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걷고 계셨다. 삭개오라는사람이 거기에 있었는데, 그는 세금 징수원의 우두머리이자 상당한 부자였다. 그는 예수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무리 때문에 시야가 가렸다. 키가 작아서 사람들 너머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예수께서 지나가실 때 보려고 먼저 달려가 뽕나무에 올라갔다. - P267

예수께서 나무 밑에 오셔서 올려다보며 말씀하셨다. "삭개오야,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겠다." 삭개오는 자신의 행운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는 나무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 그 일을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분개하며 투덜거렸다. "저분이 무슨 일로 이 사기꾼 같은 사람을 가까이하는가?" - P268

삭개오는 놀라서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더듬거리며 사죄했다. "주님, 제 수입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저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인 일이 있으면, 그 피해액을 네 배로 보상하겠습니다."
- P26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이 집에 구원이 임한 날이다! 여기 아브라함의 자손 삭개오가 있다!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회복시키려고 왔다." - P268

26 그가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너희가 목숨을 걸면 상상도 못할만큼 많이 받게 된다. 그러나 안전에 급급하면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27 나의 통치에 반대하는 탄원을 했던 이원수들을 여기서 끌어내어라. 다시는 여기서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 P269

37-38 올리브 산이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등성이에서, 제자의 온 무리가 그들이 목격한 놀라운 일들로 인해 열광적으로 찬양을 터뜨렸다.
복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눈물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모든 것이 형!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 - P270

45-46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거기에 상점을 차려 놓고 온갖 잡다한 것을 파는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그런데 너희는 그곳을 종교 시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 P271

47-48 그때부터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대제사장과종교 학자와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제거할 방법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경청하는 백성 때문에 그들도 어찌할 수 없었다.  - P271

 "당신의 신임장을 보여주시오. 누구의 권한으로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겁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먼저 한 가지 묻겠다. 요한의 세례에 관한것인데, 그것이 누구에게서 온 권한이냐? 하늘이냐, 사람이냐?"
- P271

그들은 자기들이 궁지에 몰린 것을 알아차리고는 뒤로 물러나와모여서 수군거렸다. "하늘이라고 하면 왜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고물을 것이고, 사람이라고 하면 요한을 하나님의 예언자로 굳게 믿고있는 백성이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다." 그들은 이번은 예수께 양보하기로 하고, 자신들은 모른다고 말했다.  - P271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떠나 있다가, 때가 되자 수확하려고 소작농들에게 좋을 한 사람 보냈다. 그러나 소작농들은 그 종을 마구 때려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다시 한번 다른 종을 보내자, 소작농들은 그 종도 멍이 들도록 때려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세 번째로 종을 보내자, 소작농들은 그 종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들겨패서 길거리에 내다 버렸다.
- P272

13그러자 포도원 주인이 말했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자. 저들이 내 아들만큼은 존중하겠지.‘
14-15 그러나 아들이 오는 것을 본 소작농들은 재빨리 머리를 맞대고의논했다. ‘지금이 기회다. 이 자는 상속자다! 그를 죽이고 우리가재산을 다 차지하자.‘ 그들은 그 아들을 죽여서 울타리 밖으로 내던졌다.
- P272

15-16 너희 생각에는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할 것 같으냐? 맞다. 그가와서 그들을 다 없애 버릴 것이다. 그리고 포도원 관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것이다." - P272

그러니 우리한테 말해 주십시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법에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까?"
23-24 예수께서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전 하나를 내게 보여라. 여기 새겨진 얼굴이 누구 얼굴이냐? 그리고 뭐라고써 있느냐?"
25"황제입니다." 그들이 말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 - P273

26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그들은 예수께 죄를 뒤집어씌울 만한 발언을 유도해 낼 수 없었다. 그분의 대답은 그들의 허를 찔렀고, 그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 P27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땅에서는 결혼이 중대한 관심사지만저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관심사가 못된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너희야믿지 않겠지만, 그들에게는 더 나은 관심사가 있다. 그때에는 하나님과 최고의 기쁨과 친밀감을 나눌 것이다.  - P274

