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레차투라란 대단하고 특별한 일도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해내는 경지, 이른바 ‘무기교의 기교‘다. 훗날 이 말은 궁정인을 넘어 천재 예술가들의 노련함을 표현하는 데 쓰였고, 오늘날에는 패션에 관한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스프레차투라는 그냥 무심히 행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 몸에 완벽히스며들도록 오랜 시간과 고된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멋에 이를 수 있다는말이다. 로마가 어떤 도시인지 잘 담아낸 표현이 아닐까. - P14

독일의 괴테 역시 그런 이방인이었다. 그는 로마를 여행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로마에서 시작하는 역사는 세계 어느 곳의 역사와도 다르게 읽힌다.
다른 데서는 바깥에서 안으로 향하는데, 여기서는 안에서 바깥으로향한다. 모든 것은 이곳에 모여 있다가 이곳으로부터 퍼져나간다. 로마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P15

그런데 헬레니즘은 로마제국이 계승하고성해 널리 퍼뜨렸고, 지역 종교에 불과했던 그리스도교도 로마 교회를ㅣ치며 세계 종교의 위상에 올랐다. 로마는 고대 로마 문명의 중심지였으1. 로마 가톨릭교회의 본산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만서양문명은 로마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 P15

카이사르의 시대로부터 약 1600년이 지났을 무렵엔 천문학이 더 블전해 지구의 공전 시간도 더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1년의 ㄱ이는 365.25일에서 365.2422일로 조정됐다. 다시 말해 그레고리우력은 율리우스력의 1년 단위에서 11분 14초를 뺀 방식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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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여러 가지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우선 그 인사말의 짧음 때문이었다. 교장의 훈화가 줄잡아 30분, 훈육주임이나 교무주임의 지시사항 등속이 또 30분, 으레전체조회를 섰다 하면 한 시간씩 몸을비비 꼬는 것으로 습관되어 온 학생들 입장에서 미처 1분이 못 되는 인사말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다음이, ‘나‘를 ‘저‘로낮춰 말하는 점이었다. 교장을 비롯하여 모든 선생들은 ‘나‘였을 뿐 - P145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반대세력을 형성하거나 옹호하는것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일은 그 세력의 주동인물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정치의식을 버리고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이 될 것을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는 곧 각 학교에 퍼져 있는 사회주의 학생조직으로부터 ‘파괴분자·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 P146

그건 학생들의 저돌적인 정치의식이 낳은 쓰디쓴 비극이었다. 아직 스무 살이 못 되고, 책을 들어야 할 손에 몽둥이를 들게 한 그 이념이라는 것에 그는 순간적으로 치를 떨었다. - P147

이 사건으로 김범우 선생이란 존재는 순천·벌교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여수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몽둥이 휘두르며 덤비는 네사람을 거뜬히 물리친 무용담도 무용담이었지만, 학생들을 더욱감동시킨 것은 그 네 학생을 극구 변호해서경찰서에서 빼낸 것이었다. 그 일처리로 하여 좌익학생들도 더 이상의 적대감을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김범우 선생은 좌익에 물든 학생들을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극렬한 행동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들어간학생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학교의 구분을 두지 않고 노력했다. 좌익조직에서 보면 그는 확실히 눈엣가시였지만 그렇다고 증오스러운 적도 아니었다. - P148

필요한 말은 거의 하지 않는 무게감, 세상의 이치를 훤히 아는 것같은 해박함,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을 것 같은 겸손함, 거의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진행해가는 꾸준한 행동성, 그러나 그분의 절대적 매력은 이런 모든 것들이 모아져 이루어진 것 같은 그 어딘지우울한 듯하기도 하고, 쓸쓸한 듯하기도 한 범접하기 어려운 사색적이고도 지성적인 분위기였다. - P149

김범우가 사색적이고 지성적이라면 염상진은 야성적이고 행동적이었다. 이것은 서로 다른 개성일뿐저울눈금을 움직이게 하는 무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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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자세히는 모르고, 청계천 공구상에 나갔다가 사장 둘이하는 얘길 엿들었는데 말야, 평화시장의 어떤 직공 하나가 거기 봉제공장 노동자들이 사람대접을 받게 하겠다고 사장들을 상대로해서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죽었다는 거야." - P65

"응, 나도 이번 사건으로 모든 걸 알게 된건데, 우리 노동자들이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나라에서 법을만들었는데, 거기에 근로조건이라는 게 있어. 하루에 일은 여덟 시간만 한다, 야근을 시키면 야근수당을 따로 지급해야 한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쉬어야 한다. 공장 안의 작업환경은 건강을 해치게 해서는 안된다 - P69

