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아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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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빅터 프랭클이 1966년 여름 학기에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있는 대학교의 퍼킨스 신학교에서 초청 강연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여타의 실존주의 정신의학파와는 대조적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정신요법을 발전시켜 왔다. 로고테라피는 자유 의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삶의 의미가 포함되었다.

 

그의 대표작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 누구나 가끔 의미라는 화두 앞에 언제나 망설이게 되고 도대체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아득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시형 역자님은 이 책을 펼친다고 한다.

 

강제수용소에서 나는 자살한 여자의 시신을 본 적이 있다. 그녀의 유품 중에 그녀가 쓴 글이 적힌 종이가 있었다. “운명보다 더 강한 것은 그것을 견디는 용기이다.” 정신분석은 모든 종류의 정신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기초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새로운 학파가 나타난다고 해도 영원히 그럴 그럴 것이다.

 

억압은 증대하는 의식의 반작용을 받는다. 억압된 인격은 자각을 하도록 해야 한다. 19세기의 기계론적인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20세기 실존철학의 눈으로 보면 정신분석은 인간의 자기 이해를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이 자신을 초월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견지에서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먼지 지각력이 있어야 한다.

 

인간을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층이나 켜의 견지에서 생각하는 것은 곧 인간 존재의 신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그리고 지적인 면이 각각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인간에 관한 문제를 취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44

 

이기주의나 이타주의와 같은 도덕적 이분법은 진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기주의자는 다른 사람을 오로지 주시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반대로 이타주의자는 바로 그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자신에게 신경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다. 로고테라피는 오히려 인생에 대한 낙관적인 접근법이다. 로고테라피는 인간이 그것에 대해 취하는 입장에 따라 긍정적인 성취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는 우리 삶에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noological 신경증의 경우, 로고테라피가 매우 탁월한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삶에 명백한 무의미함으로 인한 실존적 좌절의 포로가 된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신요법보다는 로고테라피라는 말이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경우, 로고테라피는 그에 관한 원인적 치료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요법의 보조요법으로서 반응 억제라고 하는 로고테라피의 기법을 그런 환자에게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아내가 죽은 후 우울증에 걸려 저자를 찾아온 개업의에게 소크라테스 대화 기법을 이용했다. 만약 아내 대신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물었다. <아내가 그것을 어떻게 견디겠어요>그가 말했다.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렇게 큰 시련을 면하셨습니다. 부인이 이런 시련을 당하지 않도록 해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살아남아서 부인을 애도함으로써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대화가 그로 하여금 시련의 의미를 찾도록 해주었다. 존재와 사물 사이에 있는 존재론적인 차이 혹은 그런 측면에서 궁극적인 존재와 인간 존재 사이의 차원적인 차이는 인간이 진정으로 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한다. 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존재를 사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쓴 저명한 저서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없으면, 그것에 대해 침묵을 지켜야 한다.”p229

 

로고테라피는 인간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로, 그리고 그것을 완수할 책임이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로고테라피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책임져야 할 것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을 그 자신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것은 로고테라피 치료 의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 역시 스스로 자기 책임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가 하나의 독립된 영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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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배워야 합니다 -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마법의 세로토닌 테라피!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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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지 모를 때 읽어야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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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열전 - 제국을 이끈 10인의 카이사르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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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을 지탱한 10명의 로마 황제 열전 재미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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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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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에서는 스톤이터와 오벨리스크의 실체가 드러나고 각자의 숙명에 이르는 모녀의 여정이 시작된다. 여덟 살 나쑨은 전승가가 되고 싶어 수련 중이었다. 티리모를 찾아온 전승가는 렌스리, 스톤의 전승가다. “나도 전승가가 되고 싶어요!” 전승가가 뭔지 잘 모르는 아이는 간절히 티리모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렌스리가 다이아몬드 돌멩이를 내민다. 우체가 지자의 주머니 속에 든 것을 감지하고 아빠, 거기 왜 반짝여?” 우체가 죽은 것도 돌멩이 때문에 시작되었는 것을 나쑨은 모른다. 지자는 자신의 손으로 때려 죽인 아들에 이어 나쑨까지 오로진이라는 사실을 알고, 오로진을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소문을 따라서 대륙의 남쪽으로 향한다.

