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별밤 에디션)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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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은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증조모,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100년의 시간에 걸친 4대 모녀 이야기다. 소설을 읽으며 팔순을 바라보는 나의 엄마, 기억이 나지 않는 외할머니를 떠올려봤다.

 

소설의 배경인 희령을 검색해보니 강원도 회양지역의 옛 지명이라고 나온다. 주인공 서른두 살의 지연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희령으로 이사왔다.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본 건,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한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남편의 배신에 힘들어하는 딸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지 아빠와 엄마는 혼자 남을 사위가 불쌍하다고 했다. 마음 둘 곳이 없어 이곳으로 왔을 수도 있었다. 지연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친구 지우 뿐이었다. 바닷가 작은 도시인 희령은 엄마의 친정이기도 하고 열 살때 열흘 정도 지내는 동안 할머니는 이곳 저곳을 구경시켜주었던 추억이 있는 곳,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건 할머니와 함께 본 희령의 밤하늘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가 소원해져 이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할머니와 재회한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다 두 여인이 찍은 사진을 보며 한 사람은 할머니의 엄마라고 했다. 지연이와 많이 닮은 증조할머니다. 할머니는 지명으로 증조모는 삼천’ ‘새비아주머니로 불리며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해, 증조모가 어떻게 희령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증조모는 백정의 딸로 태어나 핍박받으며 살다 열일곱 살에 증조부를 만나 개성으로 떠났다. 증조모가 떠나올 때 아픈 어머니를 두고 나왔다. 증조부 친구인 새비 아저씨가 돌봐주었지만 열흘이 지나 돌아가셨다. 증조부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새비 아저씨가 땅을 빼앗기고 개성으로 오면서 새비 아주머니와 증조모는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새비 아주머니는 아저씨 건강 때문에 고향으로 갔고, 친정 오빠가 사상범으로 죽음을 당하자 시댁에서 쫓겨났다. 개성에 잠시 머물다 새비 아주머니는 고모가 사는 대구에서 머물게 된다. 훗날 증조모 식구들도 대구 명숙 할머니 집에서 머물며 할머니는 바느질을 배우게 된다. 증조부가 군대에서 고향 동무를 만났고, 부모님과 형님을 만났는데 피난길에 오르셨는데 황해도 사람들이 희령이라는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대구를 떠나 희령으로 왔지만 증조부 부모님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정착한 곳에서 할머니는 같은 고향 출신인 길남선과 결혼을 하게 된다. 지연의 엄마 미선을 낳고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p14

 

소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지연의 재구성을 통해 되살아난다. 증조모는 할머니를 중혼 시킨 것에 증조부를 원망하고, 할머니는 우리 눈에 띄지 말고 죽어버리라고 했다. 지연이 희령으로 온 건 분명 이혼 후에 상처를 줬던 엄마에게서 멀어지기 위한 것이었다. 지연은 원가족으로부터,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연은 엄마와 앨범을 정리하며 엄마가 얼마나 증조할머니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이해하였다. 그러면서 상처 받았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새비 아주머니는 딸 희자에게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가라고 했다. 작가의 할머니도 손녀에게 앞으로 멀리 다니라고 지구본을 사줬던 할머니의 마음이 이 소설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얼마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 [미싱 타는 여자들]에서 처럼 우리 세대는 여자가 공부해서 뭐하나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만 잘 가면 되지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밝은 밤]을 읽으며 삼천과 새비의 우정이 너무 따뜻해서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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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3 : 약속 식당 특서 청소년문학 25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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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스트셀러 [구미호 식당] 박현숙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다. [구미호 식당],[저세상 오디션]에 이어 [약속 식당]은 청소년 문학으로 시간에 대한 저자의 철학이 담겨 있다. [약속 식당]은 이 세상에서 못다 이룬 약속을 다음 생에서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의문으로 시작되었다.

 

보육원에서 같이 지낸 설이를 지키려 싸우다가 맞아서 죽게 된 채우는 망각의 강에서 천 년 묵은 여우 만호에게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새로운 생을 거래하고 세상으로 돌아온다. 설이는 열여섯 살이고, 채우는 열일곱 살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100일 정도였다. 만호는 손바닥에 도장을 찍어주며 하루가 지날수록 조금씩 지워지다가 소멸 되기 전날 딱 한줄이 남으면 사라진다고 했다.

