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산책
김종완 지음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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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간 속에서 지내요. 공간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색을 마주하면서 저는 어떤 곳을 좋아하나 생각해 봤어요. 일단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하는 느낌을 주는 곳을 좋아해요. 그곳에서 쉼이라는 선물을 받는 것 같거든요. 때론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생기를 되찾게 하는 곳, 그냥 와~~!! 하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공간도 좋아해요. 반면 뭔가 아쉬움이 남는 공간을 만날 때도 있는데,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균형과 조화가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곳이 그런 것 같아요.


공간이 주는 힘을 믿고, 공간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김종완 공간전략 디자이너. 2016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종킴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해 독창적인 공간 아이덴티티 정립을 첫 번째 원칙으로 두고, 브랜드의 상업적 성공에 핵심을 둔 디자인을 추구해요. 이 책은 그동안 다양한 선택을 하며 시도하고 도전한 프로젝트들을 소개해요.


책을 쓰면서 지나간 프로젝트들을 살펴보기 위해 실무 작업용 서버에 들어가 폴더의 번호를 살펴보던 저자. 스튜디오 설립 후 7년이 됐는데, 234번째 프로젝트가 계약되어 있었다고 해요.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적지 않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프로젝트를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미지의 세계에 있는 상상 속 인물의 행복을 기원하며 가치를 그려내는 직업'이라고 자기 일을 소개하는 저자는, 어린 나이에 스스로 미래를 정하고 계획을 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갖은 노력 끝에 가장 존경하는 스타 디자이너의 회사에 입사해 커리어를 쌓았어요. 하지만 귀국하는 순간, 오직 한 가지 목표만 생각해야 했다고 해요. 바로 '이 분야에서 되도록 빨리 입지를 다지자.' 이 목표 하나로 최선을 다해 달린 결과 공간을 그리는 디자이너였다가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길잡이가 되는 삶도 같이 살고 있어요. 새로운 직함이 느는 만큼 책임감도, 해야 할 공부도 늘어났지만 이를 계기로 본인 또한 성장하고 있다고 해요. 저자의 다음 목표는 분야의 한계를 없애고, 모든 분야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라고 해요. 나아가 어떤 브랜드하고도, 어떤 사람하고도 잘 어울리는 협업을 잘하는 것이라고 해요.


"앞으로 디자이너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는 일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활용 방안을 제시하는 기획력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P. 10)


📍 활명 : 고귀한 전통과 현대적 표현의 만남


동화약품에서 판매하는 활명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이자 일제강점기 때 비밀리에 독립군을 지원해왔다고 해요. '활명'은 동화약품의 프리미엄 뷰티 브랜드로 저자에게 플래그십 스토어 디자인 제안을 했어요. 활명의 코어를 '궁중 레시피'로 잡았어요. 장소는 건춘문을 마주 보고 있는 3층짜리 소형 건물로 결정했는데, 건물 옆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위치해 있어 예술 및 문화가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공존했고, 수많은 관광객이 한복을 입고 활보하는 활기찬 풍경이 펼쳐졌어요. 한국인의 시선에는 전통미를 살리되 고루하지 않고 현대적으로 풀어낸 느낌을 주어야 하고,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 고유의 전통이 물씬 묻어나면서 첨단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세련된 이미지를 충분히 드러내는, 균형을 찾으려고 했어요. 인터뷰, 브랜드 공부, 많은 논의 등을 거쳐 탄생한 공간. 공간 디자인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곳에 진열될 제품과 공간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라고 해요. 클라이언트도 만족스러워하고 방문객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여 관광객의 방문이 끊긴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고 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문제가 생길 때도 많았다고 해요. 저자는 그때마다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해요.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된다. 우리가 경계하는 건 문제가 생길 것이 두려워 아예 시도하지도 않고 디자인에 한계를 두는 행위다. 기성품은 안전하지만 한정적인 디자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떤 분야든 서로 다른 것이 섞여 새로운 것이 창조될 때 유일한 가치를 가진다." (P. 53)


