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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에릭 라인하르트 지음, 이혜정 옮김 / 아고라 / 2010년 2월
평점 :
'신데렐라'는 서로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 주인공 네 명의 이야기가 뒤섞인 소설이다.
또각또각 킬힐을 신고 구두굽 소리를 내며 왕자님을 만나 명품을 휘둘른 여인을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제대로 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우선 무려 600페이지가 넘기 때문에,
마음에 각오를 하고 봐야 한다. (빼곡한 글에 대한 부담이란 ㅠ)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로랑은 금융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시인이며,후에 헤지펀드 회사를 차리게 된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독일에서 일하는
지질학자 티에리 트로켈로 인터넷에
아내 사진을 올리는 등 아내를 전시하는 기이한 행동을 한다.
세번째로 자기 아버지가 포크로 목을 찔러 죽은 후에
테러리스트를 꿈꾸는 파트리크 네프텔은 텔레비전 생방송 무대에서
유명인사들을 살해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살며,
네번째는 작가이자 기혼남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인
에릭 라인하르트로 파리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설정이 되어있다
(재미있는 것은 네번째 인물은 작가와 동명이인으로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중산층의 현실, 신데렐라에서는 각자 다른 네남자를
통해 중산층의 현실 그리고 희망과 고통 그리고 욕망을 절실히 보여준다.
이 책은 주식 시장, 신분 상승을 꿈꾸는 사람들,
가정의 붕괴, 실업 문제, 미디어 문화와 섹스 산업 등을 소재로 삼아 현실을 폭로한다.
나름 도발적이면서도 독특한 문체와 매력을 담은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프랑스 문단과 독자들은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새로운 형식의” 책이라며 환호했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솔직히 말해서 사랑, 사회, 정치에 대한 풍자 부분에서는 정말 박수를 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주인공들 중 작가를 제외한 세 남자가 저마다의 이상향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공한 증권 브로커였지만 이제 모든 것을 잃고
금융수사팀에 체포될 위기에 처한 로랑 달은 딱 한 번 만났을 뿐,
이름조차 모르는 어떤 여인을 찾아 떠나고,
회사 화장실에서 매일 여섯 번씩 자위행위를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티에리 트로켈은 결국 아내와 함께 스와핑 상대를 만나러 떠나고,
살인만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기회라고 믿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파트리크 네프텔은 생방송 토크쇼 출연자들을 모두 죽여버리기 위해 떠난다.
과연 이들이 평범한 삶을 벗어난다고 해서 다른 삶을 만날 수 있을까?
뭔가 특별한 그 무언가를 향해 달려갈 수 있을까?
자신들이 바꾸고 싶은 삶의 이상향으로 바꿔서 살아갈 수 있을까?
작품내내, 주인공들이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지만
작가는 이들의 아버지를 마치 한사람처럼 그린다.
주인공들 각자는 자신의 '아버지' 굴레 속에서 원하지 않는 일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책임과
굴레속에 자신을 맞기며 살아가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주식놀음을 해서(그것도 남의 돈을 가지고) 몇십 배의 이익을 얻는 로랑 달의 이야기,
실업자이자 은둔형 외톨이가 된 후 정신 이상 행동을 하게 되는 파트리크 네프텔의 삶,
이렇다 할 학벌을 갖지 못한 작가 에릭 라인하르트의 계속되는 좌절과 절망의 굴레.
이 책은 결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도,
그리고 희망을 주지도 않는다.
이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차갑고 냉랑한 사회에서 중산층의 아들로 태어난 이들이 교육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주입받고, 희망에 가득차 신데렐라를 꿈꾸고,하지만 거친 현실의 풍랑속에 뒤틀린 현실에 반항하고 그리고 좌절하는 과정을 작가는 때로는 유머스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네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만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또한 주인공들의 각박한 삶을 아주 편안하게 읽힐 수 있도록 자유로운 변형을 이용해 이야기를 좀 더 다채롭고 현실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과연 현대인들에게 작가가 말하는 '신데렐라'는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얼마나 동감을 할 수 있는걸까...
중산층으로 태어나 뭔가 다른 12시에 종이 울리면 변할 수 있는 신데렐라를 꿈꾸는,
똑똑한 신데렐라를 꿈꾸는, 그리고 그런 것들을 강요당하고 당연시 여기는, 그런 세계를 지향해 가는 현대인들에게 작가가 쏘아올린 작은 포탄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아무것도 꿈꾸지 마라, 신데렐라 따위는 없다. 현실은 시궁창일지도 모른다.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직시해라.'라는 너무나도 냉철하고 현실적인 그리고 사회를 정확히 직시하며 바라보는 그의 메세지가 바로 '신데렐라'란 작품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