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왈가닥 비바리 케이팩션 5
천영미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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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시작이 그렇듯 주변은 온통 어슴프레하고, 고요함을 너머 적막함에 에워싸인 듯하다. 그리고 내 안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불현듯 내 안에 깃든 생명체들을 잘 길러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바다'라 불린다.나는 모든 생명체를 귀히 여기는 존재이자, 생명체 하나마다 깃들어 있는 삶의 의미를 존중하고 돕는 존재이며, 위대한 생명의 근원지다. 그런 나를 인간들이 고작 '바다'라는 명칭으로 부를 뿐이다. 9-10쪽

 

 

"현욱 도령, 있잖아, 슬픔은 돌멩이랑 비슷해."

"돌멩이? 그게 무슨 ......."

"처음에 슬픔은 주머니 속 깊이 감춰 둔 뾰족한 돌멩이 같거든. 그 날카로운 모서리에 여기저기 찍히면 피가 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슬픔이란 건 둥글둥글해져. 예전에는 아방(아버지)을 삼켜버린 이 바다가 저주스럽고 무서웠는데, 이젠 괜찮아. 이 바다에 깃들어 사는 내 삶이 꽤 괜찮아지고 있거든."

'이 아이를 이토록 강하게 만드는 힘은 뭘까?'

현욱은 거대한 슬픔조차 이 아이를 삼킬 수 없었던 이유를 궁금해하며, 새까맣게 타버린 생선을 한입 더 베어 물었다. 101쪽

김만덕, 1793년 제주의 심각한 흉년이 계속되자 조정에서는 2만 섬의 구호 식량을 보내지만 수송 선박 다섯 척이 침몰하면서 구호정책은 실패하고 제주의 백성들을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김만덕은 전 재산을 풀어 쌀을 사서 구호식량으로 기부하여 백성들을 살렸다. 제주의 의녀 義女 김만덕 스토리다. 이러한 그녀의 선행이 알려지자 정조는 제주목사 이우현을 통해 소원을 물어본다. 그녀는 한양에서 궁궐을 보고 싶고 금강산도 보고 싶다고 했다. 관의 허락 없이 제주민은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관행을 깨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제주, 조선 시대의 제주는 지금의 휴양지가 아니었다. 죄를 지은 양반들의 유배지였고, 탐라 주민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출륙금지령을 국법으로 정하여 탐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감옥 아닌 감옥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가 아는 그녀의 스토리는 [조선의 왈가닥 비바리]로 재탄생했다. 문학박사인 천영미 작가는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강사로 일했고 현재 호주 시드니에서 인문학 강사로 활동 중이다. 외국인에게 한국 역사와 문화를 가르친다. 첫 장편 [조선의 등 굽은 정원사]로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첫 문장부터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강한 문장에 매료되었다! '바다'는 왈가닥 비바리의 인생에서 결코 제외할 수 없는 대상이다. 비바리의 삶의 과정과 교차하여 묘사하고 있는 '바다 이야기'는 비바리의 모든 것이다. 사랑하는 아방(아버지)를 삼켜버렸으나 모든 생명체를 품어 기르는 바다는 탐라 주민들을 기르는 고마운 어머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를 '모성'이라고 부른다. 모든 생명체에게 시련은 늘 닥친다. 예외는 없다. 예기치 못한 큰 풍랑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살아야 한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추구하는 단 한 가지 섭리는 바로 그것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조선의 의녀이자 상인이었던 김만덕 스토리를 취하고 있으나 많은 옛 문헌과 논문과 단행본 등을 참조하여 탄탄한 역사적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출판사 광고 문구인 "조선시대판 빨강머리 앤, 김만덕의 사랑스럽고 유쾌한 성장소설"라는 표현이 나에게는 조금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따듯한 역사소설'이라는 문구는 맞는다고 생각한다. 천영미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려는 목적 하에 무거워지고 경건해지는 데서 탈피하고 생동감 있고 매력 있는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읽으면 알게 된다. 왜 굳이 앞에 '왈가닥'을 붙였는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형제들도 떠나 고아 아닌 고아 신세가 된 비바리가 특유의 긍정과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즈넉이엔티 출판사가 새롭게 선보이는 역사 소설 브랜드 케이팩션의 여섯 번째 작품인 [조선의 왈가닥 비바리]. 새로운 소재를 찾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적 소재를 다루어야 한다는 관점 아래 탄생했다. 여러 가지 장르가 혼합되고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져 차별화된 역사소설, 그것이 바로 케이팩션이다.

제목과 광고 문구만 들었을 때는 청소년 대상의 가벼운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또한 천영미 작가의 아름답고 진지한 문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거대한 아픔을 이토록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할 수 있다니! 역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고즈넉이엔티 출판사의 기획 의도도 정말 멋지다.

