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 ‘헙!‘ 하는 거친 소리는 복면들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는데, 상대의 빠른 동작과 예리한 칼날의 번뜩임에 적이 당황한 듯했다. 그에 비하면 동궁빈은 ‘얍!‘ 또는 ‘얍!‘으로 응수했으나, 그 소리는 거의 입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는 잘 새어나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 P324

동궁빈은 쓰러진 사내의 목을 향해 칼끝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그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사로잡으려고 일부러 급소를 피해 상처만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내는 자신의 칼로 목을 그어 자결해 버렸다. - P324

석정은 제단 앞에 놓인 나무로 된 불전함을 치웠다. 그리고제단 밑에 마련된 빈 공간을 열어 길례가 안고 있던 왕손 아기씨를 받아 안았다. 밖에서 일대 활극이 벌어지는 소란의 와중에도 아기는 쌔근쌔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더위에 고생했다."
동궁빈은 석정으로부터 아기를 받아 안으며, 제단 밑에서 말기어 나오는 길례를 바라보았다. - P325

대왕은 이미 왕태제이련을 통하여 국상이 동궁전의 전력을보강하기 위해 정전을 지키고 있던 태학의 유생들을 보냈다는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그 바람에 경비가 허술했던 정전에서국상이 괴한들에게 부상을 당했다는 걸 대왕은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 P328

그들을 강압적으로 다루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점에 대해 을두미는 재고에 재고를 거듭했다. 그렇게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연나부가 적대시하는 그 자신이먼저 국상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순서라고 판단했다.
- P329

여러 왕대에 걸쳐왕후를 배출하면서 세력을 탄탄하게 다져온 연나부였다. 그러니 만큼 강하게 밀어붙이면 반발 또한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명림수사건 때문에 처음부터 강하게연나부를 몰아붙였던을두미는,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유화정책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물러나고, 파격적으로 연나부에 국상의 자리를 다시 내주는 것이 좋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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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 전체에서 통치자들은 국가 혹은 도시의 신 숭배를 장려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신전을 세우고 제물들을 포함하여 신전 유지에 필요한 돈을 댔다. 열왕기 전체에서 우리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읽는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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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예언자 이사야는 아사랴(웃시야) 시대부터 40년간 하나님을위해 사역했다(사 6:1). 앗수르가 세계적 강대국이긴 했지만 이사야가 왕들에게 조언하는 동안에는 유다를 점령할 수 없었다. 이사야는 아사랴,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가 통치하는 기간에예언 사역을 했다. 아하스는 이사야를 무시했지만 히스기야는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그 예언들에 대해서는 이사야서를 보라).
- P671

19:15-19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왔지만 하나님을 당연시하거나 건방지게 다가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인정하고 유다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고백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우리에게 훌륭한 본이 된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분이 누구시며 무엇을 하실 수있는지 경의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 P671

19:15 그룹은 강력한 천상의 존재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면서 건축자들에게 상징적인 수호자 역할을 하도록 감람나무로 만들어 금을 입힌 4.5미터 높이의 그룹 둘을 언약궤의 양쪽에 두게 했다(왕상 6:23-28).
- P671

19:21-34 하나님은 산헤립의 오만함을 규탄하시며 그의 조롱(18:19-25)에 답하셨다. 산헤립은 자신의 나라가 자신의 노력과힘으로 성장했다고 믿었다. 사실상 그가 성공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이 허용하시고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인데도 말이다. 우리의 업적을 우리 스스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신다.
- P671

19:28 앗수르인들은 포로를 잔인하게 다루었다. 그들은 여흥으로포로의 눈을 멀게 하거나 신체를 절단했고, 살갗을 벗기며 죽을 때까지 고문했다. 포로를 노예로 삼고 싶을 때는 그 사람의 코에 갈고리를 꿰곤 했다. 하나님은 앗수르가 다른 민족에게 행한 그대로대갚음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P671

