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나의 마음 그릇 (스프링) - 매일 나를 채우는 연습
김윤나 지음, 차상미 그림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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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들여다본 적 있나요? 내 마음이라는 그릇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요? 그릇의 크기는 어떤가요? 빈틈없이 가득 찼을까요, 아니면 아직 비어 있는 공간이 많을까요? 그 안에서 '나'와 관련된 것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타인의 기대와 시선이 차지하는 자리는 또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우리는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어, 이 질문들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지도 몰라요.


저자는 말해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고 나다운 삶을 원하지만, 현실에서는 타인의 시선과 의무, 비교에 묶인 채 하루를 보낸다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삶의 중심에 다시 나를 세울 수 있을까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해요. 나와 더 깊이, 더 깊이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에요. 그리고 그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 나가는 거죠. 답을 얻으려면 먼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의 방향이 드러나니까요. 이럴 때 나의 내면을 천천히 살펴보게 해주는 '성찰적 질문'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줘요.


이 책은 1년 52주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와의 대화'를 위한 질문에 답하도록 구성되어 있어요. 이를 위해 필요한 건 하루에 한 번, 잠깐의 시간입니다. 하루 중 언제라도 괜찮아요. 혼자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이면 충분하니까요. 주중에는 질문에 답하며 생각을 기록하고, 주말에는 한 주를 마무리하며 내가 남긴 답들을 천천히 돌아보면 돼요.

그럼, 이제 이 책에는 어떤 질문들이 담겨 있는지 몇 가지만 살펴볼게요.


만족스러운 삶이란? (week 12 수)

항상 분명한 꿈과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매일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의 형태도 있으니까요. 만약 나 역시 그렇다면 내게 만족스러운 삶이란 무엇일지 생각해보세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 마음에 든다고 느껴지나요?


그때그때 다르지 않을까요. 그래도 지금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 보자면, 우선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요. 내 책상 앞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때(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것저것 끄적일 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바라보며 멍하니 쉬는 순간들 등이 떠오르네요.



내 인생의 전환점은?(week 36 수)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생기고,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것에 '전환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과는 다른 방향을 만들어 주었던 전환점이 있다면 언제였나요? 그것은 내게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남아 있나요?

제 삶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예요. 그 시간을 지나오며 ‘나라는 사람’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외롭고 헛헛했던 마음이 서서히 채워졌어요. 제 성향을 비교적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나다움을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어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거치며 삶의 방향에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생겼고요. 시야는 넓어졌고, 경험의 결도 한층 깊어졌어요.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인생을 살다 보면 '나다움'을 찾아야만 하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 순간에 시간을 들여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갖느냐, 아니면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치느냐에 따라 이후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저는 약 3년 전,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어요. 내가 나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다는 강한 감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하던 일들을 잠시 멈추고,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책과 강의에서 던지는 질문에 하나씩 답하며,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책은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다만 이 과정은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체할 수 있어요. 하루에 하나의 질문에 차분히 답하고, 주말에는 한 주의 기록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천천히 따라가길 권하고 싶어요. 질문에 답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선명해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마음의 그릇을 '나'로 하나씩 채워가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그 시간이 1년 쌓이고 나면, 적어도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나를 알고 싶은 분, 나다움을 찾고 싶은 분, 나로 채워진 삶을 살아가고 싶은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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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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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가 뭘까 궁금해서 사전에서 찾아본 정의는 (원피스 따위의) 간단한 여름용 여자 양장. '아, 그렇구나'하고 책의 첫 장을 넘겼는데, 그곳에 적힌 '간단후쿠'는 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이 주로 입은 간단한 원피스식의 옷. 더 찾아보니 작업복처럼 단순하고 싸게 만든 옷, 쉽게 벗기거나 세탁하기 쉬운 옷으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여성들을 군의 관리 대상처럼 취급하기 위한 복장이었고, 그들의 인권과 존엄을 짓밟는 상징이었다고 해요. 아… 마음이 순식간에 무거워졌어요. 책 표지를 다시 봤어요.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커다란 노란 꽃의 조화가 이쁘게만 보였는데, 잘 보니 꽃에 간단후쿠가 숨어 있어요. 하얀색이 구름이 아니라 간단후쿠를 입고 있는 영혼처럼 느껴져요.


