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 나 국회의원 최익승인데 빨리 경찰서장 바꿔." "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바꾸겠습니다, 의원 각하." - P8
. 그 결과 어둠으로 앞을 가로막았던 해방이라는 흉물은 정반대의 광명을 가져다준 보물로 둔갑했다. 일정시대의 사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이란 권력까지 손에 쥐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모두 자신의 빠른 판단력과 기민한 행동력의 결과라고 그는 스스로의 능력을 확신하고 또 확신했다. 그러나 그 확신 뒤에는 또 하나의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의 대상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자신이 그렇게되기까지는 미군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확신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보다 몇 갑절 컸다. - P20
군정이 베풀어준 두 가지 은혜에 대해서 그는 그저 감읍하고 감읍할 따름이었다. 미군은 군정을 실시하자마자 민심을 선동해 대고 있던 공산당을 외면하고 한민당의 손을 잡아주었다. - P20
일본식의 통제방법을 전면 폐지하고 미국식의 ‘자유시장체제를 실시했던 것이다. 그는 재빨리 기부금을 내고 한민당원이 됨으로써 정치적 신분보장을 확보했고, 자유시장체제의 허점을 신속히 파악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의 확대를 꾀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나갔다. 보성군 일대를 정치발판으로 삼아 한민당 조직을 지주 중심으로 짜나가는 한편, 그 조직을 이용해서 무작정쌀을 사들였다. - P21
일정시대부터 사업을 해온 손 큰 사람들은 뒤늦게 자유시장체제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서로 다투어 매점매석에 뛰어들게 되었다. 다만 그는 남들보다 서너 달이 빨랐을 뿐이다. 시장마다 쌀이 동났고, 쌀값은 날이면 날마다 치솟기 시작했다. - P21
쌀값은 9월까지 줄기차게 올라 자유거래를실시할 당시보다 300배가 넘어 있었다. 그건 다른 말이 아니고 자신의 재산이 1년 사이에 300배로 불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 P24
가늘게 째진 고약한 눈을 이상하게 빛내며 얇은 입술에 묘한웃음을 물었던 것이다. 외서댁은 직감적으로 그가 음심을 품는 것임을 느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책상 아래 놓인 두 다리를 꼭 붙였다. 그 남자는 천천히 담배를 빼들며 "솔찬허시" 하고 흘린 듯 말했다. 그 말에 외서댁은 오소소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 P62
남편은 분명회정리와 장양리의공산당 우두머리였고, 두 동네에서 좌익을 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남편을 통해서 물이 든 모양이었다. 며칠사이에 두 동네에서 일곱이나 죽어갔다. 그리고 세 집이 밤중에 몰매질을 당했다. 샘골댁도그중의 하나였다. 줄초상에 몰매질이 이어지는 동네의 분위기는삭막했다. 그 모든 잘못을 자신이 저지른 것만 같아 외서댁은 사립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 P61
미곡수매라는 억지법이 생기면서 입 달린 사람이면 누구나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미군정을 욕했고, 한민당을 욕했고, 경찰들을 욕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그런 욕을 하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여 몽둥이찜질을 해대며 좌익으로 몰아붙였다. 그래도 욕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손이 모자라게 된 경찰에서는 소방관들과 청년단까지 동원했다. - P59
좌익이 되고 잡아 좌익이 되간다? 옳은 소리 혀도 좌익, 바른 소리혀도 좌익, 다 좌익으로 몰아쳐서 꼼지락달싹 못하게 맹그는 판이께, 좌익질도 한분똑바라지게못혀보고 경찰이 맹근 대로 좌익죄 받느니 진짜배기 좌익질이나 한판 해뿔고 보자 허고 남정네덜맘이 서로 통헌 것 아니겠는가. 고런 속사정 다 암스롱도 자네가외서댁 볼 때마동 그리 에맨소리해싸먼 서로 졸 것이 머시가 있능가" - P57
그 양귀신덜이 들이닥침스로 시상 판세가 워찌 돌아가둥가? 코가 석 자나 늘어졌든 지주덜이 새 기운 얻어 되살아나고, 순사질 해묵은 죄 지가 먼첨 알고 뽕빠지게 도망질혔는놈덜이 도로 그 자리 차고앉고, 그 공평하게 일 잘하든 인민위원회럴 공산당 못자리판이라고 몰아때레 사람덜 잡아딜이고, 자네덜도 다 아는 이약 새 날아가는 소리로 일일이 되짚을 것도 없이, - P56
쌀값이 하늘 밑구녕쑤심서 치르고, 시상인심이 쌀 한 홉에살인허게 변허등마 덜컥 생긴 법이 멋이제 일정 때허고 똑같은 공출제 아니드라고? 쌀얼 택도 없이 싼값에 폴아넘겨야 허고, 그 담에 배급 타묵는 배곯는 시상으로 안 돌아갔냐 그것이여. 그 임시에 나돈 말이 머시등가? 양귀신덜이 일본눔덜보담 더 숭악허고, - P56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왔다. 외서댁의 가슴은 더욱 심하게 벌떡거렸다.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그 사람을 일찍 깨워 보낸다고는 했지만 행여 누가 보았을 것만 같아 먼 사람소리에도 가슴은 방망이질이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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