 

에쑨은 호아와 함께 아들을 살해하고 딸을 납치하여 사라진 남편 지자를 쫓아 카스트리마라는 지하도시에 도착한다. 놀랍게도 카스트리마는 오로진이 마음껏 정체를 드러내고 지낼 수 있는 곳이었으며, 이곳의 향장은 이카라는 여성이다. 10년 전 에쑨과 연인이었고 친구였던 알라배스터와 만나게 되고 그가 고요 대륙에 재난을 불러온 장본임을 깨닫는다.

 

클랄수 호를 무참히 박살낸 힘은 공기를 활용한 조산력이다. 시엔은 이미 알리아에서, 그 뒤로도 물을 이용한 적이 있다. 샤파는 오벨리스크의 진동을 느끼자마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 시엔의 수호자는 나이가 많다. 그는 참으로 오래 살았다. 그는 네 반지가 오벨리스크에 접속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도 안다. 화상에 뒤덮인 알라배스터. 죽었어야 하는 사람. 대륙을 절반으로 갈라 놓은 거대한 균열은 진원지에서 겨우 3도 화상 몇 개만 입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라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오벨리스크도 위성이라고 했다.

 

[오벨리스크의 문]에서 나쑨의 이야기가 절반을 차지한다. 나쑨은 어머니보다 자상했던 아버지가 오로진을 향해 때때로 드러내는 혐오로 인해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지만, 이윽고 도달한 오로진들의 공동체에서 자신에게 잠재된 거대한 힘을 발견하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나쑨은 아주 특별하고 강력하다. 여기가 펄크럼이었다면 벌써 네 개나 다섯 개의 반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샤파는 말했다.

 

전설에 따르면 오벨리스크는 세상이 산산이 부서졌을 때 하나로 묶어 줬다고 한다. 언젠가 계절을 완전히 끝낼 방법이 있는데 그게 오벨리스크랑 관계가 있다는 암시도 있고. 계절이 없어지면 오로진도 필요 없어지겠지. 에쑨이 느끼는 시간의 이상한 탄력성은 나쑨을 잃었고 그 애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되었다. 카스트리마의 발전과 방어에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사람들, 유메네스 열개 때문에 대지진의 여파 때문에 고향을 잃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스톤이터들은 나이가 많다. 안티모니도 그 중 하나다. 작은 스톤이터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스톤이터는 죽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호아가? 일곱 살처럼 생긴 애가 3만 살이나 된다고? 천장 위 다락문 너머는 빈 공간이다. 바닥을 뚫고 삐죽삐죽 솟아있는 이 수정 기둥들은 방 바깥쪽에서는 절대 이러지 않았다. 카스트리마에 있는 어떤 수정 기둥도 이런 식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이 정동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것은 수정이 아니라 잠재적인 오벨리스크다.

 

알라배스터는 얼마 남지 않았다. 오로지 에쑨에게 세상을 파괴할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톤이터의 남은 몸뚱이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호아의 주먹이 몸통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대 스톤이터는 이제 그의 발 주위에 굴러다니는 돌덩이일 뿐이다. 따뜻하고 온화한 카스트리마에서, 호아의 손은 차갑고 단단하다. 손가락에는 지문도 있다.

 

오벨리스크의 문이 열리는 거다. 그 여자는 참으로 하찮은 목적을 위해 그걸 사용하고 있어. 스틸이 말한다. 나쑨은 그 여자가 어머니라는 것을 안다. 엄마가 살아서 분노하고 있다. 저토록 막대한 힘으로 충만하여. 에쑨과 나쑨의 만날 수 있을까? [오벨리스크의 문]은 스틸에게 달을 어떻게 집으로 데려올 수 있는지 말해달라는 나쑨의 말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권 석조하늘에서 밝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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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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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는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며 그의 말과 제스처, 취향,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자신과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쓰였다. 얇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가슴이 뭉클해진다.