간단후쿠를 입고 간단후쿠가 된 10대 어린 소녀들. 여자라서, 가난해서 돈을 벌기 위해 머나먼 만주 땅에 왔지만, 실제 그녀들이 간 곳은 일본군이 전쟁터 곳곳에 설치한 위안소. 일본 제국주의 시기(특히 1930년대 후반~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 많은 여성이 속임수(공장 취업, 간호일 등으로 유인), 인신매매, 강제 연행 등의 방식으로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갔어요. 사람인데, 사람 취급받지 못해 차라리 자신을 간단후쿠라고 여기는 어린 소녀들의 고달픈 삶이 책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어요.


군인들을 데리고 자는 공장에서 10대 소녀들은 군인들과 돌림노래를 불러요.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을 상대했고, 폭력이 일상적이었으며, 임신과 질병,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려요. 어디인지 알 수 없고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는 곳. 그녀들을 지켜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강에서 간단후쿠를 빨고 철조망에 널면서 어쩌면 바랐는지도 모르겠어요. 간단후쿠라도 저 멀리 날아가기를. 하지만 철조망에 걸린 채 나풀거리기만 하는 간단후쿠. 꼭 본인 같아요. 쉽게 입고 쉽게 벗길 수 있는 옷. 인격을 상실한 채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삶을 사는 그녀들. 도망가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설령 도망가더라도 죽을 확률이 높고, 남은 이들에게 빚이 더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


작중 화자인 요코는 이름이 네 개 있어요.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 개나리, 이곳에서 지어 준 이름 요코, 교코, 아이코. 그래서 그녀의 몸에는 영혼 네 개가 모여 살아요. 하나의 영혼도 감당하기에 벅찬데 네 개의 영혼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일까요? 가끔 '나를 잊어버리는 병'에 걸려요.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였는지, 누구인지, 이름도 나이도 잊어버리는. 어쩌면 진짜 자기를 놓아버리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정신으로 살기 힘드니 나를 놓아야 그나마 버틸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끝내 놓지 않아요. 나를 지키고자 해요.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면 보내주겠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지 않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 속박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면서요.


요코는 부칠 수 없는 편지를 강물에 써요. 구구절절한 사연은 생략하고 '답장은 마세요.'라고만. 어차피 고향에 돌아가도 환영받지 못함을 알아서였을까요. 실제 전쟁이 끝난 뒤에도 피해자들은 사회적 낙인, 가난,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때문에 오랫동안 침묵해야 했어요. 요코의 편지에 저자는 답장해요. 이 책으로써요. 말할 수 없는 고통, 기록되지 못했던 기억을 남김으로써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였던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최초 공개적으로 증언하면서 이 문제가 국제적으로 알려졌어요. 그녀의 용기가 계기가 되어, 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증언하기 시작했어요. 일본 정부는 국가 간 공식 협정과 기금 지원으로 일정 조치를 해왔지만, 피해자 측이 요구하는 완전한 사죄·법적 책임·배상 측면에서는 아직 피해자·한국 사회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예요.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중 현재 생존자는 6명이라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기억을 이어가는 일이 우리 세대의 책임이 되었어요. 이 문제는 단순히 한·일 간의 외교 현안이 아니라, 전시 성폭력, 여성 인권, 정의, 평화의 문제니까요.


읽기 어려운 책이 있어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같은. 단어의 의미를 몰라서,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가기 힘든 책. 무거운 돌멩이 하나가 가슴을 계속 짓누르는 느낌. 그 무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 같은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지만,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그런 책이요. 이 책 또한 그랬어요. 빨리 읽을 수도, 낭독할 수도 없었어요. 몇 번을 덮었다 다시 폈다 했어요. 이 먹먹함과 무거움을 이겨내고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읽어야 했어요.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요. 그래야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요.


작가는 이 책을 쓰는 데 십 년이 걸렸다고 해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로 살아오신 분들은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내셨어요. 그 세월의 무게를 단 며칠 만에 소화하려니 힘든 거겠죠. 부끄럽기도 했어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언론에 나올 때나 반짝 관심을 가졌으니까요. 읽으면서 그분들은 어떻게 그런 삶을 견디셨을까 싶었어요. 저는 아마 제정신으로 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용기 있게 그때의 상황을 알렸기에 숨겨져 있던 게 드러났는데, 그런 용기도 어디서 나왔을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삶, 자신의 의지라곤 전혀 없는 삶,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했던 삶, 자신을 잊어야 그나마 살아갈 수 있었던 삶. 고유한 자아가 있는 한 사람을 어떻게 자기들 멋대로 사고팔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지, 그 폭력성에 치가 떨려요. 간단후쿠가 지금은 없을까요?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도 끊이지 않는 전쟁, 폭력, 학살…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도 잊지 않는 분들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렇게 글로 남아서 더 다행이에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알면 보이는 게, 행동하는 게 달라질 테니까요.