히스기야는 당면한 문제에 대응하는 능력은 타고났지만, 미래의 문제까지 내다보지는 못한 듯하다. 자신의 전면적인 개혁이 그 효력을 유지할 수 있는 조치는 거의 취하지 않았다. 자신의 노력들이 꽤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교만해진 히스기야는 어리석게도 바벨론의 사자들에게 보물 창고를 드러냈고, 유다는 바벨론의 ‘정복 대상국‘이 되어 버렸다. 이사야가 그의 행동이 어리석었음을 알리자 지독히도 선견지명 없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 P672

자신이 죽을 때까지 나쁜 결과가 연기된 것에 감사했으니 말이다. 히스기야의 이런 업적과 약점은 그 뒤를 이은 세 왕 므낫세, 아몬, 요시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제는 오늘의 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고 내일까지 이어진다. 우리에게는 본받을 교훈이 있고 실수는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성공은 부분적으로) 지금 우리가 그 성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또 그것으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는지로 평가될 것임을 기억하라. - P672

20:5-6 유다 역사의 100여 년 동안(주전 732-640년) 히스기야는 유일하게 신실한 왕이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가! 히스기야의 믿음과 기도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병을 고쳐 주셨고 앗수르로부터 그의 성을 구해 주셨다. 당신과 함께하는신자들이 소수에 불과하다 해도 그 믿음 역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진실한 믿음과 기도가 홀로 참되신 하나님께 향해 있다면 그분은 어떤 상황이든 변화시킬 수 있다. 이지 - P675

20:12-19 히스기야는 선하고 신실한 왕이었다. 그러나 이사야가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냐고 묻자 그는 "자기보물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다"고 대답했다. 역대하32:24-31의 해설에 따르면 히스기야의 번영, 성공, 발병과 회복이그를 교만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는 모든 복을 하나님 덕분이라고 여기는 대신 외국인들에게 자랑하고자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복을 남들에게 자랑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승리의 증거는금세 자만과 자축으로 악화될 수 있다. - P675

21:7 아세라는 가나안의 모신이자 바알의 아내였다. 아세라의 혈상은 나무로 만들어 그녀를 위한 이교 신전에 기둥처럼 심었다. 출* 애굽기 34:13과 신명기 12:3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어떤 식으로든 아세라 숭배와 관련되는 것이 명확하게 금지되었다.  - P676

22:8 이 책은 모세오경 전체이거나 아니면 신명기였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악한 왕들의 통치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기록이소실되었다. 26살이 되어 전국적인 종교 개혁을 원했던 요시야는하나님의 말씀이 발견되었을 때, 온 나라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도록 과감한 변화를 이루어야 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이너무나도 가까이에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삶을위해 얼마나 변화되어야 하는가?
- P677

22:11 요시야는 율법을 듣고는 절망에 빠져 자기 옷을 찢고 즉시개혁에 착수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단 한 번 읽자마자 유다백성을 회개로 이끌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요시야의 죽음 이후까지 심판을 미루겠다고 약속하셨다(22:18-20).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성경을 소유하고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바와 성경의 가르침을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요시야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삶을 개혁하고 그 뜻에 맞춰지도록 즉시 조취를 취해야 한다.
- P677

22:14 훌다는 미리암(출 15:20)과 드보라(삿 4:4)처럼 여예언자였다. 하나님은 부하든 가난하든, 남자든 여자든, 왕이든 종이든그분의 뜻을 수행하도록 종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신다(욜 2:28-30). 훌다는 하나님을 대변한 사람으로서 분명 동시대 백성에게깊은 존경을 받았다. - P678

22:19 요시야는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깨달았을 때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서 울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와 그 민족을긍휼히 여기셨다. 요시야는 회개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당시 관습을 따랐다. 우리는 죄를 슬퍼하며 옷을 찢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울고 금식하며 (우리 죄가 다른 사람과 연루되어 있다면) 보상해 주고 사과하는 것으로 회개의 진실성을 보여 줄 수 있다. 회개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처음에 죄악된 행동을 낳았던 태도와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 P678

