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처한 상황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들은 요한계시록의 초반부에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 안에서 너희와 함께 환난과 그 나라와 인내를 나누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증언으로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9). " - P37
저자가 스스로를 "요한이라고 4차례나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1:1, 4, 9%22:8), 그럼에도 여전히 "어느 요한?"을 가리키는지에 관한 의문이 남아있다. 전통적인 입장은 그를 갈릴리 어부 요한으로, 곧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이자초기 교회의 핵심적인 사도가 된 인물로 본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강력한 외적 근거가 이른 시기부터 존재한다. - P37
일곱 교회를 향한 설교를 해석하는 데 이 논쟁이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전반에 관해 비일이 언급한 내용이 아마도 2-3장을 연구하는 데더 도움이 될 것 같다(Beale 1999: 35). "저자 문제는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굳이 확정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저자 문제는 2가지 핵심적인 사항만을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간에는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으며(예를 들어, Mounce 1977: 29-31;Osborne 2002: 4-6; Tonstad 2019: 32-33을 보라), 두 문헌 사이의 차이점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 P38
둘째, 소아시아 지역에 두 "요한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유명한 사도로서, 소아시아 지역에 머물렀다는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던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알려진 바가 없고 다수의자료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이 실명으로 요한계시록이라는 정경을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명도를 갖추었고, 더 나아가 독자들이 그보다 훨씬 유명한 동명이인과혼동하지 않도록따로 자신을 밝힐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 P38
요한이처한 상황에 대한 이와 같은 오해는 19세기 순례자들이 밧모섬을 "척박하고, 바위투성이의 황량한 곳" (Newton 1865: 223), 혹은 "거칠고 황량한 섬" (Geil 1896:70)이라고 묘사한 글에, 과도한 상상을 덧붙인 결과이다. 요한의 상황에 대한오해는 밧모섬이 유배지이며, 요한은 광산에서 강제 노역형에 처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 램지 (Ramsay 1904 83)로 인해 더욱 널리 퍼졌다. 그리고 이러한추측은 그를 이은 여러 주석가들에게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 P39
그러나 고고학적 근거나 비문의 근거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요한이 밧모섬으로 갔을 때 그곳은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니었다. 당시 밧모섬은 상당한 규모의 종교, 군사, 사회 시설이 갖춰져 있었으며, 또한 사람들이거주하던 장소였다(Saffrey 1975; Aune1997: 76-77; Boxall 2006:24-27; Boxal 2013:232-34을 보라). 밧모섬은 종교적으로 아르테미스 숭배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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