 

파와 감자가 만난 음식은 불행을 몰고 온다고 믿는 설이에게 미완성 파감로맨스를 만들어주기 위해,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죽어서라도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 설이를 찾을 수 있는 단서는 단 하나, 게 알레르기 뿐이었다. 이층집 일가족이 연기처럼 사라진 건물 일층에 약속 식당을 열게 된다. 채우의 모습은 42세 아줌마로 변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설이도 죽었는데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너와의 시간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참고하라고 만호가 말했다.

 

채우는 식당을 열고 손님을 기다렸다. 약속 식당을 찾은 황 부장, 왕 원장, 구주미와 구동찬, 고동미 이 중 설이가 있을까? 구주미와 고동미가 게가 들어간 비밀병기 음식을 먹고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경찰이 찾아오기도 하였고 엄마와 지내고 있는 고동미가 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채우는 고동미가 흉가로 변해 있는 이층에 살던 황우찬이라는 아이를 좋아했다는 것을 동찬에게 듣고 황우찬을 질투했다. 두 여학생의 중간 역할을 구동찬이 귀여운 캐릭터로 기억된다.

 

예쁘다 미용실왕 원장도 채우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 원장이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한다. 그 사람과의 시간은 그 세상에서 끝났던 것이고. 다음 생에도 나는 너를 만날 것이고 그때는 더 잘해줄 거다. 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부질없는 약속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주미와 고동미는 왜 싸운 걸까? 화해를 시켜주고 떠나고 싶었다. 황우찬이 잘못된 것이 자기들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채우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부질없는 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왕 원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며 두 사람이 절친이었던 예전으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구주미가 말했다. 아줌마. 저번에 파감로맨스를 먹어봤는데 뭔가 좋은 생각이 날 듯 말 듯 했는데 오늘 해보겠다고 한다. 구주미는 자기는 똥손이지만 영감을 믿으라고 했다. 저 말은 설이가 잘 하던 말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파감로맨스가 완성되는 순간에 가슴 중간이 찌릿했다. 채우 손바닥의 도장 자국이 거의 사라졌다. 소멸하는 앞에 만호가 나타났다. 채우는 후회하지 않지만 다른 이에게 새로운 생을 달라고 제안할 때 살았던 그 세상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되었다고그런 말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지키기 위해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이 아닌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해야 한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내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p244

 

저자는 다음 생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고 만호가 있을지 없을지 그것도 모른다. 뜻하지 않게 채우와 같은, 왕 원장과 같은 기회를 얻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기회가 찾아온다면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키려 전전긍긍하기보다는 마주한 기억 속 그 사람과 새로운 추억 하나를 만들어봐도 괜찮겠다고 말한다. [약속 식당]은 세상을 살면서 꼭 지키고 싶은 소중한 약속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면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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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적정 거리 심리학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6
권수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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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이 펼치는 흥미로운 지식 체험, ‘인생명강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이 출간됐다. [관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는 가족은 물론이고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고 내가 상처를 받지도 않는 관계회복을 사례들과 함께 풀어낸 심리학 처방전이다.

 

마르틴 부버의 저서 [나와 너]는 누군가 나의 신체 일부나 소지품을 보고 나를 평가한다면 그는 이미 나와 너의 근원어가 아니라 나와 그것에 의거해서 나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판단할 때 사용되는 겉모습을 그것이라고 해보면 어떤 사람의 정체성은 바로 그것에 따라 순식간에 결정된다. 의식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상대방의 외형이나 단서 하나에 집착하게 된다. 문제해결의 열쇠로 판단중지를 의미하는 에포케(epoche)’라고 하는 철학 개념이다.

 

일상에서 타인에게 작은 생채기를 남기는 말을 하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난다. 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까? 상대방을 그것이 아닌 로 만나고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필요한 방법은 비폭력 대화다. 비폭력 대화는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의 4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상철이는 어제 이유 없이 내게 화를 냈다. 이것은 관찰일까, 판단일까? ‘이유 없이화를 냈다모두 판단이다. 만약 상철이가 나에게 이유 없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라고 했다면 관찰이다. 있는 그대로 아무 판단도 보태지 않고 실지로 상철이가 말한 그대로 전했으니 관찰한 사실에 가깝다. 이런 장면을 보고 화를 냈다고 즉각 판단한다.