책 제목인 <공간 산책>처럼 저자가 작업한 공간 여러 곳을 산책하듯 책을 읽었어요. 디자인할 공간의 컨셉을 잡고 이견을 조율하고 일정에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어요. 책 곳곳에서 진심을 담아 사람을 대하고 일하는 모습이 느껴져서 개성있고 따스함이 담긴 공간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진심으로 작업했지만 잘되지 않아 문을 닫아 공간이 없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갈 때면 슬픔을 느끼고, 모든 것이 산업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에 힘들어하는 저자의 고충도 느껴졌어요. 어떤 일이든 기쁨과 함께 공허함도 찾아오게 마련인데, 독보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 항상 흐름을 앞서가며 유연하게 사고하고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저자의 노력이 느껴졌어요. 앞으로 마주하는 공간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할 것 같아요. 제가 있는 공간은 어떤 이야기와 색을 담을 수 있을지도 고민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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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타임, 생체시계의 비밀 - 수면, 건강, 삶에 혁명을 불러오는 최적의 시간을 찾아서
러셀 포스터 지음, 김성훈 옮김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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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건강, 일, 운동 등에 최적의 시간이 있을까요?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궁금해요. 제가 하루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부터 생각해 봤는데, 정신없이 보내는 것 같아요.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으니 뭐 하나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쑤시고 다니는 느낌? 이렇게 해서는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던 요즘이에요.

 

책의 저자인 러셀 포스터는 영국의 저명한 신경과학자이자 일주기 리듬의 세계적 권위자예요. 이 책은 그가 40년에 걸쳐 생물학적 시간의 본성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소개한 것이에요. 수면과 일상의 리듬에 대한 최신 과학과 연구, 흥미로운 사례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정보를 이해하고 나면, 10대와 노년층이 회복 수면을 취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 기분과 의사결정 능력이 오전과 오후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 야간 교대근무가 건강에 치명적인 이유, 신진 대사를 강화하는 식사 시간과 면역력이 강화되는 약 복용 시간은 언제인지, 더 나은 수면을 위해 빛을 사용하는 방법 등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요. 또 독자들이 궁금해할 질문을 뽑아 Q&A에 실었고, 나의 생체리듬을 알아볼 수 있는 '크로노타입 검사지(아침형, 중간형, 저녁형)'와 수면일기 작성법도 부록에 실어서 누구든 적용할 수 있어요.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독자들에게 최신의 과학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보와 지침을 제공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자신의 생체시계가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 지식을 이용해서 자기에게 적합한 최적의 개인 루틴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P. 24)

 

우리 몸은 24시간 생체시계의 지배를 받아요. 이 시계는 우리에게 언제 자고, 먹고, 생각하고, 다른 여러 가지 필요한 일을 하면 좋은지 충고해줘요. 이렇게 매일 내부에서 조정이 이루어지는 덕분에 우리는 역동적인 세상에서 최적의 기능을 선보이고, 지구의 24시간 자전에 의해 만들어지는 밤낮 주기의 요구에 맞추어 우리의 생물학을 미세 조정해요. 우리 몸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재료가, 올바른 장소에, 올바른 양으로, 올바른 시간에 있어야 해요. 수천 가지 유전자가 특정 순서에 켜지고 꺼져야 해요. 단백질, 효소, 지방, 탄수화물, 호르몬 등이 정확한 시간에 흡수, 분해, 대사, 생산되어야만 성장, 복제, 대사, 운동, 기억 형성, 조직 복구 등이 이루어져요. 이를 위해서는 하루 중 올바른 시간에 적당한 행동이 이루어지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내부 시계가 이 모든 일을 제때 정확하게 조절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혼돈에 빠져들 거예요.

