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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읽은 기억은 없지만 익숙해요. 아마 줄거리를 대충 들어봐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노인이 고생해서 잡은 큰 생선이 결국엔 가시만 남은 상황. 이렇게 허무한 이야기를 한다고? 싶었거든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멕시코 만류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 벌써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했어요. 그를 따르는 소년 마놀린도 부모의 만류에 다른 배를 타게 되지만, 산티아고를 살뜰히 챙겨요. 어느 날 산티아고는 홀로 먼바다로 나가요. 기필코 큰 고기를 잡겠다는 일념으로요. 하지만 그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요. 망망대해에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서 혼잣말하고, 새, 물고기 등에 말을 걸죠. 마놀린이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끊임없이 하고요.
산티아고는 경험이 많기에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으면 운이 찾아올 때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침내 청새치 한 마리가 걸렸어요. 조각배보다 크고 힘도 센 녀석이기에 쉽게 잡히지 않아요. 이틀이 넘는 사투 끝에 드디어 청새치를 잡은 산티아고.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정신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지만, 혼자 힘으로 잡았다는 기쁨이 그를 감싸요. 하지만 운명은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아요. 끊임없는 상어 떼의 습격을 받으면서 결국 아주 큰 물고기를 잡았다는 흔적만 남긴 채 돌아와요.
〈노인과 바다〉는 1951년에 쓰였고, 1952년에 발표되었어요. 이때 헤밍웨이는 세계적인 대문호였지만, 동시에 슬럼프의 한가운데에 있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종군 기자로 활동하며 얻은 외상 후유증과 음주, 건강 악화, 이전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이어진 창작의 침체기, “헤밍웨이 문학은 끝났다”라는 비평가들의 냉소. 이런 절망 속에서 그는 쿠바 근처의 바다로 가요. 그곳에서 그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바다와 인간, 고독 등의 주제를 붙잡고 글을 써요. 그게 바로 <노인과 바다>죠.
그는 산티아고를 통해 자신을 증명해 내고 싶었는지 몰라요. 다들 자신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창작의 고통을 그는 온몸으로 받아들여요. 그게 숙명인 것처럼요.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산티아고의 말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는 그가 계속 써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 아닐까요. 하지만 아무리 뼈를 깎는 고통으로 완벽을 추구하려 노력하지만, 세상은 그걸 알아주지 않을지도 몰라요. 산티아고가 애써 잡은 청새치가 창작물이라면, 상어는 그 작품을 헐뜯는 사람들이겠죠. 하지만 그 패배한 흔적이라도 갖고 있는 것, 그게 중요한 것 아닐까요.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를 마지막으로 그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1961년 자살했어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요?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더 이상 이 정도 쓸 수 없다는 허탈감에서였을까요? 아니면 고독하게 싸워서 이뤄내는 창작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을까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을 자기들 마음대로 물고 뜯는 사람들에 지쳐서였을까요? 195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우울증, 알코올중독증에 시달려서 충동적으로 선택한 일일까요?
헤밍웨이는 글쓰기를 ‘빙산’에 비유했어요. 수면 위에 드러나는 건 단지 빙산의 1/8, 나머지 7/8은 바다 아래 감춰져 있죠. 헤밍웨이는 말해요. “작가는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가 작품을 결정한다.” 즉, 글에 드러난 부분보다 생략된 부분이 더 큰 무게를 지녀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게 빙산 이론이에요. 헤밍웨이의 문장은 짧고 명료하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요. 독자가 스스로 그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죠. 이건 젊은 시절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배운 태도와도 관련이 있어요. <노인과 바다> 표면에는 단순히 노인이 바다에 나가 물고기와 싸우는 이야기만 있어요. 하지만 그 아래엔 인간의 고독, 두려움, 숭고함이 겹겹이 있어요.
고전은 여러 방향에서 해석된다고들 하죠.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 현상에 빗대어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헤밍웨이처럼 뭔가를 제대로 이뤄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제 시작 단계라서 가야 할 길이 멀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목표 지점을 향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해야 겨우 도착하겠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고통스럽고 외롭고 고독하고 처절하고,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그 시기를 산티아고처럼 묵묵히 견디면 뭐든 되지 않을까요. 청새치까지 아니어도 아주 작은 물고기라도 낚을 수 있게 노력해 봐야겠어요. 비록 그 결과가 상어들에게 뜯길지언정 그런 걸 해봤다는 경험은 제게 남을 테니까요.
잘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에 희망을 품는 것 같아요. 목표한 걸 이미 다 이뤘다면, 아니면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어서 내 힘으로 노력해도 되지 않는 환경에 있다면, 좀 허무할 것 같아요. 삶의 의욕과 방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동사형으로 생각하라고 하나 봐요. 그러면 그런 삶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할 테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