해당 도서는 고즈넉이엔티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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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김종대 지음 / 가디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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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넘어가는 숨을 참으면서 마지막 명령을 유언으로 끝낸 그는 이제 장수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비로소 평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백성을 구하고 사직을 지켜야 할 한 나라의 대장으로서 짊어진 막중한 책임을 다한 것이다. 이 책임은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고, 사악함을 막는 것이며, 죄 없이 고통받는 수많은 조선 백성의 평안과 행복을 왜적의 탐욕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었다. 377쪽

성리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 조선. '효'는 삼강오륜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왕은 왕으로서, 신하는 신하로서, 백성은 백성으로서 자기 직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부모를 잘 모시는 것만 효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효'는 왕과의 관계에서는 '충'이 된다. 성리학에서 '충'과 '효'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였다. '충'과 '효'를 죽을힘을 다해 지켜낸 사람, 성웅 이순신 장군이다.

예전에는 그냥 대단하신 분이라고만 생각했다. 학교 역사 책에 나오는 것 이상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한국사를 가르치고 또 이순신 장군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치면서 모든 것이 경이롭게 다가왔다. 이 분은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영웅이다.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에서 이길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군 혼자 싸운 것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을 돕고 협력했던 많은 부하 장수들과 부하들이 있었다. 내가 특히 감탄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은 다른 사람들의 재능과 능력을 알아보는 능력이 매우 탁월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능력이 있는 자의 신분이 미천하더라도 그가 능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굴곡이 많았던 인생이라고 해야 할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 녹둔도 전투. 여진족을 잘 막아내고도 북병사 이일의 거짓 보고서 때문에 곤장을 맞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이순신 장군의 첫 번째 백의종군이다. 그게 곤장을 맞고 백의종군까지 할 일이라니. 종4품이었던 이순신 장군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된다.

무능했던 선조, 열심히 편을 갈라 싸우느라 일본에 '무관심'으로 대응했던 조정의 신하들, 여진족과 싸우던 방식을 고집했던 장군들, 대마도주가 조총 두 자루를 조정에 바쳐서 조총이 위력에 놀라고도 창고에 보관했다. 그 누구도 일본이 쳐들어오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완성한 비밀 병기의 설계도를 바친 나대용, 이것이 바로 거북선의 설계도였다. 이순신 장군은 나대용 장군의 설계도를 보고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달려 1년 만인 1592년 4월에 거북선을 완성했다. 바로 다음날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나대용 장군은 10여 년 동안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거북선의 설계도를 완성했다. 그것을 알아본 사람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임진왜란에서 거북선은 없었다.

이순신의 일대기를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했다는 김종대 재판관, '성공한 지도자로서의 진면목'을 찾기 위해 구도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네 번이나 책 제목을 바꿔가며 고쳐 쓴 이 책이 이순신 장군에 대한 교과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동서양의 많은 위인들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이순신 장군이 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런 훌륭한 연구 결과가 나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모든 가치들이 완벽하게 합일되어 이순신이라는 인간의 인격을 이루었다. 그의 탁월한 인격과 리더십은 앞으로도 수 세기가 지나도 빛을 발할 것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빛나는 연구와 깊은 탐구가 담긴 책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를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해당 도서는 가디언 출판사의 도서 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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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인들 - 내 안의 어린아이를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오설자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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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에 교사가 되어 35년 동안 함께 보낸 어린이들, 그 천진난만한 시인들에게 바치는 책 [나의 어린 시인들]

우리는 모두 한때 어린아이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는 한때 나도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스무 살에 교사가 되어 무려 35년 동안을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쳐 온 오설자 선생님은 말한다. 어린이들과 헤어지고 나서야 그 시절이 너무나 소중한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고. 때로는 좌절하고 무너지는 날들도 있었지만 자신의 영혼을 지켜준 것은 함께했던 어린이들이었다고.





오설자 선생님은 '어린이'라는 말이 참 좋다고 한다. '아동'이라는 말이 일제의 잔재라고 하여 쓰지 말고 '어린이'라는 말을 쓰라는 공문이 왔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주 오래전 받았던 상장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위 아동은'으로 시작하는 상장의 문구를. 그렇게 어린이들이 좋아 함께했던 35년의 세월.