 

그렇다면 생체시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과학자들은 SCN(시각교차위핵)이라는 뇌 영역에서 찾았어요. SCN에는 약 5만 개 정도의 뉴런이 들어 있는데, 각각의 뉴런이 자체적으로 시계를 갖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이 뉴런들은 서로 이어져 있어요. 시계 유전자의 대략 24시간의 단백질 생산과 분해 주기의 분자 피드백 고리가 전기 신호나 호르몬 신호로 전환되어 나머지 신체에서 일주기 시계를 조정하는 작용을 해요. 시계 유전자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로 인해 '아침형, 저녁형, 중간형' 크로노타입으로 분류돼요.

 

일주기 리듬을 밤낮의 주기와 '동조화'해주는 가장 중요한 신호는 빛, 특히 새벽과 황혼의 빛이에요. 눈이 빛을 감지해서 생체시계를 조절하기에 눈을 상실하면 빛에 의한 생체시계 조절이 불가능하다고 해요. 저자는 망막 안에 있는 막대세포와 원뿔세초 외에 제3의 광수용체인 pRGC(감광망막신경절세포)를 발견했어요. 이 pRGC를 통해 빛이 감지되고 일주기 리듬이 조절된다고 해요.

 

SCRD(Sleep and circadian rhytym disruption 수면 및 일주기 리듬 교란), 즉 생체시계가 망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감정, 인지, 생리학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커요. 엑슨발데스 유조선 사고,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등은 실무자의 수면으로 인한 주의력 과실로 인해 발생했고, 미국에서는 매년 32만 8,000건의 졸음운전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보건의료계에서는 의료과실로 해마다 환자 9만 8,000명이 사망한다고 추정된다고 해요. 이는 야간 교대근무, 장기간 근무, 시차증 등 일주기 리듬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오랜 기간 야간 교대근무를 해도 일주기 리듬은 바뀌지 않고, 우리 몸은 여전히 낮 시간에 맞춰 동기화되어 있기에, 이들은 일주기 리듬과 수면 교란에 큰 영향을 받아요.

 

그렇다면 SCRD를 완화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자신에게 맞는 일상 루틴을 찾아서 고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침에 최대한 자연광을 받기, 낮잠은 20분 내외로 제한, 저녁 시간에 조명 줄이기, 일관된 수명/각정 일정, 밤에 조명을 어둡고 하고,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고, 좋은 매트리스와 베개를 사용하는 등의 적절한 수면 환경 조성, 수면제 복용 최소화, 취침에 가까운 시간에는 카페인 같은 자극제 피하기 등이에요. 기업 차원에서는 졸음 감지 기술을 이용해서 운전자를 보호하거나 작업장 조명을 1000럭스 이상 충분히 밝게 유지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해요.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우리 몸속 시계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에요.

 

"일주기 리듬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시간의 양이 아니라 타이밍이다. 일주기 리듬은 행동을 조절해 최고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우리 몸은 올바른 재료를, 올바른 장소에, 올바른 양으로, 올바른 시간에 필요로 한다, 생체시계는 이런 필요를 예상해 서로 다른 요구들을 충족해준다. 일주기를 현명하게 이용하는 사람은 더 오래, 더 행복하게 균형 잡힌 충만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P. 434)

 

저자는 생체 시계의 효율을 높여주는 최적의 시간에 대해 여러 가지 팁을 제시(중요한 의사결정 시간, 운동하기 좋은 최적의 시간, 밥 먹는 시간, 약 먹는 시간 등)하면서 누구나 내 몸에 딱 맞는 시간과 리듬을 발견해 최적의 루틴을 설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해요. 그리고 교육을 통해 일주기 리듬과 수면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변화시켜 자원 낭비를 막고, 건강도 개선하게 되길 바란다고 해요.

 

크로노타입 설문을 해봤는데, 저는 중간형이더라고요. 책에도 나와 있지만 생체시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요. 나이, 생활 환경 등이 다르기에 어쩔 수 없겠죠. 책을 통해 나에게 맞는 최적의 시간을 발견하고 제대로 활용하면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체시계에 맞지 않는 활동을 하지 않는 거겠죠. 밤새워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이 개인의 건강을 해치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해요. 저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하루 종일 멍한 기분이 들면서 기분도 나빠지더라고요. 일주기 리듬을 현명하게 사용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어요. 내 몸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즐거운 동행을 할 수 있게 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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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0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 내용을 충실하게 알려주는 좋은 리뷰입니다.
 