손을 끊으려고 끊으려고 애를 썼지만 노름의 마력은 끈질기고도독했다. 본전만 찾으면, 본전만 찾으면・・・・・・ . 그 미련이 헤어날 수 없는 늪이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꼭 본전을 찾을 수 있을 것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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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적인 그늘만으로도 공허는 박상진의 심중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박상진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왜놈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보다 굳게 가진 인물이었다. 왜놈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군대를 양성해야 하고, 군대를 양성하려면 막대한군자금이 있어야 했다. 그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박상진이 전국적으로 조직한 것이 대한광복단이었다. - P60

공허는 잔잔하게 웃으며 노리개끝을 다듬기에 정성을 모았다. 그양쪽 끝은 번갈아가며 아이의 입에 들어갈 부분이었다. 그노리개는 사내아이든 계집아이든 가리지 않고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건 젖먹이 아이들에게 젖꼭지 구실을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잘근잘근 물게 되면 잇몸이 다져져 튼튼해지고, 이가 빨리 솟으면서 이뿌리가 실하게 박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노리개는아무 나무로나 깎는 것이 아니었다. 늙은 대추나무라야 했다. 대추나무가 단단할 뿐만 아니라 모든 악귀를 쫓아 아이를 지키는 것이었다. - P87

공허는 뿌드드득 이빨을 갈아붙였다.
지선이 말하는 그 소문은 과장이 아니었다. 토지조사를 최대한이용해서 그동안 논밭을 늘려온 하시모토는 토지조사가 거의 완료된 상황에서 죽산면을 반이 넘게 차지한 대지주가 되어 있었다.
죽산면 사람들은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동서남북으로 통행을 할수가 없게 된 형편이었다. 그의 토지가 넓어지는 만큼 죽산면 사람들은 그의 소작인으로 변해갔다. 적토마를 타고 들판을 아무런 거침 없이 내달리는 그는 대지주만이 아니었다. 죽산면에서 제일가는 권력자이기도 했다 - P92

그래, 신식공부 더 많이해서 송수익 같은 얼개화꾼 돼갖고 집안망칠라고 그러냐!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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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가 웃시야와 요담의 시대를 부국강병의 시대로 기술했지만 그 시대의 그림자도 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날에 (265) 하나님을 구했지만, 스가랴 사후로 추정되는 때에 성전에서 직접 분향하려다가 나병에 걸려 별궁에 유폐되고 만다. 이에 대해 역대기 기자는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해졌으나, 웃시야의 마음이 교만해지고
"악을 행하여" [여기에 동사 ‘샤하트‘의 히필형(사역형) 부정사가 사용되었다] - P33

 요담의 시대에 대해서도 역대기 기자는 유다 백성들이 "여전히 부패했더라"(하트‘의히필형 분사)고 적었다(27:2). - P34

‘악을 행하다‘, ‘부패하다‘로 옮겨진 동사 ‘샤하트‘의 히필형은 노아 홍수본문에도 사용되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이 온 땅을 홍수로 심판하신 까닭은 온 땅이 "부패"[샤하트의 니형 (재)기 때문이다(창 6:11). 무엇보다 하나님을 떠났기에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스라엘을 표현하는 데 이 동사가 빈번하게 쓰인다(신 4:28; 31:29; 삿 2:19; 렘6:28; 겔 16:47; 23:11 3:7).  - P34

를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아하스를 제거하고 반앗수르 동맹에 찬성하는 인물로 여겨지는 "다브엘의 아들‘을 유다 왕위에 세우고자 아람-이스라엘 동맹군이 유다를 침공했다(사 7:6)." 이것이 이른바 ‘수리아-에브라임 전쟁‘이다. - P36

이것들을제거하는 것도 신명기에서 요구한 중요한 명령이다(7:5: 12:3). 이 역시 열왕기에서는 오직 히스기야와 요시야만 단행했다고 전한다(왕하 23:14). 그뿐 아니라 이 두 왕은 열왕기 역사에서 다윗이 행한 대로 행했다고 평가받는다[왕하 18:3; 22:2; 참고. 아사(왕상 15:11)]. 열왕기가 히스기야와 요시야를유례없이 찬사한다면, 역대기는 이들이 어떻게 제사와 예배를 개혁하고바로잡았는지 길게 서술하는 것으로 이들을 부각시킨다(대하 29:1-31:21;34:1-35:19).335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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