누구든 한 번은 읽어봤으면 하는 책입니다.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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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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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읽은 기억은 없지만 익숙해요. 아마 줄거리를 대충 들어봐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노인이 고생해서 잡은 큰 생선이 결국엔 가시만 남은 상황. 이렇게 허무한 이야기를 한다고? 싶었거든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멕시코 만류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 벌써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했어요. 그를 따르는 소년 마놀린도 부모의 만류에 다른 배를 타게 되지만, 산티아고를 살뜰히 챙겨요. 어느 날 산티아고는 홀로 먼바다로 나가요. 기필코 큰 고기를 잡겠다는 일념으로요. 하지만 그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요. 망망대해에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 혼잣말하고, 새, 물고기 등에 말을 걸죠. 마놀린이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끊임없이 하고요.


산티아고는 경험이 많기에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으면 운이 찾아올 때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침내 청새치 한 마리가 걸렸어요. 조각배보다 크고 힘도 센 녀석이기에 쉽게 잡히지 않아요. 이틀이 넘는 사투 끝에 드디어 청새치를 잡은 산티아고.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정신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지만, 혼자 힘으로 잡았다는 기쁨이 그를 감싸요. 하지만 운명은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아요. 끊임없는 상어 떼의 습격을 받으면서 결국 아주 큰 물고기를 잡았다는 흔적만 남긴 채 돌아와요.


〈노인과 바다〉는 1951년에 쓰였고, 1952년에 발표되었어요. 이때 헤밍웨이는 세계적인 대문호였지만, 동시에 슬럼프의 한가운데에 있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종군 기자로 활동하며 얻은 외상 후유증과 음주, 건강 악화, 이전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이어진 창작의 침체기, “헤밍웨이 문학은 끝났다”라는 비평가들의 냉소. 이런 절망 속에서 그는 쿠바 근처의 바다로 가요. 그곳에서 그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바다와 인간, 고독 등의 주제를 붙잡고 글을 써요. 그게 바로 <노인과 바다>죠.


그는 산티아고를 통해 자신을 증명해 내고 싶었는지 몰라요. 다들 자신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창작의 고통을 그는 온몸으로 받아들여요. 그게 숙명인 것처럼요.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산티아고의 말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는 그가 계속 써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 아닐까요. 하지만 아무리 뼈를 깎는 고통으로 완벽을 추구하려 노력하지만, 세상은 그걸 알아주지 않을지도 몰라요. 산티아고가 애써 잡은 청새치가 창작물이라면, 상어는 그 작품을 헐뜯는 사람들이겠죠. 하지만 그 패배한 흔적이라도 갖고 있는 것, 그게 중요한 것 아닐까요.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를 마지막으로 그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1961년 자살했어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요?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더 이상 이 정도 쓸 수 없다는 허탈감에서였을까요? 아니면 고독하게 싸워서 이뤄내는 창작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을까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을 자기들 마음대로 물고 뜯는 사람들에 지쳐서였을까요? 195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우울증, 알코올중독증에 시달려서 충동적으로 선택한 일일까요?


헤밍웨이는 글쓰기를 ‘빙산’에 비유했어요. 수면 위에 드러나는 건 단지 빙산의 1/8, 나머지 7/8은 바다 아래 감춰져 있죠. 헤밍웨이는 말해요. “작가는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가 작품을 결정한다.” 즉, 글에 드러난 부분보다 생략된 부분이 더 큰 무게를 지녀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게 빙산 이론이에요. 헤밍웨이의 문장은 짧고 명료하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요. 독자가 스스로 그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죠. 이건 젊은 시절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배운 태도와도 관련이 있어요. <노인과 바다> 표면에는 단순히 노인이 바다에 나가 물고기와 싸우는 이야기만 있어요. 하지만 그 아래엔 인간의 고독, 두려움, 숭고함이 겹겹이 있어요.


고전은 여러 방향에서 해석된다고들 하죠.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 현상에 빗대어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헤밍웨이처럼 뭔가를 제대로 이뤄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제 시작 단계라서 가야 할 길이 멀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목표 지점을 향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해야 겨우 도착하겠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고통스럽고 외롭고 고독하고 처절하고,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그 시기를 산티아고처럼 묵묵히 견디면 뭐든 되지 않을까요. 청새치까지 아니어도 아주 작은 물고기라도 낚을 수 있게 노력해 봐야겠어요. 비록 그 결과가 상어들에게 뜯길지언정 그런 걸 해봤다는 경험은 제게 남을 테니까요.


