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2 - 조정래 대하소설, 등단 50주년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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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고 죽고 또 굶주리고 빼앗기고.정말 지랄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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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들의 허락이 떨어진 다음 호산맥은 두 번째 행보를 하는것이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쌀보퉁이를 이고 큰아들 집으로 갈 수있다는 것, 호산댁은 그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신명나는 일일 수가없었다. 지도 한 핏줄잉께으짤 수가 없는 것이제, 마음을 돌려준작은아들이 그저 고맙고 기특할 뿐이었다. - P424

가슴은 타다 타다 제풀에 꺼진 숯덩이였다. 그래도 해방은 고마운 것이었다. 작은아들을 찾아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새로운마음고생은 또 시작이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서로 총부리를대고 맞서게 된 것이다. 둘 중에 그 누구를 말릴 수 없었다.  - P424

"어허어엇! 엿들 사씨요, 엿들 사아! 아들 밥 비베주다가 숟가락몽댕이 뿌러진 것, 부부쌈 허다가 사발 내붙인 것, 누룽밥 긁어묵다가 양은냄비 빵구낸 것, 재앙시외아들이 붕알시계 고장낸것, 생과부 오줌발에 놋요강 찌그러진 것, 동서지간 싸우다가 솥뚜껑 깨묵은 것, 어허어, 쓰자 허니 못 쓰겄고 내뿔자니 아까운 것,
뭣이든지 갖고 와, 얼렁 와서 엿허고 바까묵어, 달고 맛난 찹쌀엿,
어허어, 싸게싸게 갖고 와, 늦어뿔먼 못 묵어, 어허어, 찹쌀엿, 찹쌀엿, 둘이 묵다가 한나 죽어도 모를 달고 맛난찹쌀엿… - P425

무당이 바라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 엿장수는 커다란 가위를 철그렁거려 박자를 맞춰가며 걸찍한 목소리로 잘도 주워섬기고 있었다.  - P425

광조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입술을 쑥 내밀었다. 저것이 밤이면 에미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모양이라 싶어 호산댁은 콧등이 찡해졌다.
"바보, 엄니보담 아부지가 더 고상이여."
덕순이가 불쑥 말하고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호산댁은 덕순이를 부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말에이미울음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애비 걱정으로 우는 것조차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 P430

그런데 술에 밥에 배터지게 먹은 그들이 휴식이랍시고 낮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글쎄 한 놈이 빠져나와 처녀 혼자 있는 집으로 뛰어든 거야. 그래 어찌 됐겠나 처녀는 반항을 하고 그놈은 덤벼들고 하는 난장판이 벌어지고있는데 밖에 나갔던 처녀 오빠가 돌아온거네. 상황이 어찌 됐겠어. 다급해진 그놈이 총을 갈겨댄 거야. 마당에 죽어 넘어진 그 참혹한 꼴이라니. 그 집이 내가 몇 시간 전에 들른 학생 집이었고, 그때 만났던 사람을 피 흘리는 시체로 보아야 했지.  - P446

"배짱이 아니네 머리를 맞고 쓰러진 순간 막막하더군. 사람들을끌고 나온 이상 어떤 해결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쓰러졌지, 상대방은 거칠지 방안이 없는 판에 자네가 나타난 거야. 자네가 그때처럼 반가울 줄이야. 그러니 웃을 수밖에."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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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손은 이올코스 궁전으로 들어가 숙부 펠리아스왕의 알현을 청했다. 펠리아스왕은 ‘메가론‘, 즉 ‘왕궁의 손님 접견실‘로 방문객을 안내하게 했다. 1997년 지금의 볼로스, 신화시대의 이올코스에서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발굴된 ‘메가론‘이 혹 이 접견실이 아니었을까? - P1069

그리스 사람들은 손님으로서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는 거의 반드시라고해도 좋을 정도로 고향과 부모 이름을 밝힌다. - P1069

"저는 펠리온산에서 오는 길입니다. 펠리온산의 현자 켄타우로스 케이론은 다섯 살 난 저를 거두시어 15 년 동안을 가르친 스승이시고 역시 켄타우로스인 그분의 배우자 칼리크로는 15년 동안이나 저를 보살펴 길러주신 양어머니십니다. 저는 펠리온산의 현자 케이론의 동굴에서 왔습니다." - P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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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일은 장군과 고관들이 죽어가는 테오도시우스를 둘러싸고 임종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황제의 공식적인 결정이고 유언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장군과 고관들을 유언의 증인으로 삼으려는 테오도시우스의 뜻이었다.
스틸리코에 대한 테오도시우스의 신뢰와 기대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 P38

요컨대 스틸리코는 395년 당시 로마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장악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그 군대의 공식 최고사령관인 황제는 이제 열여덟 살과열 살밖에 안된 소년들이다. 스틸리코가마음만 먹으면 두 소년 황제를 밀어내고 제위를 장악할 수도 있었다. - P39

세레나의 남편이라는 유효한 카드까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스틸리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황을 살피는 미묘한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부류의 남자는 그의 지위와 권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적이 생기는 것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 심취한 추종자를 얻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남자가 홀딱 반할 만한 남자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이 스틸리코에게 심취한 사람이 이집트 태생의 시인클라우디아누스였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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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일대는 평원이기 때문에 로마군이 장기로 삼는 회전 방식으로 치러진 듯하다. 로마인의 회전 방식은 적을 포위하여 궤멸시키는 병법이다.  - P90

로마군은 군량을 지참하고 싸우러 가지만, 다키아족은 현지 조달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이다. - P91

그러나 산맥을 서쪽에서 우회하는 길은 지난해에 이미 돌파하여 숙영지와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데다 병력도 절반이 남아 있는 반면, 동쪽에서 우회하는 길은 여러 가지로 불리했다. 우선 로마군이 한번도가보지 않은 땅이다. 게다가 거리도 세 배나 된다. 그래서 트라야누스는 동쪽 우회로로 가는 병력을 기병과 젊은 정예 군단병으로 편성한다. 이 제2군의 총지휘를 맡은 것은 마우리타니아 기병대를 이끌고 용명을 떨친 루시우스 퀴에투스였다.  - P92

 병력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와 달리, 트라야누스는 병사들과 함께 진군하는 황제였을 것이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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