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저것도 여자라고 약효는 언제고 직방이시.하여튼지간에 여자라는 종자는 모지래도 많이 모지래는 짐승이여. 늙으나 젊으나간에 이쁘다고 간지럼 태우기만 허면 그저 만병통치에 만사형통이라닝게. - P123

양치성은 수국이를 떠올렸다. 수국이는 결코 이용 수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양치성은 또 가슴에서 어지러운 바람이 휘도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수국이의 모습은 어김없이 그 어질어질한 바람을 일으키고는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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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비미나키움(오늘날의 코스트라크)이 아니었을까. 서기 101년에로마군은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의 접경 부근에서 도나우강을 건넌다음, 그대로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루마니아로 쳐들어간 것이다.
그보다 1898년 뒤에 이루어진 나토(NATO)군의 유고 폭격에서는 도나우강에 걸려 있는 다리가 대부분 파괴되지만, 트라야누스는 거기서 조금 하류로 내려간 지점에서 도나우강을 건넜을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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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부류에 속하는 야만족에는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주도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통으로 결정한 삼위일체파 기독교도가 많다.
반면에 두번째 부류의 야만족은 모두 아리우스파 기독교도였다. 아마 니케아공의회 이후 ‘이단‘으로 몰려 종교 활동을 방해받고 추방당하는 일이 많았던 아리우스파 성직자들이 제국 바깥에 사는 야만족에게 열심히 포교한 결과일 것이다. - P31

그리고 세번째 부류의 야만족은 게르만계와 비게르만계를 막론하고
‘이교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교도라 해도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의 신들을 믿은 것은 아니다. 게르만계는 게르만족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신들에 대한 신앙을 지켰고, 로마인이 혐오했기 때문에 700년 전에 사라진 ‘인신공희(人身供犧: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종교적 풍습-옮긴이)까지도 북방 야만족 ‘이교도‘ 사이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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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주인공이 강을 건넌다・・・・・・. 주인공들이 강가에 서면 이야기는 갑자기 의미심장해진다. 많은 경우, 이 강은 돌이킬 수 없는 결심과 행동의 상징이 된다. 새로운 세상은 바로 이 돌이킬 수 없는 행동과함께 열리는 일이 자주 있다.
기원전 49년 위대한 정복자인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이름은 ‘시저‘)는 이탈리아 반도 북부를 흐르는 루비콘강 가에 서 있었다. - P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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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로마는 2층으로 되어있다. 비유가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이 도시는 계속 생존해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건물을 지을 때 (수고와 비용을 아끼느라 옛 건물의잔해를 해체하지 않고 흙으로 덮기만 하고 새 건물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로마의 지대는 5~18미터나 높아졌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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