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여러 가지로 당황해하고 있었다. 우선 그 인사말의 짧음 때문이었다. 교장의 훈화가 줄잡아 30분, 훈육주임이나 교무주임의 지시사항 등속이 또 30분, 으레전체조회를 섰다 하면 한 시간씩 몸을비비 꼬는 것으로 습관되어 온 학생들 입장에서 미처 1분이 못 되는 인사말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다음이, ‘나‘를 ‘저‘로낮춰 말하는 점이었다. 교장을 비롯하여 모든 선생들은 ‘나‘였을 뿐 - P145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반대세력을 형성하거나 옹호하는것이 아니었다. 그가 하는 일은 그 세력의 주동인물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정치의식을 버리고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이 될 것을설득하는 것이었다. 그는 곧 각 학교에 퍼져 있는 사회주의 학생조직으로부터 ‘파괴분자·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 P146

그건 학생들의 저돌적인 정치의식이 낳은 쓰디쓴 비극이었다. 아직 스무 살이 못 되고, 책을 들어야 할 손에 몽둥이를 들게 한 그 이념이라는 것에 그는 순간적으로 치를 떨었다. - P147

이 사건으로 김범우 선생이란 존재는 순천·벌교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여수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몽둥이 휘두르며 덤비는 네사람을 거뜬히 물리친 무용담도 무용담이었지만, 학생들을 더욱감동시킨 것은 그 네 학생을 극구 변호해서경찰서에서 빼낸 것이었다. 그 일처리로 하여 좌익학생들도 더 이상의 적대감을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김범우 선생은 좌익에 물든 학생들을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극렬한 행동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들어간학생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학교의 구분을 두지 않고 노력했다. 좌익조직에서 보면 그는 확실히 눈엣가시였지만 그렇다고 증오스러운 적도 아니었다. - P148

필요한 말은 거의 하지 않는 무게감, 세상의 이치를 훤히 아는 것같은 해박함,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을 것 같은 겸손함, 거의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진행해가는 꾸준한 행동성, 그러나 그분의 절대적 매력은 이런 모든 것들이 모아져 이루어진 것 같은 그 어딘지우울한 듯하기도 하고, 쓸쓸한 듯하기도 한 범접하기 어려운 사색적이고도 지성적인 분위기였다. - P149

김범우가 사색적이고 지성적이라면 염상진은 야성적이고 행동적이었다. 이것은 서로 다른 개성일뿐저울눈금을 움직이게 하는 무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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