잘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에 희망을 품는 것 같아요. 목표한 걸 이미 다 이뤘다면, 아니면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어서 내 힘으로 노력해도 되지 않는 환경에 있다면, 좀 허무할 것 같아요. 삶의 의욕과 방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동사형으로 생각하라고 하나 봐요. 그러면 그런 삶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할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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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바다 - 백은별 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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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이란 단어의 뜻을 아시나요?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에요. 저는 이 단어를 알게 된 지 몇 달 되지 않았어요. 말 자체가 너무 이뻐서 찾아봤는데 고유어더라고요. 그래서 '윤슬의 바다' 제목 자체가 이쁘고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바다와 윤슬이라는 단어도 너무 잘 어울리고요.


봄꽃이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시절, 점심시간의 도서관. 관리되지 않아 방치된 불 꺼진 도서실에서, 햇빛을 조명 삼아 책을 읽는 남학생 바다. 그런 바다에게 첫눈에 반한 1학년 후배 윤슬. 폐쇄적이라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한 바다였지만, 바다의 그런 고요함이 좋았던 윤슬. 윤슬은 바다 곁을 맴돌면서 드디어 말을 걸어요. 바다와 처음 이야기한 날, 시간을 멈춘 윤슬. 윤슬에게는 초능력이 있어요. 시간을 멈추는 능력. 조금 더 오래 보고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시간을 버는 능력.


그런 윤슬이 신경 쓰였던 바다는 하교 후 윤슬을 집까지 데려다줘요. 둘은 별말이 없어요. 그냥 함께 걷는 그 순간이 좋았으니까요. 마음속 진심을 전하지 못한 채 부풀어 오르기만 하던 어느 날, 바다가 윤슬에 고백하고 둘은 사귀게 돼요. 서로 너무 아끼고 사랑했기에 당연하게 서로의 미래에 서로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윤슬은 원래 영원을 믿지 않았어요. 모든 건 사라지기 마련이고, 영원할 거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랑에 빠졌어요. 그런 윤슬은 생각해요. "굳이 사랑은 영원해야 한다는 법이 있을까. 찰나의 사랑도 진심이라면 사랑인 건데."


윤슬은 자신이 초능력자임을 고백해요. 바다는 불안해요. 부모님이 초능력 연구원이어서 초능력자를 발견하면 실험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거든요. 이 년 전 친한 친구였던, 순간 이동 초능력자였던 이준이도 그 능력이 들켜 결국 죽어요. 그들이 사는 시대는 초능력자를 인간 취급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게 당시 초능력자들이었던 거죠. 윤슬의 부모님은 미국으로 떠나자고 해요. 딸이 잡혀가게 내버려둘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윤슬은 시간을 멈춰서 매번 바다에게 가요.


실은 바다와 윤슬에게 일이 생겼어요. 둘이 손을 잡고 길을 가다 바다가 트럭에 치여 크게 다쳤어요. 능력이 있음에도 정작 필요한 순간에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함을 자책하는 윤슬. 바다는 다리를 크게 다쳐 움직일 수 없었고, 윤슬은 아무도 없는 새벽에야 바다를 보러 와요. 바다는 윤슬이가 이러다 부모님께 들키는 게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과 윤슬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서 갈등해요. 이 악물고 연락처도, 병원도 모두 바꿨지만 어떻게든 다시 찾아온 윤슬. 둘은 서로 사랑하는데 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 어째서 세상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요.


"인생에 리셋버튼이 있었다면 주저 없이 눌렀겠지만,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을 살기에 덧없는 것 아닐까. 그런 우리가 인간이라, 아름다운 거 아닐까." (P. 151)

윤슬의 바다. 이름부터 잘 어울리고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사랑이 전부인 젊은 시절이 있었는지 떠올려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20대 중반에 연애를 시작했기에 순수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엔 순수한 사랑 같은 걸 잘 떠올리고 꿈꾸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왜 그렇게 현실이 잘 보이던지요. 그래서 바다와 윤슬의 사랑이 순수하지만 아프게 다가왔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인, 다른 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절. 두 사람은 후회 없었을까요? 많이 힘들고 슬프겠지만, 그럴지도 몰라요.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사랑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어렸기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하지 못하는 비극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어른들이에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사회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누군가에게 덮어씌우고픈 이기적인 마음, 그런 시스템이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나라에서 시키는 거니까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 그런 어른들에 의해 고통받는 건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이에요. 세상은 다름이 있어야 발전하는데 왜 똑같은 걸 강요하는 걸까요? 나와 조금 다르면 왜 배척하려고 할까요? 그게 진화적으로 유리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의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어떤 게 옳은지 검토해 볼 수 있잖아요. 저도 가끔 편견에 휩싸일 때가 있는데,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그러니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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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 백은별 장편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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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을 잘 읽지 않아요. 그 시기를 지나왔으니까요. 어른이 읽어야 할 책만 해도 끝이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가끔은 궁금해요. 요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기 꿈을 펼치며 사는 청소년들도 있지만, 기사에서 접하는 내용은 우울한 게 많아요. 학폭, 따돌림, 우울, 자살 등. 

