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몰댁은 엉겁결에 어머니를 부르고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들몰을 보자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울컥 솟았던 것이다. 언제나 홍태거리에만 다다르면 어디에선지 어머니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이상스럽게도 그 냄새는 언제나 싱싱했고 언제나 슬픔이었다. 자식을낳아 기르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냄새는 진한 그리움이었다.  - P363

"하이라, 하이라."
무슨 내용이 적힌지도 모르는 종이에 시키는고 풀려나오면서도 들몰댁은 실성한 것처럼 ‘하이라‘를 되풀이하대로 손도장을 찍코 있었다. - P362

"경찰에서 풀려났다고 너희들 죄가 다 끝난 줄 알았다간 천만의말씀이야. 우리가 누군줄알어? 하대치, 바로 그 악질 빨갱이새끼한테 아버지를 잃은 사람들이다. 지금부턴 우리가 내리는 벌을 받아야 된다 그런 말씀이야. 알아들어?" - P384

최익현은 언젠가는 실시하게 될농지개혁에 대비해서 미리미리 농토를 처분해 다른 사업을 벌일 계획을 세워왔었다. 사업이란 뭐니뭐니 해도 높은 수익성의 보장과 튼튼한 안전성의 유지가 절대조건이었다. 오랜 세무공무원생활의 경험으로 보아 그런 조건을 갖춘 것은 양조장뿐이었다.  - P388

최익현은 슬그머니 욕심이동했다. 나날이 인플레는 극심해져가고 물가는 뛰는데 농지를 처분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돈가치가 없는 때일수록 남의 돈을 빌려쓰는 것이 돈을 버는 첩경이었다. 그래서 금융조합장을 만났다.  - P388

세련되게 멋을 부릴 줄 아는 것만큼 그는 이재(理財)에도 능란한 솜씨를 발휘했다. 금융조합이라는 것이 결국은 돈장사이고 보면 그의 이재 솜씨는 멋 부리는 것보다 한 수가 더 앞질러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금융인답게 토지소유욕은 갖지 않았다. 그 대신현찰신봉자였다. 그는 현찰을 가지고 은밀하게 고리대금업을 하고있었다. 돈이라면 마누라도 팔아먹을 놈이라고 소문이 난 윤 부자의 공공연한 고리대금업의 일부 돈줄이 송기과 연결되어 있었고, 처남을 앞세워 순천과 여수 지역에서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 P389

형제가닮은 것이 있다면, 내놓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것과 체면 불구하고여색을 밝히는 것이었다. 형윤영부는 돈을 갚을 수 없게 된 소작인들의 딸을 예사로 범했고, 동생 윤영춘은 공장 직공 중에서 반반한 여자는 두고 보지 못했다.  - P390

남도여관 주인 현준배는 바로 무당월녀네가 살고 있는 그 크고도 멋진 별장을 지은 현 부자의 집안이었다. 거드름 피우기를 좋아하는 그는 대동청년단 단장 직함을 손써가며 따냈고, 헛기침하며유지 행세를 하다가 염상진의 표적이 된 것이다.  - P392

읍내에서제일큰 포목상을 경영해온양병갑은 원래 대를 물린보부상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돈을 모으는 데는 땅벌처럼 악착스러운 사람이었다. 포목장수자 눈금속여 돈벌고, 쌀장수 됫박 속여 돈 번다는 말은 바로 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 P392

농사꾼들은 쌀을 장에 내가면서 ‘팔러 간다고 하지 않고 ‘돈 사러 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돈만 모든 물건을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쌀이 주체가 되어 ‘돈사들이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쌀인 것이다.  - P393

그러나 양병갑은 언제 어느 때나 쌀을 사들였다. 그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윤 부자 찜쪄먹을만큼 높은 이자놀이를 했다. 그는 의심이 많고 배짱이 없어서 많은 돈을 풀지는않았지만 그의 돈을 쓴 사람은 하나같이 담보물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 P394

지구는 다시 안도의 숨을 가늘게 내쉬었다. 나뭇금이 얼마인지 전혀 모르는데 엉뚱한 값을 말했다가 신분이 들통날까봐 불안했던 참이었다. 너무 비싸도 의심받고 너무 싸도 의심을 받을 일이었다. 어쨌든 하대치는 눈썹 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듯 슬슬 잘도 넘어가고 있었다. - P4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