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endeavors built upon foundations apart from God are doomed forcomplete destruction-if not in this life, then surely in the life to come.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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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바울의 칭의론을 왜곡했기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교인들에게 믿으면 무조건 구원받는다고 강조고, 이는 행위 없는 믿음을 갖게 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뇌물을 주고는고, 비리를 저지르고, 사기치고, 탈세하며, 불의한 자를 감싸고 약한 자를억압하는 등 이웃에 해코지하고 공동체에 해악을 가져다주면서 자기에익을 추구하여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런 가르침은 없다. 그러므로 이런 기독교인들은
‘참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개독교인들‘이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독사가 아니라 ‘먹사‘다. - P18

그저 교인 수만 늘려 양적 ‘교회 성장‘을 도모한다. 이런 목사들은신자들로 하여금 이 세 가지에 전념하도록 ‘사후 상급 교리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것들만 잘하면 무슨 불의를 저지르든 구원은 확실히 받고, 천국에서 상급까지 받는다고 가르치니, 이것이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가 팔았던면죄부와 무엇이 다른가? - P19

 칭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은혜를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 받는 것인데, 그것은 죄사함 또는 무죄선언을 받음과 함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감, 즉 하나님 나라에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칭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이됨과 동의어다.  - P19

산상수훈의 서두, 이른바 ‘팔복‘ 부분은 예수께서 자신의 하나님 나라복음을 받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받게 되었음을 복된 일이라고 축하하시는 부분이다.
그런데 ‘복‘을 좋아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명동이나 강남의 금싸라기 ‘땅‘ 등을 주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오해하면서 오로지 ‘복‘에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그 부분에서 정작 우리가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것은여덟 가지로 그려진 하나님 백성의 품성이다. 즉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해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자비로운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을 도모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가 그것이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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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야누스는 또 하나의 본국 공동화 방지책을 시행했다. 통칭 ‘알리멘타‘(Alimenta)라는 법인데, 당시 로마인은 이것을 차세대 육성기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 말로 바꾸면 ‘육영자금제도‘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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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에는바빌로니아 포로기에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혼란과 침통함이반영된 시가 많기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 애가도 수두룩하다.
하나님께 슬픔을 토로하는 시편 44편이 그 좋은 예다. - P191

성경이 인간이 남긴 지문으로 얼룩졌다면 얼룩이 가장 심한 곳은 아마도 시편일 것이다. 영국 베네딕도회 수사인 세바스찬 무어는 이를 "현실의 속살을 보여 주는 거친 단면"이라고표현하기도 했다.  - P192

라 교수는 계속해서 설명한다. "예배에서 애통함이라는 주제가 사라진 결과, 미국 교회는 기억 상실증에걸렸다. 고통과 아픔을 슬퍼해야 할 필요를 잊었고 더 나아가고통과 아픔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다." - P194

심리 치료사와 간병인들은 ‘자리를 내어 준다‘는 것이 누군가 아픔을 겪고 있을 때 곁에 있어 주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판단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저 귀 기울여 주는것이라고 설명한다.  - P195

가장 연약한 순간에 예수님이 시편을 떠올리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두 도적 사이에서 로마 군정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충격에휩싸여 바라보는 가운데 울부짖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태복음 27:46)이 부르짖음은 시편 22편에서 가져온 것으로, 애초에 하나님을 향한 말이었다.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이 이제 인간이 되셔서 다시 부르짖는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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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데카르트 철학의 이면에 똬리를 틀고 앉은 것은 전쟁이었고,
그의 철학에는 전쟁 없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본다.  - P201

그러다가 그는 문득 깨닫는다. 설사 신이라도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는 것을. 무려 1,000년 동안 유지해 온 것들을 일일이 불러내서 비판하는 작업을 하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의심하고 있는 나, 또는 생각하고 있는 나. 다른 것은 다 부정해도 지금자신이 생각한다는 것, 의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며, 다름 아닌 ‘내‘가 있어야 ‘생각의심‘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부정할 수없는 확고부동한 새 토대 두 가지를 발견했다. ‘생각‘과 ‘나‘. 라틴어로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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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o ergo sum" (코기토 에르고 숨, I think, therefore I am)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P203

이는 물론 의심을 위한 의심은 아니다. ‘방법론적 회의‘(methodologi-cal doubt)라고 한다. 의심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요 수단이다. 의심이라는 방법으로 모두가 합의 가능한 객관적이고도 보편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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