모세도 불붙은 떨기나무앞에서 부활에 관해 외치기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분께는 모두가 살아 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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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처한 상황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들은 요한계시록의 초반부에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 안에서 너희와 함께 환난과 그 나라와 인내를 나누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증언으로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9).
" - P37

저자가 스스로를 "요한이라고 4차례나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1:1, 4, 9%22:8), 그럼에도 여전히 "어느 요한?"을 가리키는지에 관한 의문이 남아있다.
전통적인 입장은 그를 갈릴리 어부 요한으로, 곧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이자초기 교회의 핵심적인 사도가 된 인물로 본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강력한 외적 근거가 이른 시기부터 존재한다. - P37

일곱 교회를 향한 설교를 해석하는 데 이 논쟁이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전반에 관해 비일이 언급한 내용이 아마도 2-3장을 연구하는 데더 도움이 될 것 같다(Beale 1999: 35). "저자 문제는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굳이 확정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저자 문제는 2가지 핵심적인 사항만을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간에는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으며(예를 들어, Mounce 1977: 29-31;Osborne 2002: 4-6; Tonstad 2019: 32-33을 보라), 두 문헌 사이의 차이점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 P38

둘째, 소아시아 지역에 두 "요한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유명한 사도로서, 소아시아 지역에 머물렀다는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던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알려진 바가 없고 다수의자료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이 실명으로 요한계시록이라는 정경을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명도를 갖추었고, 더 나아가 독자들이 그보다 훨씬 유명한 동명이인과혼동하지 않도록따로 자신을 밝힐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 P38

요한이처한 상황에 대한 이와 같은 오해는 19세기 순례자들이 밧모섬을 "척박하고,
바위투성이의 황량한 곳" (Newton 1865: 223), 혹은 "거칠고 황량한 섬" (Geil 1896:70)이라고 묘사한 글에, 과도한 상상을 덧붙인 결과이다. 요한의 상황에 대한오해는 밧모섬이 유배지이며, 요한은 광산에서 강제 노역형에 처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 램지 (Ramsay 1904 83)로 인해 더욱 널리 퍼졌다. 그리고 이러한추측은 그를 이은 여러 주석가들에게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 P39

그러나 고고학적 근거나 비문의 근거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요한이 밧모섬으로 갔을 때 그곳은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니었다. 당시 밧모섬은 상당한 규모의 종교, 군사, 사회 시설이 갖춰져 있었으며, 또한 사람들이거주하던 장소였다(Saffrey 1975; Aune1997: 76-77; Boxall 2006:24-27; Boxal 2013:232-34을 보라). 밧모섬은 종교적으로 아르테미스 숭배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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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이후 예수님 장례식 용품을 제공하며 자신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드러냈다.
니고데모는 3장, 7장, 예수님 장례 상황을 보도하는 19장에서 언급된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기독교 교회에 합류한 사람임을 암시한다.
갈릴리에 대한 주류의 편견이 지배하는 체제 안에서 내부자 소수파의 의견을 가지면 오히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함의를 준다. - P313

 갈릴리는 선지자가 일어날 수 없는 여건이라는 것이다. 갈릴리는 소작농들, 석수장이, 상인들, 이방인들의 집단거주지로서 이스라엘의 영적 전통이 보존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랍비들의 활동 본거지도 아니요 성경 필사가이루어지는 곳도 아니다. 신령한 인물이 나기에는 너무 황폐한 지역이라는 함의가 들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온 선지자이며 그 이상이다. 힘, 교육 배경, 출신지 등 외모를 숭배하는 풍토에서 배척받은 예수님은 힘없고 가난한 이스라엘 백성의 메시아가 되기 위해 그들의 가난에 참여하고 그들의 빈천을 옷 입으셨다.
- P314

유대인들의 편견에서도 드러나듯 갈릴리 나사렛에서는학자도 나지 못했고, 랍비도 나지 못했으며, 예언자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 P315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처음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는 장면을 이사야 9:1을 인증해서 이렇게 해석한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23 갈릴리는 백성들의 약한 것과 모든 병들이 모인 곳이었기에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 P315

갈릴리 가버나움의 세리였던 마태는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장면을 보고 이렇게 썼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4:14-16  - P315