 

연예인에게 매니저가 있듯이 마음속에도 역할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있다고 한다. 마음속 매니저는 우리의 상태를 살피며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내리기도 하는 존재다저자의 경우는 넌 또 망신당할 거야라고 하는 목소리를 뽀빠이 목소리로 바꾸면 갑자기 웃음이 난다. 만화를 보면서 즐거워했던 긍정 기억을 활성화해서 내면의 목소리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상담하다 보면 평소에 자주 화를 내던 사람이 상대방에게 그것이 아닌 로 존중받고 싶은 솔직한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처음에 원심력 감정만 발산하다가 구심력 감정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존중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면 상상하지 못한 치유가 시작되곤 한다.

 

수년 동안 여러 대기업에서 소위 갑질을 하는 리더들의 형태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막말은 기본이고 물건을 던지거나 따귀를 때리는 등의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이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갑질하는 리더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다 빛의 속도로 상대방을 판단한다. 이들 역시 어린 시절 그것으로 대접받았던 상처를 숨기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와 너의 관계가 부족한 리더일수록 상대방에게 나와 그것의 경험을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관계에서도 친밀감은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는 감정이다. 때로는 전혀 거리가 없어야 진정한 가족이라고 믿는 것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다. 사고방식은 가장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가족의 일에 관여하려고 하면 과도하게 화를 내거나 거부하고,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누구나 원가족 시절 융합 경험을 전수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의 남편이나 자녀와의 관계에서는 나와 그것의 관계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따로 또 같이 거리두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가장 먼저 과거로부터 밀려오는 과도한 유기불안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현재의 남편이나 자녀와도 이런 과도한 유기불안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기 쉽기 때문이다. 거리두기에 실패하면 여지없이 다시금 정서적 융합을 재현하고 만다. 누구나 나와 그것의 관계로부터 적절한 마음의 거리두기가 필요한 이유다.

 

과거 상처와 적절하게 거리두기를 할 때, 우리는 현재의 관계에서 나와 너의 관계를 연습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자. 마음의 거리두기, 에포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행복한 대한민국 만들기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EBS부모 상담코칭전문가 권수영 교수의 관계심리학 도서여서 신뢰가 간다. 새로운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에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도서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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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면 - 살면서 누구나 고민하는 인생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
이근후.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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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0년 경력의 정신과 의사와 25년 상담전문가가 나누는 지혜롭고 명쾌한 인생문답이다. 이서원 소장은 몇 달 동안 매주 수요일 선생님을 찾아가서 우리가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차례로 하나씩 물어보고 그동안 귀로만 듣던 선생님의 말씀을 손으로 옮기기 시작했다.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가 그 사람을 성숙한 존재로 바꾸어준다.

 

정상적인 사람이나 둔한 사람은 불안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 덕을 많이 보고 산다. 여행을 갈 때 불안한 사람은 그냥 떠날 수가 없으니 준비를 철저히 몇 번이고 하니까 그 덕을 누가 보는가? 불안이 많은 사람과 산다면 고마워해야 한다. 글을 읽어 보니 맞는 말이다.

 

용서가 어려운 것은, 비유하자면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쉽겠는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죽자 살자 노력해서 겨우겨우 거슬러 올라간다. 용서란 그런 것이어서 아무나 할 수 없다. 마음의 상처는 크든 작든 평생 간다. 상처를 옅어지게 하는 법은 무엇일까. 내 속의 자아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극복하는 체험을 자꾸 하여 마음의 상처를 희석 시키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조건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아무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잘하는 것이 없어도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자꾸 뭘 자신에게 보태고 덧댈 필요가 없다. 조건이 자존감을 만드는 게 아니라 태도가 자존감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데 왠지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면 가급적 만나지 마라. 만나고 나면 내가 왠지 더 커지는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한다. 밥도 사주고 차도 사주면서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다. 자기 마음대로 된다,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자기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마음대로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을 할지 말지도 자신의 선택이니 그러하다. 산다는 것은 주변 환경에 적응한다는 뜻이다. 결국 주체는 자기인데 결과가 안 좋다고 탓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기 자신이다.