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 - 다면체부터 가이아까지, 과학 문명의 컬렉션들
홍성욱 지음 / 김영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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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하면 왠지 복잡한 수식, 기호 등이 떠올라요. 말로 쭉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지만 그것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면도 있어요. 최근 과학책을 조금씩 읽으려고 노력 중인데, 재미있지만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했어요. '그림'이 함께 있다면 조금은 더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기대되었어요.

 

과학기술학자인 홍성욱 저자는 강의와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수집한 진기한 그림들을 이 책 한 권에 담았어요. 이미지를 통해 과학의 역사를 조금은 새로운 각도에서 읽어보자는 의도에서요. 11년 만에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는 최근에 연구한 것을 추가하고 그림의 원본에 드러난 디테일을 살렸다고 해요.

 

1부는 세상의 근본원리를 탐구했던 플라톤의 다면체로 시작해서 튀코 브라헤, 갈릴레오까지 근대 과학의 탄생을 이끈 주요 인물들이 나와요. 특히 천문학의 발전을 이끈 코페르니쿠스, 튀코 브라헤, 케플러가 비중 있게 다뤄지며, 책에 나온 여러 그림의 변화를 보면서 우주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어요.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이자 천문학자인 리치올리의 <새로운 알마게스트> (1651) 표지 그림을 보면, 당시 과학계에서 권위 있게 받아들여지는 우주론이 바뀌는 상황을 포착할 수 있어요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은 폐기되고, 코페르니쿠스 vs 브라헤의 우주관을 저울질 하는 여신이 있는데, 브라헤 쪽으로 약간 기운 것으로 나타나요. 하지만 브라헤의 우주관은 장수하지 못해요. 요한 가브리엘 도플메이어와 요한 밥티스트 호만이 1742년에 쓴 <우주의 지도>라는 책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 17세기 과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줘요.

 

2부에서는 이성과 근대성으로 대표되는 근대 과학의 특징을 이미지로 이야기해요. 근대 출판물의 표지 그림과 권두화, 과학자들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컴퍼스 등이에요. 특히 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 (1795) 그림에서 뉴턴은 구부정한 자세로 컴퍼스를 들고 세상을 재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는 이성의 신에 복종하는 세태를 비판하려는 의도라고 해요.



과학사에서 주변부로 여겨졌던 여성과 과학자의 조수(테크니션)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프린키피아> 프랑스어판 번역자이자 볼테르의 연인이었던 샤틀레 부인과 남편과 함께 화학혁명을 이끈 라부아지에 부인이 대표적인데, 그들은 과학자로서 충분한 능력과 역할을 보여주었음에도 오늘날 각각 유명 철학자의 연인, 라부아지에의 아내로서만 여겨질 뿐이에요. 라부에지에 부인이 그린 실험실 그림에서 어둡게 그림자 처리된 과학자의 조수들이 있어요. 해당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과학사에서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어요. 이에 저자는 이야기해요.

 

"이들의 얼굴을 복원하는 것은 과학의 역사에서 주변부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와 중요성을 드러내고, 이들의 역할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과학의 역사를 볼 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감춰진,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목소리,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과학 활동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P. 231~232)

 

3부는 뇌의 이미지, 진화론에서 등장하는 나무의 이미지, 데이터의 시각화, 가이아의 이미지를 분석했어요.

