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바울의 칭의론을 왜곡했기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교인들에게 믿으면 무조건 구원받는다고 강조고, 이는 행위 없는 믿음을 갖게 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뇌물을 주고는고, 비리를 저지르고, 사기치고, 탈세하며, 불의한 자를 감싸고 약한 자를억압하는 등 이웃에 해코지하고 공동체에 해악을 가져다주면서 자기에익을 추구하여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런 가르침은 없다. 그러므로 이런 기독교인들은
‘참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개독교인들‘이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독사가 아니라 ‘먹사‘다. - P18

그저 교인 수만 늘려 양적 ‘교회 성장‘을 도모한다. 이런 목사들은신자들로 하여금 이 세 가지에 전념하도록 ‘사후 상급 교리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것들만 잘하면 무슨 불의를 저지르든 구원은 확실히 받고, 천국에서 상급까지 받는다고 가르치니, 이것이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가 팔았던면죄부와 무엇이 다른가? - P19

 칭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은혜를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 받는 것인데, 그것은 죄사함 또는 무죄선언을 받음과 함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감, 즉 하나님 나라에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칭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이됨과 동의어다.  - P19

산상수훈의 서두, 이른바 ‘팔복‘ 부분은 예수께서 자신의 하나님 나라복음을 받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받게 되었음을 복된 일이라고 축하하시는 부분이다.
그런데 ‘복‘을 좋아하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명동이나 강남의 금싸라기 ‘땅‘ 등을 주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오해하면서 오로지 ‘복‘에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그 부분에서 정작 우리가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것은여덟 가지로 그려진 하나님 백성의 품성이다. 즉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해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자비로운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을 도모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가 그것이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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