 

이근후 교수님은 정년 퇴임을 하고 디지털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교수도 겸임하셨다. 스스로 선택한 공부라서 과정이 재밌고 재미있게 하다 보니까 결과도 좋았다. 공부가 재미없다고 생각된다면 스스로에게 무엇을 목적으로 공부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고, 나의 이유로 공부를 선택하는 것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방법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교수님이 나와 같은 사이버대학교 동문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가족을 남처럼 생각하고, 남은 가족처럼 생각하면 된다. 가족을 남처럼 생각하라는 건 예의를 지키라는 것이다. 남을 가족처럼 생각하라는 건 가족에게 살갑게 대하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라. 정답게 대해주면 그 사람도 고마워서 나에게도 다정하게 대해 준다.

 

꼰대는 자기 틀에 갇혀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다. 요즘은 한 집에 두 꼰대가 산다고 보면 된다. 아이들을 과도기적 꼰대라고 할 수 있다. 옛날 꼰대는 농경 사회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꼰대가 되었고, 자기 생각만 주장하는 젊은 꼰대인 것이다.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로 평생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보고 치료한 경험으로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는 아빠보다 엄마가 양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아이를 양육할 수도 있지만 생물학적으로 밀착 관계가 엄마만큼 형성되지 못한다. 태생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란 게 대단한 것 같아도 간단하거든요. 좋아하는 걸 해주고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사랑입니다. 자기중심이란 사랑이 과하거나 부족해서 생긴 거니까 사랑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해주면 그 사람에게도 아주 조금 마음의 여백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만큼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바라보게 되는 거고요. 그게 자기중심을 벗어나는 첫 단추가 됩니다.p234

 

세상에서 가장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뭘까 생각하면 사람이다.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고 원하는 걸 알아내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엉뚱하게 해주고 자기가 원하는 반응이 안 나왔다고 탓을 하게 된다. 사람은 서로 탓을 많이 한다. 사람마다 다가가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급한 사람에게는 바로 다가가야 하고, 꼼꼼한 사람에게는 아주 천천히 섬세하게 다가가야지, 그걸 못하는 것이다.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나만의 단순하고 담백한 삶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여유가 있다. 돈이 있어 여유가 있는 게 아니라 끝없이 새로운 것을 사려고 돈을 벌지 않아도 되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이다. 여유 있는 시간과 넉넉한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고 즐기는 일을 하며 사는 게 품격 있는 삶이다. 소박하더라도 여유 있으면 그게 품격 있는 삶이다.

 

행복이 최소한이란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다. 즐거움을 느끼는 건 큰 걸 할 때가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면 즐거운데 , 오늘도 숨을 쉬는구나. 살아 있구나.’ 아침 상을 받으며 맛있구나.’ 밥을 맛있게 먹으면 차린 아내도 즐거워한다. 나이가 들면서 즐거운 일이 줄어든다고들 하는데, 저자는 반대라고 했다. 작은 것 하나하나가 다 즐거워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뜻을 이 나이가 되니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마음대로 읽으시고, 맞는다고 생각되는 글이 있다면 마음에 담아주시고, 더 공감을 하신다면 실천해보시길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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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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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은 한 글자에 담긴 였고, ‘를 포함한 수만 글자를 품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신문에 연재하는 칼럼이 대부분이라 길게 쓸 수도 없었다고 했다. 글자 한 조각으로 문장의 깊은 맛을 우려낸 삶과 서정의 에세이다. 예순아홉 꼭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글을 쓰며 노동현장을 전전했다. 사건과 배경의 주인공은 늘 당신이라고 한다. 한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들은 가슴에 울림을 준다.

 

이웃집 강아지인 일순이와 숲길을 걸었다. , 오줌도 가리지 않는 일순이가 예쁜 것은 개냥이때문이다. 개냥이는 고양이인데 새끼를 낳다 죽었다. 한 번도 새끼를 밴 적 없는 일순이의 젖이 불었다. 죽은 개냥이를 대신해서 새끼 고양이들에게 젖을 물렸다. 하나와 둘을 애써 가를 필요는 없다. 둘이 모여 하나를 품고, 품은 하나 속에 둘이 있다.