요세푸스가 쓴 유대 전쟁사는 66-70년에 로마에 대해 전면전을 벌였던 갈릴리 농민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다. 갈릴리는 기후가 좋아 작물이 풍부하고 온갖 곡식과 과실과 유실수가 잘 자라며남자 인구의 성비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높았다. 그래서 갈릴리는남성적 호전성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고 농민적 저항의 터전이 되었으며 또 착취당한 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 P316

요세푸스에 따르면 갈릴리는 작은 도시라도 남성 인구 1만5천 명이 금세 모였다. 요세푸스는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에는 남성 1만5천 명을 보유한 도시가 여럿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스적 생활양식이 두드러진 세포리스는 요샛말로 강남 같은 곳이었다. 친로마귀족들이 로마 수입품을 가지고먹고 살았던 도시였으며,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밤에 음악회가 열리는 야외음악당도 있었고 마차경기장도 있었다. 이곳이 갈릴리의 또다른 얼굴이었다. 세포리스는 로마귀족들과 친로마적 이스라엘 부호들이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란 선선한 바나나와 오렌지, 말린 무화과 디저트를 먹으면서 마차경기를 즐겼던 산상도시였다. 당시 마차경기는 그것을 후원할 부호세력들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부호들의 존재는 갈릴리 농민에게는 고통이었다.  - P316

갈릴리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은갈릴리에서 나오셔야 했다. 예루살렘 종교권력자였던 바리새인들은갈릴리 아우성에 공감하지 못했다. 우리의 존재는 어디에서 자라 무엇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틀지워진다.  - P317

갈릴리적 아우성이 묻어 있는 토양에서 인물이 빚어진다. 갈릴리적 토양과 응답하면 인물이 나오고 메시아적 독생자급 인물이 나온다.
역사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지성이 자라서 당대의 역사적모순을 해결하는 일꾼으로 성장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메시아가 갈릴리에서 나오는 것이 당연한 역사적 원칙인데 종교당국자들은 이를 모른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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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예수가 모세 같은 예언자라고믿었다. 참조. 40절과 신 18:15-18 또 다른 이들은 예수가 메시아라고 생각했지만, 그분이 구약이 예언했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사실 때문에 주저했다. 41-42절 참조. 미 5:2 사실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요한복음 7:27 이 언급한 것과는 또다른 메시아 대망을 만난다. 1세기 유대인들이 메시아에 대해 품고 있던 기대는 통일되지 않았다.  - P166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이들이 예수에 관하여 그릇된판단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① 산헤드린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그들의 조롱 섞인 반응은 니고데모가 예수를 믿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말이었다(아리마대 요셉도예수를 믿었다) 막 15:43 23:50 바리새인이 예수를 부당하게 대하는 산헤드린에 맞서 그리스도를 지지하려면 용기가 필요했다.47-51절  ②바리새인들은 나아가 갈릴리에서 예언자가 나온 적이 없다며 니고데모를 비꼬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가령 예언자 요나도갈릴리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왕하 14:25 - P167

초막절, 그중에서도 특히 물긷는 의식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언약에 따르는 복레 26:4;신28:12 은 물론이요 메시아 시대에 주어질 종말의복겔47:1-12; 슥 14:8-9을 되새겨 주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복들은 예수라는 인격체 안에서 하나로 융합되었다. 예수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 후 성령을 보내신 일은 마지막 때에 있으리라던 마음의 회복을 가져왔다.  - P167

더구나 구약성경은 마지막 때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방인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일과 결합했다. 사 45:15660:15-17; 미 4:13 등
이 역시 예수 시대에 일어나기 시작하여 요한 때도계속되었고,요7:35-36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 P167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다룬 본문이 요한복음의 일부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정경도 아니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본문도 아님을 강하게 시사하는 증거가 셋 있다. ① 사본학적으로, 주후 5세기 전에 나온 네 번째 복음서의 헬라어 사본 어느 것에서도 이 단락이 등장하지 않는다. ② 문체적으로, 7:53-8:11 은 사실상 모든구절에 요한복음 다른 곳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단어들을 담고 있다(서기관‘, ‘감람‘, ‘간음‘, ‘정죄하다‘ 등).  - P172