 

소설은 작가가 교원 자격 시험에 합격하고, 두 달후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큰아버가 말씀하신다. 너를 자전거에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줬던 것을 기억하니? 아버지와 목소리가 똑 같았다. 어머니는 가게 문을 열기 전 공동묘지에 가는 습관을 갖게 됐다.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여덟 살부터 농장에서 짐수레꾼으로 일한 할아버지는 주말이면 게임과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렸다. 그를 폭력적으로 만든 것은 누군가가 책이나 신문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읽거나 쓰는 일을 배울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가 열두 살에 초등 교육 수료증 준비반이 됐으나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빼내어 자신이 일하는 농장에 집어넣었다. 아버지는 5시에 소젖을 짜고, 마구간을 비우고, 말들의 털을 빗겨주고, 저녁에 소젖 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외양간에서 이불도 없이 짚더미 위에서 잤다.

 

전쟁은 시대를 흔들어 놓았다. 아버지는 군대 제대 후 농사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건실하여 상사들이 좋게 봤다. 매주 돈을 저축했다. 같은 공장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그는 부모의 가난을 답습하지 않는 데 필요한 것, 여자한테 홀려 넋을 빼놓지 않아야 함을 배웠다. 라발레의 카페 겸 식료품점의 수입은 노동자의 월급보다 못하여 공사장에 취직해야만 했다. 그는 스탠더드 정유 공장에 들어가서 야간 교대 근무를 했다. 몸에서는 석유 냄새가 없어지질 않았다.

 

디프테리아로 큰 딸을 잃었다. 몇 주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독일군에 의해 정유 공장에 불이 났고,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피난을 떠났다. 가게는 털렸고, 그다음 달에 아니 에르노가 태어났다. Y시로 이사했고, 변두리 동네에서 나무와 석탄을 파는 카페 겸 식료품점을 발견했다. 쉰 무렵의 아버지는 혈기 왕성하다. 여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행복해 보였다. 간신히 얻게 된 여유로운 생활에 대한 긴장감이 있었다. 나는 팔이 네 개가 아니야.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나는 몸살도 걸어 다니면서 앓아야 한다니까! 등등, 매일 불평을 했다.

 

세월이 흘러 저자는 루앙에서 대학의 인문학부에 들어갔다. 이제는 삶을 조금 즐겨보기로 결심했다. 늦게 일어났고, 카페와 정원에서 느긋하게 일했으면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고, 모든 사람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네 아버지 팔자가 늘어졌다고 말씀하셨다.

 

미래의 사위를 데려왔을 때 아버지는 기뻐했다. 결혼식을 하고, 고학력자,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라서 늘 <빈정거리는> 말투를 쓰는 사위가 어떻게 이 용감 무식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겠는가. 남편에게 전해 주라며 코냑 한 병을 줬다. 다음에 보면 되지. Y시에 첫 번째 슈퍼마켓이 생겼다. 가게를 팔고, 인근 주택에 사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65세에 사회 보장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점점 더 삶을 사랑하게 됐다.

 

공부는 좋은 환경을 얻고 노동자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아버지는 미술관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었다. 사는 데 책이나 음악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삶은 물질적 필요에 얽매여 있었다.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비가 와도, 해가 쨍쨍해도, 두 강 사이를 건너는 뱃사공이었다.(p100)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자식이 속해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자부심, 심지어 존재의 이유였던 '한 아버지, 한 남자의 자리'는 다시 한번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우리 옆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거기, 소설보다 더 큰 삶이 있다. 나의 아버지와 내가 떠나온 세계가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소설보다 더 큰 무엇이 보이는가? 옮긴이의 말처럼 이 소설을 읽으며 내 아버지를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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