 

한 글자로 이름 붙여진 것 가운데서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을 꼽는다. 숨은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있다. 숨을 쉼으로 삶이 시작되고 숨을 멈춤으로 삶이 마감된다. 숨은 숲을 닮아서 끝없이 호흡해야 한다. 인간이 말과 글을 통해 소통하는 것도 엄밀한 의미에선 호흡이다. 숨 쉬지 않는 인간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글을 쓸 수 있겠는가.p64





눈앞에 툭 던져졌을 때, 만남이 시작된다. 그래야 진짜다. 처음을 낱말 앞에 붙이는 것도 그래서다. 처음여행, 처음생각, 처음사람, 처음이별, 하는 것처럼. 그래야 온전하다. 처음을 이라 부르는 것은 씁쓸하다. 첫은 문법이라는 감옥에 갇힌 처음이다. 갇힌 첫에는 처음이 품고 있는 차분함이 없다. 첫사랑이 온전하지 못함도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첫에는 시옷이라는 발이 달려서 늘 종종거린다.

 

아이의 꿈이 또 무너졌다. 삼 년째다. 어깨동무하면서 술을 마셨지만 위로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방을 이루는 네 개의 벽이 있어 무너지는 마음을 맡길 수 있다. 가족이라는 네 개의 벽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방안에 앉아서, 나를 보듬은 네 개의 벽을 바라본다.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가족이라는 벽이 얼마나 소중한가.

 

지하철 무임승차 단속반이 아내와 저자를 가로막았다. 아내가 사용하는 장애인 교통카드 문제였다. 발가벗겨지기라도 하듯 아내는 장갑을 벗어야만 했고 엄지를 잃은 손은 어미를 잃은 아이 같았다. 모멸감에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떨지 마라, 아내야.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대학을 중퇴했던 당신이 아니더냐. 돈벌이도 없는 글쟁이에게 인생을 걸어준 당신이 아니더냐. 내게 있어 당신의 아홉 개의 손가락은 세 개의 계절을 잉태하는 꽉 찬 충만함이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립이다. 고립은 단절의 옆모습이고 절망의 뒷모습이다. 고립의 실체를 고립시켜야 한다. 고립사는 있어도 고독사는 없다고 했다. 주검을 발견한 사람은 집주인이었고 손에 쥐고 있는 건 어린 아들 사진이었다. 정년퇴임한 대학교수가 자살을 했다. 유서는 없었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가족들은 아버지가 끼고 있던 금반지가 안 보인다면서 방바닥 곳곳을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씁쓸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라면은 가난한 것들이 도시에 뿌린 땀 냄새를 닮았다. 꿈을 머금고 단칸 셋방에 둥지를 튼 어린 것들을 닮았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가여운 것들을 닮아서, 라면은 누구에게나 기꺼이 가슴을 연다. 굴곡지고 비틀린 속살을 뜨거운 불길에 데워 굶주린 하루를 달랜다. 지금도, 어디선가 물이 끓고 있다.

 

휴전협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그해 정월 새댁은 우물로 도망쳐 빠져 죽었다. 딸의 어미는 잡혀가지 않은 사내들은 똥통 밑에 기어들어가 숨을 참았다. 대나무밭에 땅굴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사내들이 요강에 싼 똥을 받아 땅에 묻고, 주먹밥을 받아먹었다. 어미가 피를 토하며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고 어미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렇게 내 할머니는 죽었다. 고모와 할머니의 사연을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었다. 칠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빨갱이타령은 여전하다. ‘휴전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박혔다. , 우리는 아직도 휴전상태였지.

 

죽어야 피는 꽃이 있다. 수직으로 아찔한 벼랑 끝에 처절하게 부서지는 꽃이 있다. 부서지고 죽어야 피는 그 꽃은 일터에 핀다. 택배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굴착기에 무너진 흙더미가 머리 위로 쏟아질 때, 십층 높이에서 일하던 인부가 발을 헛디딜 때, 추락하는 꽃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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