23:4-8 요시야는 유다 백성의 끔찍한 신앙 상태를 깨닫고 조취를취했다. 옳은 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믿음이 요구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며 반응해야 한다. 이는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이라고 썼을 때 강조했던 바다(약 2:20).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저 순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P678

23:6 이 아세라 목상은 악한 왕 므낫세가 하나님의 성전에 세운것이었다(21:7). 아세라는 바다의 여신이자 바알의 아내로 빈번히명시되는 가나안의 최고 여신이었다. 아세라 숭배는 섹스와 전쟁을 찬미했고 남창 행위가 수반되었다. - P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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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사야에게 말했다. "히스기야 왕의 메시지입니다.
‘오늘은 참담한 날, 비참한 날, 심판의 날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출산할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신성모독 발언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의 주인인 앗시리아 왕이 그를 보내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께서 그런 말을 한 그를 그냥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은 남은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 P466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앗시리아 왕의 아침쟁이 심부름꾼들에게서 들은 그 무엄한 신성모독 발언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의 자신감을 앗아 갈 것이다. 그는 한 소문을 듣고 겁에질려서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돌아간 뒤에는 내가 반드시 그를 죽게 할 것이다." - P467

 히스기야가 사신에게서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서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참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위엄으로 그룹 보좌에 앉으신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은 세상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한분 하나님이시며하늘을 지으시고땅을 지은 분이십니다. - P467

17하나님, 과연 그의 말대로 앗시리아 왕들은 100여러 땅과 나라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18 그들은 나무와 돌을 가지고 손으로 만든 그곳 신들로신도 아닌 것들로, 큰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19 그러나 하나님 우리 하나님, 이제건방진 앗시리아의 무력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주님만이 하나님 오직 한분 하나님이심을세상 모든 나라로 알게 하십시오. - P468

25 이 모든 일 뒤에 내가 있다는 생각을너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느냐?
아주 먼 옛날 내가 계획을 세웠고이제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내가 너를 심판 날의 무기로 사용하여교만한 성읍들을 잔해 더미로 만들었고,
26 그곳 백성을 낙담하게 하고절망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잡초처럼 쓸모없고 풀처럼 약하며바람에 날리는 거처럼 힘을 잃었다. - P469

30유다 가문의 남은 자들이 다시금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31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살아남은 자들이 시온 산에서 올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이이 일을 이룰 것이다." 이용 - P470

32 요컨대, 하나님께서 앗시리아 왕에 대해 하신 말씀은 이러합니다
그는 이 성에 들어오지 못하고이리로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할 것이다.
방패를 휘두르지 못하고포위 공격을 시작조차 못할 것이다.
33 그는 자기가 왔던 길,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성에는 들어오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34 내가 나를 위해, 다윗을 위해 - P470

35 그리하여 그날 밤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앗시리아 사람 185,000명을 죽였다. 이튿날 아침에 예루살렘 백성이 일어나 보니, 온 진이주검 천지였다!
- P471

36-37 앗시리아 왕 산헤립은 거기서 재빨리 빠져나와 곧장 본국의 니느웨로 가서 그곳에 머물렀다. 하루는 그가 자기의 신 니스의 신전에서 예배하고 있는데,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쳤다.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 P471

2-3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서 고개를 돌려 하나님을 향해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해 주십시오!
제가 주님 앞에서 정직했고제 마음이 한결같이 진실했습니다.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주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히스기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가 슬피 울었다. - P471

 ‘히스기야야 하나님의 말씀이다!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에게서 온 말씀이다. 내가 네 기도를 듣고 네 눈물을 보았다. 내가 너를낫게 할 것이다. 사흘 후에는 네가 네 발로 걸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것이다. 내가 방금 네 수명에 십오 년을 더했다. 나를 위해, 내종 다윗을 위해 내가 너를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이 성을내 방패로 보호할 것이다." - P472

*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말했다. "이것이 무화과 반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낫게 하셔서, 사흘 후에는 내 발로 걸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게 된다는 확실한 표징이 무엇입니까?" - P472

이사야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행하시리라는 표징은이것입니다.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도 앞으로 가면 좋겠습니까, 십도 뒤로 가면 좋겠습니까? 선택하십시오."
- P472