 

책날개를 펼치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꽤 많은 학생들이 본인들의 살날을 스스로 정하는, 자발적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어요. 어른들이 모를 뿐 학생들의 자살 결심은 교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요.' 충격이었어요. 최근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1년째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해요. (여성가족부, 2023 청소년 통계) 아이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요? 14세에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이야기가 지금의 현실을 전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 아팠어요. 

 

중2인 수아에게는 상처가 있어요. 초등학교 때 근거 없는 소문으로 따돌림을 당했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따라다닌 소문으로 부모님 몰래 손목에 자해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행복이란 단어가 무겁게만 느껴져요. 그래도 8년 지기 친구 윤서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하지만 윤서 또한 상처가 있어요. 7살 때 부모님이 윤서와 동반 자살하려고 했거든요.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윤서 혼자 살아남아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아이들은 그런 윤서의 소문을 듣고 음침하다면서 피해요. 내성적인 윤서는 내색하지 않아요. 언제나 부모님 사진이 들어있는 사진첩을 가지고 다닐 뿐이죠. 그 사진첩은 수아에게도 보이지 않지만요.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타인을 괴롭히는 걸 영웅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는 아이들이 있어요. 왜 그런 걸까요? 아직 미성숙하다는 건 변명이 되지 않아요. 가해자에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 피해자에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니까요. 예전과 달리 학폭에 관한 인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본인에게 몇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걸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어요.

 

윤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어요. 바로 자살할 날을 정해놓은 거죠. 부모님이 돌아가신 크리스마스 날 죽기로 해요. 학교 옥상에서 사진을 찍어 수아에게 보낸 윤서. 수아는 놀라서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달려가요. 하지만 윤서는 수아가 보는 앞에서 뛰어내려요.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은 수아는 엄마의 권유로 상담도 받고 병원에서 약도 받아요. 약까지 먹으면 정말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릴 것 같아 엄마 몰래 버리지만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과 어른들이 해주고 싶은 것의 차이가 느껴져요. 아이들이 바라는 건 힘듦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건데, 어른들은 그런 건 건너뛰고 해결책만 제시하려고 해요. 

 

중3이 되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아. 윤서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수아는 윤서처럼 D-day를 정하기로 해요. 크리스마스 날 죽기로 스스로 시한부가 되기로 결심한 거죠.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죽고 싶었던 수아에게 전학생 민이가 다가와요. 민이는 아역배우를 했을 만큼 잘생겨서 많은 사람의 호감을 얻지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그만의 상처가 있어요. 자기와 같은 아픔이 수아에게 보였기 때문에 계속 다가가서 결국은 친구가 돼요. 민이는 수아가 스스로 시한부가 되기로 결심한 걸 듣고, 살고 싶어지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해요. "울기도 하고 이겨내서 웃기도 하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라고 말하면서요.

시간이 흘러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날. 집을 나선 수아. 수아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될까요?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무거웠어요. 길에서 마주치던 청소년들의 숨겨진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거든요.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아이들의 마음속에 저런 우울과 절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미안했어요. 청소년기는 내가 누구인지 찾기에도 버거운 시기잖아요. 또래가 가장 소중할 때라 어떻게든 그 속에 속하려고 발버둥 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공부' 하나로만 아이들을 속박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들의 마음을 짓밟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면 어떨까요? 이런저런 조건 붙이지 말고요. 그냥 한 사람의 개성을 지닌 인격체로 존중하면서요. 아직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잘못된 길을 걸을 때도 있을 거예요. 그때 어른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돼요. 평소에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면 어떨까요? 그걸로도 아이들은 삶의 희망을 발견할지도 몰라요. 소중한 자기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초등학교 저학년인 두 아들이 있는 엄마로서, 나중에 우리 아이들은 이런 생각 하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자 마음먹는데, 가끔 잊어버려요. 이젠 잊지 않아야겠어요.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청소년들, 특히 어른들이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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