천성적으로 어린이들은 시인입니다. 어린이들은 물건에 이름을 지어주고 생명을 줍니다. 생명이 있건 없건 이야기를 하고 친구가 됩니다. 날마다 벌어지는 일들이 궁금하고 재미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10쪽

1학년을 두 해 연속으로 맡은 후 1학년 학부모들을 위한 안내서를 썼던 오설자 선생님, 삽화에 어른의 일러스트보다 어린이의 그림을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림을 잘 그렸던 혜원이 그림이 실리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어린이들이 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백색의 종이가 무척 두렵다. "난 그림 못 그려요." 그런 아이들에게는 더 작은 종이를 줘야 한다. 그렇게 젊은 오설자 선생님도 한 가지씩 배워갔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도 우유 급식이 있었다. 우유를 무척 싫어하던 나는 학교 급식 우유가 유난히 더 맛이 없게 느껴졌다.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우유 급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유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어딘가에 우유를 숨겨놓고 집에 간다. 며칠 후 발견된 우유에서는 악취가 난다. 그래서 오설자 선생님은 남은 우유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플레인 요구르트를 가져와서 우유에 붓고 발효를 시켰다. 여기에 딸기잼을 조금 섞어 딸기 요구르트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먹게 했더니 줄을 서서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우유는 사라졌다고 한다.

정말 재미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일화가 많다. 때로는 시인이 되고 때로는 화가가 되고 때로는 작가가 되는 아이들, 모든 아이들이 별빛처럼, 햇살처럼, 꽃잎처럼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래서 이것이 이 책 [나의 어린 시인들]의 목차가 되었다.

하지만 교실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일 외의 업무, 아이들과의 갈등, 가르쳐야만 하는 부담감. 훌륭한 선생이 되려고 할 게 아니라 좋은 선생이 되려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도 저도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아이들로 인해 힘을 얻기도 하고 아이들로 인해 힘이 들기도 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어린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오설자 선생님은 강조한다.

마치 1학년 교실을 엿보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때로는 깔깔대며 웃었고 때로는 마음이 저려왔다. 완벽한 선생님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1학년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보듬으며 그 시인들에게 그 화가들에게 그 작가들에게 인생을 배웠을 것이다. 내 안에 어린아이가 살아 있는가?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어린아이를 깨워줄 책 [나의 어린 시인들]을 읽어보자. 1학년인 나를 바라보자. 그 아이는 시인이었고 화가였고 작가였다.

해당 도서는 푸른향기 출판사의 서포터즈 6기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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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의 전환 - 상상, 감정, 직관을 활용하는 건설적 사고
바바라 J. 세이어베이컨 지음, 김아영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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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퀼팅비 quilting-bee 은유를 활용한 새로운 비판적 사고 패러다임의 제안, [비판적 사고의 전환]

퀼팅에 사용되는 가위, 색실, 침핀 등을 상상, 감정, 직관 등 다양한 인간의 기능에 비유하며, 이 도구들을 비판적 사고의 과정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바바라 J. 세이어베이컨

저자 바바라 J. 세이어베이컨은 테네시 대학교 교육철학과 교수로 은퇴 후에 사회철학과 문화적 다양성, 비판적 건설적 사고에 대한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교수를 하기 전 몬테소리 초등학교에서 7년간 교사로 근무했다. 저자는 학생들이 아직 배우지 않은 내용에 대한 성취도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를 통해 가장 논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답을 추론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1부에서는 남성 중심적 비판적 사고 이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2부에서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젠더 이론, 차이 이론, 젠더 이론과 차이 이론의 교차점과 해체에 대해 알아본다. 3부에서는 건설적 사고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며 비판적 사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퀼트 quilt는 여러 개의 천을 바느질로 꿰매서 만드는 누비 이불 또는 누벼서 만드는 작품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퀼팅비 quilting bee는 누비 이불을 만드는 여자들의 모임이라고 나온다. 이 책 [비판적 사고의 전환] 표지에 나온 그림이 퀼트인데 저자의 딸의 그림을 활용했다고 한다. 표지 그림에서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성인 남성과 성인 여성,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이. 모두 가위로 자르거나 바늘에 실을 꿰어 꿰매고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언급한다. 매우 긴 내용이지만 정리하면, <생각하는 사람>은 건강하고 튼튼한 남성으로 대변되는 남성적이며 개인주의적 (남자 한 명이므로)이다.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퀼팅비 모델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고의 과정을 사회적으로 시도한다. 건장한 남성이 혼자 고독하게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 조각들을 함께 꿰매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의 조각은 커다란 하나의 누비 이불로 완성되는 것이다. 바늘과 실은 직관을 의미한다.

상상과 감정은 퀼트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원단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원단들이 퀼터들의 아이디어인 것이다. 퀼트 할 때는 헌 옷부터 최고급 원단까지 온갖 종류의 천이 다 활용된다. 이는 사람들이 가진 경험과 아이디어이다. 그들의 상상은 퀼트의 패던과 디자인이 되는 것이고 그들의 감정은 원단의 색과 질감으로 상징된다.

