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 - 다면체부터 가이아까지, 과학 문명의 컬렉션들
홍성욱 지음 / 김영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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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하면 왠지 복잡한 수식, 기호 등이 떠올라요. 말로 쭉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지만 그것 때문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면도 있어요. 최근 과학책을 조금씩 읽으려고 노력 중인데, 재미있지만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했어요. '그림'이 함께 있다면 조금은 더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기대되었어요.

 

과학기술학자인 홍성욱 저자는 강의와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수집한 진기한 그림들을 이 책 한 권에 담았어요. 이미지를 통해 과학의 역사를 조금은 새로운 각도에서 읽어보자는 의도에서요. 11년 만에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는 최근에 연구한 것을 추가하고 그림의 원본에 드러난 디테일을 살렸다고 해요.

 

1부는 세상의 근본원리를 탐구했던 플라톤의 다면체로 시작해서 튀코 브라헤, 갈릴레오까지 근대 과학의 탄생을 이끈 주요 인물들이 나와요. 특히 천문학의 발전을 이끈 코페르니쿠스, 튀코 브라헤, 케플러가 비중 있게 다뤄지며, 책에 나온 여러 그림의 변화를 보면서 우주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어요.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이자 천문학자인 리치올리의 <새로운 알마게스트> (1651) 표지 그림을 보면, 당시 과학계에서 권위 있게 받아들여지는 우주론이 바뀌는 상황을 포착할 수 있어요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은 폐기되고, 코페르니쿠스 vs 브라헤의 우주관을 저울질 하는 여신이 있는데, 브라헤 쪽으로 약간 기운 것으로 나타나요. 하지만 브라헤의 우주관은 장수하지 못해요. 요한 가브리엘 도플메이어와 요한 밥티스트 호만이 1742년에 쓴 <우주의 지도>라는 책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 17세기 과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줘요.

 

2부에서는 이성과 근대성으로 대표되는 근대 과학의 특징을 이미지로 이야기해요. 근대 출판물의 표지 그림과 권두화, 과학자들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컴퍼스 등이에요. 특히 윌리엄 블레이크의 <뉴턴> (1795) 그림에서 뉴턴은 구부정한 자세로 컴퍼스를 들고 세상을 재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는 이성의 신에 복종하는 세태를 비판하려는 의도라고 해요.



과학사에서 주변부로 여겨졌던 여성과 과학자의 조수(테크니션)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프린키피아> 프랑스어판 번역자이자 볼테르의 연인이었던 샤틀레 부인과 남편과 함께 화학혁명을 이끈 라부아지에 부인이 대표적인데, 그들은 과학자로서 충분한 능력과 역할을 보여주었음에도 오늘날 각각 유명 철학자의 연인, 라부아지에의 아내로서만 여겨질 뿐이에요. 라부에지에 부인이 그린 실험실 그림에서 어둡게 그림자 처리된 과학자의 조수들이 있어요. 해당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과학사에서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어요. 이에 저자는 이야기해요.

 

"이들의 얼굴을 복원하는 것은 과학의 역사에서 주변부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와 중요성을 드러내고, 이들의 역할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과학의 역사를 볼 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감춰진, 이름 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목소리,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과학 활동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P. 231~232)

 

3부는 뇌의 이미지, 진화론에서 등장하는 나무의 이미지, 데이터의 시각화, 가이아의 이미지를 분석했어요.

 

과학과 관련한 그림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줄 몰랐어요. 모르면 그냥 휙 지나쳐 버렸을 텐데, 책의 설명을 읽으면서 천천히 살펴보니 그제야 눈에 하나씩 들어왔어요. 하나의 그림에 하나의 주제가 담겨 있기도 하고, 다양한 주제가 담긴 것을 보면서 그림은 역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림을 통해 많은 것을 내포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해요. 그림과 함께 명확한 설명이 함께한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글로만 읽는 것보다 함께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우니까요. 많은 이야기 가운데 과학사에서 주변부로 여겨졌던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 또한 유명한 과학자만 기억하지 그 사람이 발견할 때까지 같이 힘써준 많은 사람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더라고요.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텐데 말이에요.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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