③ 논리적으로, 7:53-8:11은7:52에서 8:12로 이어지는 사고의 흐름을 중간에 끊어 버린다. 즉8:12-9:7에 나오는 초막절 모티프, 특히 실로암못 이야기는 7:52에서의 논의를 이어 가는 반면, 7:53-8:11은 해당 에피소드를 성전 경내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로 집어넣어 놓았다. 주석가들이제시하듯이, 7:53-8:11은 예수 수난 앞에 더 잘 들어맞는다. - P172

이 본문이 본디 요한복음에 들어 있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서유래했을까? 어쩌면 이 에피소드는 독창성을 발휘한 어떤 필사자가 정경이 아닌 2세기 문헌인 ‘히브리복음‘에 처음 기록되었던 것을 가져다가 요한복음에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 - P172

공관복음은 유대와 로마 당국자들이 예수를재판한 것을 강조하는 반면, 요한복음은 그 반대다. 요한복음은그들이 심판자이신 예수 앞에서 판단받는 모습을 보여 준다.
יו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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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암몬 땅은 이스라엘과 동쪽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암몬은비도덕적으로 시작된 나라였는데, 그 나라를 세운 조상 벤암미는롯과 그의 딸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자식이다(창 19:30-38).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적이었던 암몬은 사사 시대에 국력이 최고조에이르렀다. 다윗은 이들을 진압한 최초의 이스라엘 군사 지도자였다. 그들은 얼마간 더 이상 말썽을 일으킬 수 없었다.
- P721

19:2-3 하눈과 그의 방백들은 다윗의 의도를 오해했다. 그는 지나친 의심으로 자신과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왔다. 과거의 경험 때문에 어떤 사람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고 동기를 마음대로 추측하며 과도하게 의심하기 쉽다. 사람들을 대할 때는 신중하고 지혜로워야 하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을 나쁜 의도로 추정해서는 안 된다.
- P721

19:4-5 이스라엘 남자들은 수염을 길렀다. 강제로 수염을 깎이는것도 충분히 수치스러운 일인데, 이들은 옷이 반쯤 잘려 나간 상태이기도 했다. 하눈의 행동은 조문단에게 수치를 주는 동시에 이스라엘을 향한 모욕이었다.
- P721

19:6 하눈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와 화해를 구하기보다잘못을 가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썼고, 그 은폐의 대가는 실로 컸다(20:1-3). 실수를 가리려는 시도는 종종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할때보다 많은 대가를 치른다. 방어적인 태도로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다는 잘못을 깨닫자마자 용서와 화해를 구하라. 그러면 당신 자신과 상대방의 많은 시간과 아픔과 곤란이 줄어들 것이다. - P721

20:1 다윗의 간음은 그가 전쟁에 나가는 대신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이때 일어났다(삼하 11-12장). 역대상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오랜 관심과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성전에 초점을 맞추어 쓰였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배제한 것같다.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는 그 목적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장과 다음 장 사이에 일어난 압살롬의 반역도(15-18장) 아마 같은이유로 생략되었을 것이다.
- P722

20:1 왕들은 봄 추수 기간 이후에 출정했다. 이때는 농사일이 줄어들었고, 군대는 자급자족해서 식량을 보충할 수 있었다. 겨울 동안에는 왕들이 앞으로 진행할 정복 전쟁을 모의하고 계획했다. 날씨가 좋아지면 군대가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전쟁터에 나갔다. 하지만 다윗은 이 기회를 모르는 척했다. 그는 왕궁에 그대로 있고 요압을 보내 군대를 이끌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바로 이때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었다. 당신 인생의 ‘봄‘을 찾아보라. 이때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반응하고솔선하여 움직이기를 바라시는 때다. 이 중요한 시기에 당신은 유혹에 가장 취약해질지 모른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행하겠다고 결단하라. 당신을 무기력하게 만들려는 유혹에 발판을 마련해주지 말라.
- P722

21:1-3 다윗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졌다. 하나님께서 요압의 조언을 통해 탈출구를 제공하셨지만 다윗의 오만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힘을 믿었다. 만일 우리가스스로 충분하다 여기며 하나님을 제쳐 놓고 자신을 신뢰한다면곧 사탄의 궤계에 넘어질 것이다. 자만심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떼어 놓는다. 유혹을 받을 때면, 외적 유혹이 왜 그렇게 매력적인지 우리 내면의 욕구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유혹을 피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전 10:13을 보라). - P723