 

과학과 관련한 그림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줄 몰랐어요. 모르면 그냥 휙 지나쳐 버렸을 텐데, 책의 설명을 읽으면서 천천히 살펴보니 그제야 눈에 하나씩 들어왔어요. 하나의 그림에 하나의 주제가 담겨 있기도 하고, 다양한 주제가 담긴 것을 보면서 그림은 역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림을 통해 많은 것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해요. 그림과 함께 명확한 설명이 함께한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글로만 읽는 것보다 함께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우니까요. 많은 이야기 가운데 과학사에서 주변부로 여겨졌던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 또한 유명한 과학자만 기억하지 그 사람이 발견할 때까지 같이 힘써준 많은 사람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더라고요.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텐데 말이에요.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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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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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낯설고 독특한 제목. 무표정한 표정에 머리에는 신문(?)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전자 담배를 무심하게 쥔 듯한 표지를 장식한 한 여성. 그녀의 꼿꼿한 자세에서 자신감이 느껴지지만,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눈에서는 책임감과 약간의 외로움마저 엿보여요. <일간 이슬아>로 유명한 이슬아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가녀장의 시대>에서 작가님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이것은 제가 아직 본 적 없는 모양의 가족드라마입니다. 늠름한 아가씨와 아름다운 아저씨와 경이로운 아줌마가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지 궁금했습니다. 실수와 만회 속에서 좋은 팀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TV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작은 책 한 권이 가부장제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무수한 저항 중 하나의 사례가 되면 좋겠습니다. 길고 뿌리깊은 역사의 흐름을 명랑하게 거스르는 인물들을 앞으로도 쓰고 싶습니다." (P. 311 작가의 말 중에서)


30세 여사장 슬아와 55세 부부 직원인 복희와 웅이가 일하는 낮잠 출판사. 정규 월급, 보너스는 물론 직원 복지까지 갖춘 어엿한 회사예요. 이곳은 각자 역할이 정해져 있는 수직적인 관계의 직장이에요. 슬아는 원고를 쓰고, 글쓰기 강의, 북토크, 인터뷰, 출판사 업무, 온라인 회의 등 사장의 역할을 하고, 복희는 음식을 담당하는 정규직 직원, 웅이는 청소, 사장님 운전기사, 기타 잡일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직원이에요. 집안일에 정당한 페이를 지급하는 첫 회사인 셈이죠. 출판사에서 존댓말을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가끔 부모와 자식의 자아가 튀어나와 반말이 나오기도 하는 곳이죠.


슬아는 새벽에 일어나 요가부터 시작하고 하루 일정을 빽빽하게 소화하느라 바빠요. 그런 사장을 본 직원들은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저래서 사장하나 봐. 우리는 테레비나 보자."라며 혀를 내둘러요. 가끔 그들끼리 소곤소곤 "쟤 바보 아냐? 가끔 보면 좀 모자란 것 같아. 은근 게을러.” 등 사장님 뒷담화도 하면서요. 아주 바쁜 와중에도 데이트해야겠다며 데이팅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슬아를 보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웅이와 복희. 웅이가 양쪽 팔에 청소기와 대걸레로 문신하는 장면, 이불 위에서 과자를 먹으며 부스러기를 흘려도 자기 일이 아니라 상관하지 않는 복희의 모습 등 절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장면이 많아요.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마감과 싸우는 슬아,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은 슬아가 일할 수 있게 뒷받침해 주는 두 직원. 그들 덕에 슬아는 낮잠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책을 10편이나 낼 수 있었을 거예요. 가녀장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지니고 있는 슬아를 묵묵히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면서 응원해 주는 직원들이 있기에 살가운 표현을 하지 못하는 슬아는 그들을 은근히 챙겨요. 서로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그들의 관계가 낯설지만 좋게 느껴졌어요. 가족이라 하면 끈끈하게 얽혀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조금 벗어나려 하면 그것을 서운해하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에요. 처음 보는 가족관계여서 산뜻하게 느껴졌어요.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복희는 음식 만드는 데만은 천재다. 슬아는 복희의 재능을 사서 누린다. 복희는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 (P. 40)

참 많이 와닿았던 구절이에요. 집안일은 같이 사는 사람 모두 함께해야 하는 일임을 어려서부터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남녀 구분 짓지 말고요.


