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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 전前사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국내 사회주의자들의 움직임이 흥미롭다. 특히 김사국 등 국내파가 중심이 된 서울청년회와 러시아 코민테른에서 파견된 해외파의 격돌이 흥미진진하다.
아나키즘에 대한 명료한 정리와 분석도 돋보인다. 아나키즘은 단순한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각 개인·지방·조직이 자유롭고 동등한 권리 속에서 서로 연합해 정부를 구성하자는 것이지 정부 자체를 부정하는 사상은 아니(102쪽)”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화 「암살」을 통해 더욱 널리 알려진 김원봉을 비롯한 의열단원들도 아나키스트들이었다. 그들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총과 폭탄을 들고 ‘직접투쟁’에 나서는데 목숨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령사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 인상 깊다. 김익상 열사의 조선총독부 폭탄 의거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청산리대첩의 김좌진 장군도 아나키스트와 손을 잡았다가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다는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육군유년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통해 어릴 적부터 전쟁기계로 키워진 일본 군국주의 세력들의 광기를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는 것이 인상 깊다. 일본 군부의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읽을수록 군국주의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현재 일본 사회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이 전쟁기계들의 정신세계와 행태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 분석(7쪽)”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스스로 황국신민이 되어 일본의 전쟁기계들과 함께 독립군을 토벌한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등 대한민국 정치군인들의 뿌리도 결국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제4부 ‘식민지시대의 부호열전’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식민지시대 대부분의 부호들이 나라 팔아먹은 매국적들의 후예(256쪽)”이거나, 금광개발·부동산 투기·주식 등을 통해 벼락부자가 된 경우였다. 국가를 빼앗기고, 경제적 인프라 역시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21세기 초입의 한국이나 과거 일제시절의 백성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고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한 친일파의 재산 축적까지 정당화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