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는 이후 예수님 장례식 용품을 제공하며 자신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드러냈다. 니고데모는 3장, 7장, 예수님 장례 상황을 보도하는 19장에서 언급된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기독교 교회에 합류한 사람임을 암시한다. 갈릴리에 대한 주류의 편견이 지배하는 체제 안에서 내부자 소수파의 의견을 가지면 오히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함의를 준다. - P313
갈릴리는 선지자가 일어날 수 없는 여건이라는 것이다. 갈릴리는 소작농들, 석수장이, 상인들, 이방인들의 집단거주지로서 이스라엘의 영적 전통이 보존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랍비들의 활동 본거지도 아니요 성경 필사가이루어지는 곳도 아니다. 신령한 인물이 나기에는 너무 황폐한 지역이라는 함의가 들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온 선지자이며 그 이상이다. 힘, 교육 배경, 출신지 등 외모를 숭배하는 풍토에서 배척받은 예수님은 힘없고 가난한 이스라엘 백성의 메시아가 되기 위해 그들의 가난에 참여하고 그들의 빈천을 옷 입으셨다. - P314
유대인들의 편견에서도 드러나듯 갈릴리 나사렛에서는학자도 나지 못했고, 랍비도 나지 못했으며, 예언자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 P315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처음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는 장면을 이사야 9:1을 인증해서 이렇게 해석한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4:23 갈릴리는 백성들의 약한 것과 모든 병들이 모인 곳이었기에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 P315
갈릴리 가버나움의 세리였던 마태는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장면을 보고 이렇게 썼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4:14-16 - P315
요세푸스가 쓴 유대 전쟁사는 66-70년에 로마에 대해 전면전을 벌였던 갈릴리 농민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다. 갈릴리는 기후가 좋아 작물이 풍부하고 온갖 곡식과 과실과 유실수가 잘 자라며남자 인구의 성비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높았다. 그래서 갈릴리는남성적 호전성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고 농민적 저항의 터전이 되었으며 또 착취당한 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 P316
요세푸스에 따르면 갈릴리는 작은 도시라도 남성 인구 1만5천 명이 금세 모였다. 요세푸스는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에는 남성 1만5천 명을 보유한 도시가 여럿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스적 생활양식이 두드러진 세포리스는 요샛말로 강남 같은 곳이었다. 친로마귀족들이 로마 수입품을 가지고먹고 살았던 도시였으며,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밤에 음악회가 열리는 야외음악당도 있었고 마차경기장도 있었다. 이곳이 갈릴리의 또다른 얼굴이었다. 세포리스는 로마귀족들과 친로마적 이스라엘 부호들이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란 선선한 바나나와 오렌지, 말린 무화과 디저트를 먹으면서 마차경기를 즐겼던 산상도시였다. 당시 마차경기는 그것을 후원할 부호세력들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부호들의 존재는 갈릴리 농민에게는 고통이었다. - P316
갈릴리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은갈릴리에서 나오셔야 했다. 예루살렘 종교권력자였던 바리새인들은갈릴리 아우성에 공감하지 못했다. 우리의 존재는 어디에서 자라 무엇을 경험하는가에 따라 틀지워진다. - P317
갈릴리적 아우성이 묻어 있는 토양에서 인물이 빚어진다. 갈릴리적 토양과 응답하면 인물이 나오고 메시아적 독생자급 인물이 나온다. 역사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지성이 자라서 당대의 역사적모순을 해결하는 일꾼으로 성장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메시아가 갈릴리에서 나오는 것이 당연한 역사적 원칙인데 종교당국자들은 이를 모른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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