21:1 다윗의 인구 조사가 재앙을 불러온 까닭은, 하나님이 명하신이전의 인구 조사와는 달리(민 1~2장) 다윗이 옳지 않은 동기로 명령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그 동기는 바로 자기 군대의 힘을 자랑하려는 것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병력을 헤아리면서 하나님보다 군사력을 더 신뢰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자신감을 갖는 것과, 하나님이 위대한 목적에 당신이 쓰임받아서 우쭐하는 것은 미묘하게 다르다.
- P722

21:1 본문은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도록 사탄이 ‘충동‘했다고 말한다. 사탄이 사람으로 하여금 옳지 못한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사탄은 그런 생각을 하도록 다윗을 유혹했을뿐이다. 다윗이 그것에 미혹하여 불순한 목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에덴동산 때부터 줄곧 사탄은 사람들이 죄를 짓도록 유혹했다. 인구 조사 자체는 하나님의 율법에 반하는 일이 아니었지만 다윗의목적은 옳지 않았다. 다윗은 자신의 진정한 힘은 하나님으로부터온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강력한 군대를 자랑했다. 도덕 관념이그리 높지 않은 듯한 요압조차 인구 조사가 죄악임을 인지했다. 우리는 다윗의 예를 통해 그 자체로 잘못되지 않은 행동도 탐욕이나오만이나 이기심이 동기가 될 때에는 죄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행동이 아닌 우리의 동기에 죄가 들어 있다.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거듭 동기를 점검해야 한다.
- P722

21:8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는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잘못을인정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많은 사람이 개인적인 죄와 죄책은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삶에 하나님과 기독교의 혜택을더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기 전에 고백과 회개가 있어야 한다. 다윗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용서와 역사하심이 계속되기를 기대하기 전에, 우리 행동들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그것을 고백해야 한다.
- P722

21:13-15 죄는 도미노 효과가 있다. 일단 죄를 지으면 심각한 결과가 뒤따른다.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해 주시지만 그 죄의 결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다윗은 자비를 구했고 하나님은 천사가 예루살렘을 멸하는 사명을 완료하기 전에 그를 멈추어 응답하셨다. 하지만 다윗의 죄의 결과는 이미 심각한 해를 끼쳤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때로는 그 혹독한 결과를 덜가혹하게 하려고 개입하신다. 하지만 상흔은 남을 것이다. 행동하기 전에 먼저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결과를 숙고한다면 우리는그 행동을 멈출 수 있고 그럼으로써 많은 슬픔과 고통을 피할 수있을 것이다.  - P722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일하도록 만드셨다. 공정하다고 생각되지 않더라도 한 집단은 지도자의 죄 때문에 고통을겪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원하지 않을 때에도 항상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 구절에 묘사된 가혹한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이 사건이일어나는 동안 예언자들과 지파의 지도자들과 다른 조언자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또 그들이 왕에게 동조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군사력을 신뢰하는 것이 우상 숭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두는 것은 죄이며 결국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P724

21:22-24 다윗이 제단을 쌓으려고 오르난의 땅을 사고 싶어 하자그는 너그럽게도 모든 것을 선물로 주려 했다. 그러나 다윗은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다윗은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고자 했다. ‘희생제물‘이라는 단어에는 자기자신이나 시간이나 돈으로 증여자가 값을 치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희생적으로 바치기 위해서는 이름뿐인 노력이나 기증품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바치기를 원하시지만그것이 의미 있기를 바라신다. 당신이 아무런 값도 치르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헌신을 입증하지 못한다. - P724

21:29-22:1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두 시간쯤 가면나오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다. 몇 년 전에 사울은 성막을 그곳으로 옮겼다. 이 경우 다윗이 기브온에 가지 않은 까닭은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겨 오는 도중 웃사가 죽었을 때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교만의 결과로 칠만 명이죽었다. 다윗이 느낀 두려움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성품과 기준을 숙고할 때 가져야 하는 경외감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자비와 용납을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경외할 만하시며 거룩한 분이심을 감히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 P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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