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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그림자의 책 ㅣ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제이크 미쉬킨
나 제이크 미쉬킨은 지적재산권 변호사다. 유일하게 돈 드는 취미가 ‘여자’인 천하의 난봉꾼이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가까운 이들 뿐이지만. 이 못된 취미로 인해 성녀에 가까운 이해심(여자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치유되지 않은 병이라고 생각)과 인내심을 자랑하며 재택 금융전문가로 큰돈을 버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는 아내와 별거 중인 겉모습만 그럴싸한 사회적 성공인 축에 낀다. 대학동기이면서 20여년의 세월을 가까이 지내고 있는 컬럼비아 대학 영문학 교수인 친구 미키 하스의 조언을 듣고 나를 찾아온 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셰익스피어 전문가 중 한 사람인 벌스트로드 교수가 17세기 초에 쓰인 리처드 브레이스거들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보이며 편지 안에서 언급된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발견하게 되면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한차례 셰익스피어 위조 사건에 연루되어 명예가 추락한 경험이 있었던 벌스트로드 교수의 경력을 알고 있기에 망상이라 여기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 후 그 편지를 보관하고 떠난 벌스트로드 교수는 고문과 함께 죽임을 당하면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벌스트로드 교수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미란다 켈로그에게 대책 없이 끌리는 이성적인 호감(늘 그렇지만 이번 경우에는 아내 아말리와 흡사한 분위기 때문에 더욱 끌렸다)이 도를 넘어 교수의 유품인 편지를 보게 해 달라는 당치 않은 부탁을 쉽게 들어준다. 이후 러시안 갱단의 침입을 받고 미란다와 편지는 사라지면서 자신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리처드 브레이스거들
1642년 청교도 혁명 중 엣지힐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알리고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의 존재와 얽힌 암호문의 행방을 알린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리처드는 주물공인 사촌에게서 무기주물을 배우다 할머니의 유품으로 천주교도 묵주를 가지고 있던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한다. 이후 사촌에게도 버림받고 어머니를 여읜 후, 묵고 있던 숙소의 주인집 딸과 사랑에 빠지나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의 집에서 우연한 기회에 배우게 된 아라비아 수와 대포를 다루는 기술을 인정받아 평범한 사람이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을 경험하고 많은 돈을 벌어 다시 청혼하려 했으나 이미 다른 사람과 혼인중인 것을 알게 되어 방탕한 생활로 모든 것을 탕진하고 만다. 결국 범법을 저질러 교수형에 처해질 운명이었으나 왕과 왕의 정책에 맞서 음모를 꾸미는 던바튼 경의 수하가 되어 배우이며 작가인 셰익스피어를 염탐하는 임무를 맡아 위기를 모면한다. 왕에 맞서는 음모에 가담하였는지라 암호를 해독하고 만드는 밀정기술을 익혀 셰익스피어 측근이 되는 것에 성공하고 작품을 만들도록 유도하나 이내 배신으로 인해 다시금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앨버트 크로세티
나는 영화감독이 꿈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대에 있는 유명한 영화학교를 가기 위해 돈을 모으려고 고서점에서 일을 한다. 이곳에서 주인인 글레이저와 호감가지만 쉽게 곁을 허락하지 않는 고서 복원 전문가인 캐롤린 롤리와 함께 일한다. 어느 날, 서점 옆 음식점에서 일어난 불로 서점이 피해를 입게 되어 일부 고서들을 복원하기 위해 롤리와 함께 그녀의 작업장 겸 주거지를 방문한다. 이곳에서 젖은 책을 말리기 위해 간지로 끼워 넣던 종이가 예사 물건이 아님을 알게 되고 롤리의 권유에 따라 재코비언 문서 전문가인 벌스트로드 교수를 찾아간다. 교수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롤리(앞의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롤리에게는 돈이 절박하게 필요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의 애원에 암호편지와 설교원본을 교묘하게 빼돌린 후 팔아넘기게 된다. 이후 롤리와 벌스트로드 교수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가 살해당했고, 벌스트로드 교수의 수첩에 적힌 이름을 보고 연락한 지적재산권 변호사 미쉬킨을 집에서 만나는 날, 암호편지를 노린 무장한 갱들과 한바탕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위대한 문학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이는 셰익스피어 위조 산업이 난립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바람과 그림자의 책’은 고서복원을 통해 우연히 발견된, 브레이스거들이란 자에 의해 17세기에 쓰여 진 편지와 암호문서가 셰익스피어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언급하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지적재산권 변호사 미쉬킨과 영화감독 지망생 크로세티, 고서복원전문가 롤리, 영문학 교수 하스, 셰익스피어 전문가 벌스트로드 교수, 러시안 갱단, 전문사기범 파스코, 폴란드의 암호해독 전문가, 미쉬킨의 아이들과 능력 있는 형 폴, 역시나 재주 많고 가족애가 넘치는 크로세티의 가족들간의 실타래 같이 얽힌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엮어져 있다. 교수와 함께 사라진 롤리와 미쉬킨의 감각을 일깨운 미란다는 크로세티가 알고 있는 롤리와 동일인임이 밝혀지고 예수회 신부인 폴의 정보망을 통해 이 일이 모두 벌스트로드 교수의 명예를 실추시켰던 셰익스피어 위조범 파스코의 또 다른 정교한 사기극임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극에 달한다.
속고 속이고, 어느 것이 진짜 얼굴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6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셰익스피어에 관련한 추리물 ‘바람과 그림자의 책’을 읽으며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르는 것에 굶주려 있었다. P.295' 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가 지금 열정을 가지고 대하는 것, 심취하는 것들에 대해 정말 잘 알고 도전하는 것인지 뒤돌아보며 생각하게 만든다. 전직 비밀요원으로 암호해독 전문가인 클림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예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다 읽고 보면 사기극에 얽힌 소설이라 할만한 ‘바람과 그림자의 책’을 읽는 중에도, 읽고 나서도 지나간 페이지를 자꾸 들추어보게 만드는 것은 내 마음을 움직이는 철학적 요소가 꽤 있어서이고, 이 때문에 앞으로도 가까운 곳에 이 책을 두고 볼 것 같다.
크로세티와 클림의 예술에 대한 대화 중 클림의 말. P 327 - 328
“아버지는 나치에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폭동에 잃고, 1944년 나는 열두 살 누나의 보살핌을 받는 아기로 거리에 나앉게 되었으니까. 나의 제일 오래된 기억은 불길에 휩싸인 시체 더미와 냄새야. 우리가, 우리 세대 전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르겠네. 덧붙이자면 이후 폴란스키처럼 나도 아내를 잃었다네. 미치광이에게 당한 건 아니었고, 몇 달씩 고문당해 죽었지. - 중 략 -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전쟁 후 독일 사람과 러시아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 안에 아직 생명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거네. 배우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았지. 폴란드는 살아남았고, 우리의 언어는 살아 있어서 사람들은 시를 썼어. 바르샤바는 재건되었고 벽돌 하나하나가 전쟁 전과 똑같았네. 밀로시는 노벨상을 탔고, 쉼보르스카도 노벨상을 탔어. 우리 가운데 교황이 나왔지. 누가 이걸 상상할 수 있었겠나? 그러므로 우리가 예술을 만들 때는, 이 예술은 거의 대부분 ‘아, 나는 너무 불쌍해, 얼마나 고난을 겪었는지, 악마 탓이다, 인생은 쓰레기야,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런 것보다 더한 무언가를 담고 있지. 내 말은 바로 이런 뜻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