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는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며 그의 말과 제스처, 취향,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자신과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쓰였다. 얇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가슴이 뭉클해진다.

 

소설은 작가가 교원 자격 시험에 합격하고, 두 달후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큰아버가 말씀하신다. 너를 자전거에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줬던 것을 기억하니? 아버지와 목소리가 똑 같았다. 어머니는 가게 문을 열기 전 공동묘지에 가는 습관을 갖게 됐다.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여덟 살부터 농장에서 짐수레꾼으로 일한 할아버지는 주말이면 게임과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렸다. 그를 폭력적으로 만든 것은 누군가가 책이나 신문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읽거나 쓰는 일을 배울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가 열두 살에 초등 교육 수료증 준비반이 됐으나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빼내어 자신이 일하는 농장에 집어넣었다. 아버지는 5시에 소젖을 짜고, 마구간을 비우고, 말들의 털을 빗겨주고, 저녁에 소젖 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외양간에서 이불도 없이 짚더미 위에서 잤다.

 

전쟁은 시대를 흔들어 놓았다. 아버지는 군대 제대 후 농사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건실하여 상사들이 좋게 봤다. 매주 돈을 저축했다. 같은 공장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그는 부모의 가난을 답습하지 않는 데 필요한 것, 여자한테 홀려 넋을 빼놓지 않아야 함을 배웠다. 라발레의 카페 겸 식료품점의 수입은 노동자의 월급보다 못하여 공사장에 취직해야만 했다. 그는 스탠더드 정유 공장에 들어가서 야간 교대 근무를 했다. 몸에서는 석유 냄새가 없어지질 않았다.

 

디프테리아로 큰 딸을 잃었다. 몇 주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독일군에 의해 정유 공장에 불이 났고,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피난을 떠났다. 가게는 털렸고, 그다음 달에 아니 에르노가 태어났다. Y시로 이사했고, 변두리 동네에서 나무와 석탄을 파는 카페 겸 식료품점을 발견했다. 쉰 무렵의 아버지는 혈기 왕성하다. 여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행복해 보였다. 간신히 얻게 된 여유로운 생활에 대한 긴장감이 있었다. 나는 팔이 네 개가 아니야.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나는 몸살도 걸어 다니면서 앓아야 한다니까! 등등, 매일 불평을 했다.

 

세월이 흘러 저자는 루앙에서 대학의 인문학부에 들어갔다. 이제는 삶을 조금 즐겨보기로 결심했다. 늦게 일어났고, 카페와 정원에서 느긋하게 일했으면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고, 모든 사람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네 아버지 팔자가 늘어졌다고 말씀하셨다.

 

미래의 사위를 데려왔을 때 아버지는 기뻐했다. 결혼식을 하고, 고학력자,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라서 늘 <빈정거리는> 말투를 쓰는 사위가 어떻게 이 용감 무식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겠는가. 남편에게 전해 주라며 코냑 한 병을 줬다. 다음에 보면 되지. Y시에 첫 번째 슈퍼마켓이 생겼다. 가게를 팔고, 인근 주택에 사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65세에 사회 보장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점점 더 삶을 사랑하게 됐다.

 

공부는 좋은 환경을 얻고 노동자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아버지는 미술관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었다. 사는 데 책이나 음악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삶은 물질적 필요에 얽매여 있었다. 그는 나를 자전거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비가 와도, 해가 쨍쨍해도, 두 강 사이를 건너는 뱃사공이었다.(p100)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자식이 속해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자부심, 심지어 존재의 이유였던 '한 아버지, 한 남자의 자리'는 다시 한번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우리 옆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거기, 소설보다 더 큰 삶이 있다. 나의 아버지와 내가 떠나온 세계가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소설보다 더 큰 무엇이 보이는가? 옮긴이의 말처럼 이 소설을 읽으며 내 아버지를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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