"명강사 이슬아의 지론에 따르면 글쓰기에 관해 천재가 아닌 아이는 없었다. 동시에 계속해서 천재인 아이 역시 없었다. 꾸준히 쓰지 않는 이상 말이다. 반복하지 않으면 재능도 빛을 잃을 뿐. 즐기면서 계속 쓰라! 그는 아이들에게 탁월함과 성실함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주입식으로 교육하며 수많은 십대 작가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P. 55)

최근에 읽은 '그릿' 책이 생각났어요. 역시 뭐든 꾸준히 해야 하는 거네요. 즐기면서 계속 쓰라!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해야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거였어요.


책을 다 읽고 '신선하다! 재밌다! 어떻게 이런 소재로 소설을 썼을까?' 생각했어요. 본명이 그대로 나오는 소설이라니! 참 용감하고 감출 것이 없는 사람이구나 느끼기도 했어요. 왜 사람들이 이슬아 작가에 대해 많이 언급하는지 이 책 한 권만으로 알 수 있겠더라고요. 모부와 함께 살면서 직장 상사인 딸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가 낯선 것 같으면서도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TV 등에서 흔하게 보던 식상한 가족드라마가 아니라 새로운 가족드라마를 보면서 흥미진진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제 무의식에 이런 생각이 어느 정도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는 가족 이야기, 가족으로부터 훌훌 해방되는 이야기 또한 꿈꾸고 있다니 벌써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기도 하네요. 가부장, 가녀장이라는 말은 권위도 느껴지지만, 책임감 또한 막중하다는 생각하기에 그런 말 자체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봐요. 가족의 형태 등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음도 알았어요. 저는 그런 편견의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나 다시 한번 점검해보게 되네요.


이슬아 작가만의 가족드라마가 궁금하신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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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이태형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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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심코 올려다본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존재가 따스한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조용히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자주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문학적 감상으로만 별을 바라보고 있었지, 정작 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상대를 더 잘 알게 되면 더 사랑하게 된다던데, 이 기회에 별에 대해 알고 싶었어요.


자신을 별 보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이태형 저자. 1989년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을 발간한 것이 계기가 되어 30여 년을 별밤지기로 살았어요. 천체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국내 최초로 소행성을 발견해서 '통일'로 명명하고, 여러 천문대를 기획하고 운영하기도 하면서요. 이번 책은 34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별에 관한 정보를 최근 관측 자료를 토대로 수정했다고 해요. 북쪽 하늘의 별자리, 봄, 여름, 가을, 겨울철의 별자리와 별자리표, 성도 사용법 등 부록도 담겨 있어요.


인간이 밤하늘에 보이는 별을 연결하여 이름을 붙인 것을 별자리라고 해요. 고대부터 있었던 별자리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 년 전에 살았던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에요. 그 시절 초원에 정착했던 목동에 의해 별자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를 거쳐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별자리가 그리스로 전해졌고, 그리스인은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별자리의 주인공을 바꿨어요. 고대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암흑시대로 알려진 중세 시대 동안 별자리는 사람들 기억 속에 대부분 사라졌다가, 르네상스 시대가 오면서 다시 등장했어요. 이때부터 성도(별 지도)가 그려지고 별자리 목록도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1922년 헨리 러셀의 주도 아래 총 88개의 별자리를 확정했어요.


북쪽 하늘의 별자리 중 큰곰자리를 소개할게요.

책에는 큰곰자리의 약어, 약자, 영문, 위치, 자오선 통과, 실제 크기, 큰곰자리를 구성하는 주요 별의 특성, 큰 곰의 상상도, 찾는 법, 전해지는 이야기 등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요.


북두칠성은 매일 밤 북쪽 하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극성이에요. 많은 사람이 북두칠성을 독자적인 별자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큰곰자리의 일부분이에요. 북두칠성을 이루는 일곱 별은 하나만 빼고 모두 2등성으로 밝기가 같고 밝은 편이라 금방 눈에 띄어요.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축으로 하루에 한 번씩 그 주위를 회전하므로 밤에는 시계의 역할을 해요. 국자 모양의 손잡이 방향에 따라 계절과 시간도 알 수 있어요. 봄과 여름에는 북두칠성을 저녁 하늘 높은 곳에서 볼 수 있고, 가을과 겨울에는 지평선 근처에 있어서 쉽게 찾기 어려워요.


