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 사월의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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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에 대한 만족도는 역할 행동이 거짓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할에 대한 만족도의 차이는, 역할의 진정성의 차이에서 온다. 역할이 진정성 authenticity은 모든 형태의 자기 연출을 부정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역할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자기 결정력이 강할 때 온다. 역할이란 그것이 사회적 관계인한 연출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만족도의 차이는 거짓과 진실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역할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했는지 혹은 외부에 의해 수동적으로 결정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 P147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은 분명 고독한 작업이다. 그 성찰이 고독한 이유는 성찰의 결과 우리가 허무와 마주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 P174

‘나‘에 대한 물음은 내가 속한 ‘관계‘에 대한 물음이며 내가 행하고 있는 ‘역할‘의 적합성에 대한 질문이고 이 모든 것을 연출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정당성을 묻는 질문의 성격을 지닌다. - P180

누구나 일을 할 때는 간과 쓸개를 집에 두고 출근한다. 출근하는 사람이 집에 두고 온 간과 쓸개 옆에는 각 사람마다 고유한 ‘개성‘도 있다.
(중략)
취미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기호에 따라 결정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취미는 자기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영역이다. 자기밀도가 높은 사람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밀도는 높은데 취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 P198

고독은 버림받음, 돌보는 이 없음, 관심에서 벗어남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능력이다. (중략) 보들레르에게 고독이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에 다름 아니었다. - P210

이기적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과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고 있지 못하다. 그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욕망만을 알 뿐, 그 욕망을 추구하는 자신의 내면의 진정성을 정작 알지 못한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쉽게 이익에 포획되어 종국에는 욕망에 주체를 먹혀버린 희생양이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사람은 삶을 능동적으로 살지 못한다. 그사람의 능동성은 욕망의 능동성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 - P250

칸트는 [판단력 비판]의 취미 비판에서 세 가지 인간 지성의 준칙을 내세웠다. 첫 번째는 ‘스스로 사고하기‘이고, 두 번째는 ‘모든 타자의 위치에서 사고하기‘이며, 세 번째는 ‘항상 자기 자신과 일치하게 사고하기‘이다. (중략) 자기를 잃어버렸던 사람은 첫 번째의 허들을 통해 자기를 회복하며 자율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자율적인 인간은 두 번째 허들을 통해 자율적인 능력이 독단의 한계에 갇히지 않을 수 있도록 할 때, "두 준칙의 결합에 의해서만, 그리고 그 두 준칙들을 번번이 준수하여 능숙하게 된 후에라야만 도달"될 수 있는 세 번째의 허들도 뛰어넘도 단독인이 될 수 있다. 자율적 인간이 독단인으로 전락하는가 혹은 참다운 단독인이 되는가의 가능성은 전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그의 처세술에 달려 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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