히스기야가 말했다.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 도 앞으로 가는 것은쉬울 테니, 십도 뒤로 가게 해주십시오."
"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아하스의 해시계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났다.  - P472

12-13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왕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빌론 왕 발라단의 아들 므로닥발라단이 쾌유를 비는 편지와 선물을히스기야에게 보내왔다. 히스기야는 기뻐서 사신들에게 은과 금과향료와 향기로운 기름과 무기 등 자신의 값진 물건이 보관되어 있는곳을 직접 안내하며 구경시켜 주었다. 왕궁과 나라 안의 모든 것을빠짐없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 P472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히스기야가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왕궁 일주를 시켜 주었습니다."
- P473

16-18 그러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말했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네 모든 소유물과 네 조상들이 네게물려 준 모든 것이, 받침접시 딸린 마지막 잔 하나까지 이곳에서 몽땅 치워질 날이 올 것이다. 모두 약탈당해 바빌론으로 옮겨질 것이다. 나 하나님의 말이다! 그뿐 아니라 네 아들들, 네가 낳은 아들들의 자손이 결국에는 바빌론 왕궁의 내시가 될 것이다."
- P473

19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것은 분명 지당한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내 평생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 내가 사는 동안에는 평안과 안전을 누릴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 P473

므낫세는 왕이 되었을 때 열두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헵시바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나쁜 왕, 악한 왕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이방 민족들을 쫓아내시던 때에, 그 땅에서 사라졌던 모든 도덕적 부패와 영적 타락을 다시 들여놓기 시작했다.  - P473

아버지 히스기야가 허물어 버린 모든 음란한 종교 산당들을 다시 지었고,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했던 것과 같이 음란한 신바알과아세라를 위해 제단과 남근 목상을 세웠다.  - P474

그는 또 일월성신을 숭배하여 별자리의 지시에 따랐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내가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두겠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예배하도록 드려진 예루살렘 성전 안에까지 이러한 이방 제단들을 세웠다. 그는 일월성신을 위한 산당들을 지어 하나님의 성전 양쪽 안뜰에 두었다.
- P474

자기 아들을 희생 제물로 불살라 바쳤고, 악한 마술과 점술을 행했다. 그는 지하의 혼백을 불러내 궁금한 것들을 묻기도 했다. 그에게악이 넘쳐났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으로 일관된 생애였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 - P474

7-8 결정적으로 그는 음란한 여신 아세라 목상을 하나님의 성전 안에두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주신 다음의 말씀을 명백히, 보란 듯이 범한 일이었다.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택한 이 성전과 이 예루살렘 성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겠다.
내가 다시는 내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준이 땅을 떠나서 방황하지 않게 할 것이다.  - P474

그러나 조건이 있다. 그들이내 종 모세가 전해 준 지침에 따라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지켜야한다."
" 그러나 백성은 이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므낫세는 그들을 그 길에서 벗어나게 했고, 일찍이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 이방 민족들의 악행을 넘어서는 악한 행위로 그들을 이끌었다.
- P474

10-12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분의 종 예언자들을 통해말씀을 보내셨다. "유다 왕 므낫세가 이런 극악무도한 죄를 짓고 그앞에 있던 아모리 사람의 죄를 넘어서는 더 큰 악을 범하여 유다를 더러운 우상들이 판치는 죄인의 나라로 전락시켰으니, 이제 나 하나님이 너희를 심판하겠다.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유다에큰 재앙을 내릴 것이다. 사람들이 듣고도 믿어지지 않아 고개를 저으며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처참한 재앙이 될 것이다. - P474

내가 예루살렘을 깨끗이 씻어 버릴 것이다. 내 유산으로 남은그들을 없애고, 그 원수들의 손에 떨구어 버릴 것이다. 원수들이 닥치는 대로 그들을 약탈할 것이다.  - P475

그들의 조상이 이집트를 떠나던날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내게 괴로움만 주었다. 그들이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였으니,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악을 참지 않을 것이다."
- P475