한국의 옛사람들은 북두칠성을 두려워했다고 해요.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병에 걸리면 칠성당에 찾아서 북두칠성에 빌었고, 사람이 죽으며 관 속에 북두칠성을 그려 다음 생의 복과 장수를 기원하기도 했어요. 아라비아에서는 북두칠성이 관을 메고 가는 낭자들의 모습이라고 보아서 불길한 별로 여겼대요. 동양의 점성술에서도 북두칠성을 인간의 죽음을 정하는 별로 여기기도 했다고 해요.

지극성으로 북극성 찾는 방법, 북두칠성의 두 번째 손잡이에 해당하는 제타별 미자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별인 알코르가 시력검사의 별로 불린다는 이야기도 알려줘요. 눈이 좋은 사람만 알코르와 미자르를 구별할 수 있어서 고대 로마에서는 군인을 뽑는 시력검사에 이 별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해요.


큰곰자리에 전해지는 이야기도 알려줘요. 옛날 아르카디아에 칼리스토라는 공주가 살았는데, 그녀는 훌륭한 사냥꾼으로 아르테미스의 추종자였어요. 남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제우스가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졌어요. 피해 다녔지만 어쩔 수 없이 제우스의 아이를 뱄어요. 다른 이들에서 신의를 저버렸다고 평가되어 인적 없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낳았고, 이름을 아르카스라고 지었어요. 헤라는 화가 나 칼리스토를 흰곰으로 만들어 버렸고, 아르카스는 친절한 농부에 의해 자라났어요. 아르카스가 자라 사냥하다 칼리스토와 마주쳤는데, 칼리스토는 자기 모습이 곰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아들을 껴안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던 아르카스는 활시위를 당겼어요. 이때 제우스가 아르카스를 작은 곰으로 변하게 하고, 칼리스토와 함께 하늘로 올려 별이 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볼 수 있는 별자리마다의 특징을 위처럼 자세히 알려주고 있어요. 한 번에 다 알기는 어렵겠지만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볼 때마다 저 별자리는 뭐였지? 찾아보면서 알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저자는 별자리 여행은 눈으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해요. 별자리 여행의 가장 좋은 준비물은 별지도로 책 맨 뒤에 실린 전천 성도를 복사해서 늘 가지고 다녀보라고 해요. 별이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그것을 꺼내 하늘과 맞춰보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별자리가 머릿속에 하나둘 자리 잡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해요. 별자리를 익히려고 꼭 시골로 여행을 떠날 필요도 없다고 해요. 도시의 밤하늘은 별자리의 뼈대를 이루는 밝은 별만 보이는 요점정리 판이기 때문에 처음 별자리를 익힐 때는 더 도움이 된다고 해요.


별자리에 대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그만큼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 없었다는 얘기겠죠. 많은 내용이 들어있다 보니 한번 읽어서는 제대로 알기 어려워요. 저도 지금 몇 가지만 기억나거든요. 저자가 말한 대로 별지도를 복사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별지도로 별자리를 찾은 다음, 책에 나오는 그 별자리에 관련된 내용을 읽으면 더 기억에 잘 남을 것 같아요. 강원도 시댁에 가끔 가면 별이 쏟아질 듯 해서 너무 좋은데, 도시에서는 별을 제대로 보기 힘들어서 어려워 아쉬웠어요. 그런데 도시에는 밝은 별만 보이기에 처음에 별자리를 익힐 때는 더 좋다고 하니 도시의 밤하늘도 열심히 올려다봐야겠어요. 옛사람들이 지어놓은 별자리 이야기에 저만의 이야기도 보태면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어요.


재미있는 별자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께 추천해 드려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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