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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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말로 시작하는 [작별]은 올해 2월에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의 유고집이다. 내가 없는 세상에도 아침에 해가 뜨고 늘 보는 뉴스가 전해지겠지만, 어제의 그것과는 아주 다를 거라 생각한다는 말이 의미 심장하게 들린다. 책은 키워드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이 다섯 가지를 어떻게 경험했는지. 저자가 어렸을 때 처음 경험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면서 미지의 한국인들에게 우리가 겪었던 모든 경험과 꿈을 전하고자 하였다.

 

원숭이는 인간과 비슷하기 때문에 남을 놀릴 때 원숭이라고도 한다. 나와 원숭이가 어떻게 다르냐로 내가 사람이라고 하는 하나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원숭이가 나무도 잘 타고 흉내도 잘 내고 하니 사람을 원숭이에다 비교하면서 외국인들을 원숭이라고 했다. 사과는 1901년 윤병수라는 사람이 미국 선교사로부터 묘목을 다량 들여오면서 유입됐다. 추운 지방에서만 나왔기 때문에 남한이 아니라 북한 원산 같은 곳에 심었다. 사과는 미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사과보다는 복숭아가 우리의 감정과 역사 문화의 상징인데 요즘 사람들은 과일 하면 사과를 말한다.

 

바나나가 근대화 과정에서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일본 사람을 바나나라고 그랬다. 얼굴은 노란데, 우리 같은 황색 인종인데, 쫙 껍질을 벗겨보면 하얗다. 겉으로는 동양 사람이지만 안은 완전히 서구화됐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을 바나나족이라고, 명예 백인이라고 불렀다.먹을 것이 들어오고 그다음에 뭐가 들어왔을까? 인간이 만든 문명이 들어왔다. 그 상징이 기차이다. 기차 노래는 전부 슬픈 눈물이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 <이별의 부산 정거장>, <청춘 12열차>.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밤이 아니면, 완행열차. 전부 이별을 상징한다. 러일전쟁이 일어나 일본은 러시아와 싸우고, 청일전쟁이 일어나 중국하고도 싸웠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기차이다. 우리에게는 빼앗기고 떠나가는 보슬비 내리는 기차였지만 철마로 대륙을 공격하고 자연을 파괴하면서 달려갔던 것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작은 책으로 엮은 디지로그와 생명자본, 내가 없는 세상에도 디지로그라는 말, 생명자본이란 말이 살아 있다면 여러분이 잘 가라고 손을 들어줬을 때 나는 정말 잘 갈 수 있고, 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p101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 기차의 시대가 비행기의 시대로 넘어오면 차원이 달라진다. 어렸을 때 부르던 종이 비행기 노래 때문에 절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린 비행기도 못 만들고 비행 실험하다 떨어져 죽은 모험가도 없지만 종이비행기를 만들고 그걸 띄우는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키워드 비행기 다음에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라고 하는 새로운 키워드가 생각났다. 반도라는 것은 반은 섬, 반은 대륙이라는 뜻이다. 우리 삶을 아주 쉽게 말하면 말 탄 사람이 지배한 대륙문화와 배 탄 사람이 지배한 해양 문화, 바다 문화가 있다. 2차 대전 때 우리가 겪은 것은 모든 거이 양극화되고 모든 것이 극단화돼서 조화와 융합과 균형을 이룬 시대라고 20세기를 정의한다.

 

파이브 지(5G)는 이동통신이 아닌 우리가 버려두는 다섯 가지를 말한다. 누룽지, 묵은지, 우거지, 콩비지, 짠지다. 먹는 음식에서, 부정적인 것이나 버리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재발견하는, 고통 속에서 행복을, 눈물 속에서 웃음을, 독약 속에서 약초를, 잡초 속에서 약초를 꺼내는 놀라운 힘이다.

 

저자는 헤어질 때 인사말은 잘 가, 잘 있어, 라는 말이라고 했다. 어릴 때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서 누가 부른다며 섭섭한 표정으로 하면서 미련이 남은 얼굴로 잘 있어, 잘 가라고 놀던 아이들 중에서 사라진다. 세상은 떠난다. 영영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항상 작은 이별과 작은 죽음을 경험한다. 사사로운 기억이 아니라 다섯 가지 키워드로 개화 100년 동안의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다. [작별]을 통해 저자는 새로운 인문학이 대두돼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무엇보다 여러 말을 만들었지만 아이들이 부를만한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는 유산을 남겨놓고 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야기꾼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은 잘 가기를 원하고 잘 있기를 원하는 서로의 공감 속에서도 죽음도 생명도 이길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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