 엄마아빠가 회사에 출근해도 유치원에서 생활할 때는 선생님들이 돌봐주시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올 때까지 할아버지할머니가 돌봐주시니 혼자 있을 일이 없다고 말해주며 안정을 시켰다. 엄마의 마음은 이런 사고로 다치거나 죽을 것을 염려하는 딸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진다. 하물며 생때같은 자식들이 산산조각이 나서 죽고 온 가족이 몰살을 당하며, 몇 시간 전에 눈 마주치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던 이웃이 죽었다고 한다면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는 1975년부터 1990년에 걸쳐 레바논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무력 충돌한 국내 분쟁(레바논 내전)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고 1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기자 ‘림 하다드’의 일기다. 조국을 잊지 못하고 부모님과 함께 다시 레바논 베이루트로 돌아와 전쟁기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사랑스런 두 자녀를 낳아 행복한 삶을 살던 중, 명목상 헤즈볼라(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레바논 최대 무장단체, 정치조직, 사회복지단체)를 겨냥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레바논과 죽어간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의 33일간의 전쟁일기이다. 레바논 내전 당시에는 자신을 지켜 줄 부모님이 계셨지만, 남편이 전쟁의 소용돌이 중 한 가운데를 지켜야 하는 현재는 지켜야 할 두 아이가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 끔찍한 전쟁을 체험한다.
성경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UN이 박해당한 유대인의 정착을 위해 검토한 지역 중 최종 후보지의 하나인 팔레스타인을 지목하면서 시작된다. 수천 년 동안 살아온 땅의 절반을 유대인에게 내주라는 UN에 반발한 팔레스타인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자신들의 땅에 들어선 유대인 사이의 폭력사태가 시작된 것이다.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레바논의 남부에서 난민이 되어 떠돌게 되고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레바논에서도 큰 사회적 문제가 된다. 레바논을 주도하던 마론 카톨릭교도가 레바논 내 무슬림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규합해 세력을 키우자 자체 민병대를 조직해 1975년 4월 15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탄 버스를 공격해 26명을 살해하면서 레바논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 내전으로 인해 ‘중동의 파리’라 불리던 베이루트와 유적지들은 처참하게 무너지는데, 억만장자 사업가 ‘라피크 하리리’에 의해 다시 되살아난다.
그러나 어렵게 재건된 레바논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하고 8명을 살해하면서 다시금 무너져 내리고 만다. 2006년 7월 13일부터 8월 14일까지 33일간의 전쟁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은 곤두서며 머릿속은 하얘지고 가슴은 먹먹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아닌 민간인을 살해했다. 젖먹이 아기부터 노인들, 외국인들에게 가차 없이 폭탄을 터뜨려 죽인다. 피난민과 부상자를 구하려는 평화유지군도 손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회기반 시설은 거의 무너졌고, 우유공장마저 폭파했다. 당장 어린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하는 ‘림’의 타들어가는 마음은 아이를 가진 부모(림의 첫째 아이 야스민은 내 딸과 불과 20여일의 차이가 나는 동갑내기다.)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무차별 공격 금지에 관한 국제적 인도주의 법률을 위반하고 집속탄(한 개의 어미 폭탄이 폭발하면 함께 탑재된 수많은 작은 폭탄이 사방으로 흩어져 연쇄 폭발한다. 살상 반경이 넓고 대상도 무차별적이다.)을 민간 지역 근처에서 사용했다. 레바논 총리가 수없이 정전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줄 것을 눈물로 호소해도 UN 안전보장이사회는 거부했다.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는 이스라엘에게 레바논을 공격할 때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하라고 말할 뿐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피난길에 나선 ‘림 하다드’에게 ‘복수’라는 낯선 감정이 속에 용솟음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직접 당하지 않고 책으로만 접해도 이런데, 속절없이 죽임을 당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오죽하랴.
33일간 계속 되었던 이스라엘 공격으로 1,000여명의 레바논 사람들이 죽었고 그 중 3분의 1이 어린이고 4,0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97만 명이 이재민이 됐다. 레바논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리고 나머지 75%의 인구도 정신적 충격에서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공항, 항구, 전력시설 등을 비롯한 31개의 주요 기반시설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되었고 다리 80개, 도로 94개도 파괴되었다. 25개의 주유소와 900개가 넘는 사업장이 파괴됐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스라엘이 33일간 공군이 7,000번이 넘는 공습을 했고 해군이 2,500번 폭격, 집속탄 400만 발을 발사했다고 결론지었다. 산업 분야의 3분의 2가 파괴되었고 발전소를 폭격해 누출된 기름은 170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안선에 퍼져있어 환경재앙을 초래했다. 전쟁이 끝난 후 ‘림 하다드’가 남편과 함께 둘러본 현장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이웃을 잃은 사람들,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게 의무라 생각했다던 서문의 말이 백 번, 천 번, 만 번 이해되고 공감된다.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그 땅에서 살 자격이 있는 것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같은 자격이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세계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만행을 어째서 보고만 있었을까? 이렇게 복수는 복수를 낳고, 그 복수는 또 복수를 낳고, 죽고 죽이는 일을 언제까지 할 생각일까? 나 역시 기독교도지만 이 책을 보는 순간 침묵하신 하나님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저지른 만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는 ‘림 하다드’와 같은 소망을 갖는다. 세상은 분명 평화를 원하고 아랍인과 유대인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임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