지식의 구축 과정에서 추론은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도록 돕는데, 어느 정도 크기의 원단이 필요할지 어떤 원단을 버리고 어떤 원단을 남길지 등을 생각하여 배치하는 것이다. 퀼트를 하려면 침핀으로 천 조각들을 고정해야 하는데 이성을 기반으로 한 추론이 마치 침핀처럼 우리의 작업을 고정시켜서 우리가 퀼트 과정(사고의 과정)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도록 돕는다.

비판적 사고의 대표로 여겨지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건설적 사고의 표상인 퀼팅비 은유와의 대조를 통해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제는 다문화적이고 여성적인 관점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퀼터들의 건설적인 참여로 우리의 사유가 역동적이고 풍부하며 보다 정확해져야 한다.

해당 도서는 글로벌콘텐츠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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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밖 여고생 (리커버)
슬구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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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를 찍는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없을 경우에는 땅바닥이나 가방 위에 카메라나 휴대폰을 세워두고 10초의 타이머를 맞춘 후 부리나케 뛰어가 포즈를 취한다. 부끄러움을 뛰어넘을 만큼 나는 내가 담긴 사진이 좋다. 세상 어느 누구도 찍을 수 없는 오직 나만의 사진. -133쪽-

나는 에세이 특히나 여행 에세이를 딱히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이번에 #푸른향기출판사 의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어쩌다 쿠바]를 시작으로 여행 에세이를 읽고 있고 이제는 푹 빠졌다고 해야 할까?

이 꼬마 아가씨, 정말 큰일 낼 아가씨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1998년생 시흥 토박이로 태어난 슬구(신슬기) 저자는 17살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18살에 첫 해외여행을 떠난다. 일본으로. 원래 엄마와 함께 갈 예정이었는데 일 때문에 바쁘신 엄마는 "나 못 간다" 선언하시고 이미 티켓팅 한 표가 아까워 "나 혼자라도 가겠다"라고 선언하며 정말 혼자 일본을 다녀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어쩌다 혼자 떠난 거야?"

"그러게, 나도 몰라."

그렇게 어쩌다 혼자 떠난 슬구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고 해야겠다. 소중한 카메라와 함께였으니.

혼자 여행하면 누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기가 좀 어려운데 이 꼬마 아가씨는 저렴이 삼각대를 이용해 10초를 맞추고 부리나케 뛰어가서 각종 포즈를 다 잡았단 거네?

저자 자신도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렇게 혼자 사진 찍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부끄러움을 뛰어넘을 만큼' 내가 담긴 사진이 좋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내 사진을 찍는 것이 어색하다. 얼굴에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이 그리 반갑지 않아서일까? 아이들만 열심히 찍어주게 된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찍어놔야 되는데......


18세 고등학생의 풋풋하고 산뜻한 감성이 살아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도 없이 어떻게 혼자 여행을 했을까, 무섭지 않았을까, 이런 여러 가지 부수적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단순하고 편안하게 18세 고등학생이 이끄는 대로 통영도 가 보고 경주도 가 보고 제주도 가 보았다. 18세 여자아이의 꿈과 발랄함이 묻어있는 사진이 너무 예쁘고 신선하다.

여행 경비를 아끼느라 삼각 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버스 대신 걷고 또 걷고. 그러다 만난다.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나눈다. 여행지에서 따듯한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도 받는다. 그것은 그렇게 그녀의 사진과 함께 아름다운 에세이가 된다. 슬구의 달콤하고 발랄한 단 하나뿐인 감성 에세이, 그렇게 [우물밖 여고생]이 탄생했다. 슬구 작가의 다음 말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




  왜 하필 지금 여행을 하냐고 물으면, 너는 왜 지금 여행을 하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사실 여행은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꼭 지금이 아니어도. 하지만 나는 지금의 미숙한 여행이 좋다. 실수하고, 서툴고, 가슴 벅찬 지금이 좋다. 가끔 생각한다. 나의 이런 감정을 과연 먼 훗날의 여행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 자신 있게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10대에는 10대만이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것이 있다. 내 선택은 옳았다. -120쪽-

 

군위 급수탑에서 웅크리고 찍은 그녀의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찍을 수 없는 오직 그녀만의 사진. 바닥에 웅크리고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고 찍은 사진, 그녀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우물밖 여고생]이 출간되고 6년이 지나 이제 슬구 작가는 25세가 되었다고 한다. 파릇파릇한 젊음, 25세의 슬구 작가를 응원한다. 힘들 때마다 그녀의 사진을 꺼내 보면서 위로를 얻고 싶다. 그녀가 타인의 시선과 부담을 모두 씻어낸 맨얼굴을 보듯 이제 나도 나의 맨얼굴을 마주해야 할 때이다.

해당 도서는 도서출판 푸른향기의 서포터즈 6기로 선정되어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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