므낫세에 대한 최종 평가는 그가 무차별적인 살인자라는 것이었다. 그는 백성을 죄로 끌어들였을 뿐 아니라, 무죄한 자들의 피로 예루살렘을 물들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유다를 죄인의 나라로 만들었다. - P475

19-22 아몬은 왕이 되었을 때 스물두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이년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바 출신 하루스의 딸 레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그의 아버지 므낫세처럼 악하게 살았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아버지가 섬겼던 더러운 우상들을 섬기고 숭배했다. 그는 조상의 하나님을 완전히 버렸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지 않았다. - P475

결국 아몬의 신하들이 반역하여 왕궁에서 그를 암살했다. 그러나 백성이 아몬 왕에게 반역한 세력을 죽이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왕으로 삼았다. - P475

1-2 요시야는 왕이 되었을 때 여덟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22 렘에서 삼십일 년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보스가출신 아다야의 딸 여디다다.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았다. 그의 조상 다윗이 밝히 보여준 길을 똑바로 따라갔고,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 P476

11-13왕은 그 책, 곧 하나님의 계시에 기록된 내용을 듣고, 크게 놀라며 자기 옷을 찢었다. 왕은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 미가야의 아들 악볼, 서기관 사반, 왕의 개인 보좌관 아사야를 불러 그들 모두에게 명령했다. "가서 나와 이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시오! 방금 발견한 이 책에 기록된 내용에 우리가 어떻게반응해야 하는지 알아보시오!  - P477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를 향해 불같이타오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우리 조상은 이 책에 기록된 말씀에조금도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침을 하나도 따르지 않았소."  - P477

제사장 힐기야와 아히감, 악볼, 사반, 아사야는 곧바로 여예언자 훌다를 찾아갔다. 훌다는 하스의 손자요 디과의 아들이요 왕궁 예복을 맡은 살룸의 아내로,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살고 있었다.
그 다섯 사람이 찾아가 그녀의 의견을 구했다.  - P477

훌다는 그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를 이곳으로 보낸 사람에게 전하여라. "내가 이곳과 이 백성에게 심판의 재앙을 내릴 것이다. 유다 왕이 읽은 그 책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가까이했고, 신상을 만들고 팔아 나를 더없이 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내진노가 이곳을 향해 뜨겁게 타오르고 있으니, 아무도 그 불을 끌 수없을 것이다. ‘ - P477

또 유다 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으니 왕께 전하십시오.
왕이 책에서 읽은 내용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곳과이 백성에게 심판의 재앙을 내리겠다고 한 말을 네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회개하며, 크게 놀라 옷을 찢고 내 앞에서 울었으니, 내가 너를 진심으로 대하겠다.  -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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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의 반대로 정승의 임명을 철회한 것은 연산군 초반 정치 세력의 권력관계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 P114

며칠 뒤 장령 이수공은 좀더 직설적인 표현으로 공격을 재개했다. "삼공은 음양을 섭리하고 그 아래인 찬성은 교화를 넓혀야 하는데, 지금은 모두 사람답지 않기때문에 재변이 나타난 것입니다.
(8.1.25 정묘)"61"사람답지 않다"는 신랄한 표현이 담긴 이 상소의 여파는.매우 컸다.  - P114

직접 지목된 삼정승과 좌·우찬성 이극돈. 성준은 물론 좌참찬 유지, 예판박안성병판 노공필盧公弼, 형판 박건, 공판 신준호판 이세좌 등 의정부와 육조의 거의 모든 대신들이 장령 한 사람의 탄핵으로 즉각 사직한 것이었다(3.1.25 정묘.26무진 · 27기사), - P114

능력부족과 남용 등의 다양한 혐의로 탄핵되었다. 이 상소에 대해 연산군은 마치 털을 불어가며 흠집을 찾는 것과 같으며 국왕을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진노했지만, 지목된 대신들은 이번에도 즉각 사직했다(3.2.14병술~16무자 · 19신료), - P116

가장 중요한 권력의 하나인 인사권을 계속 문제 삼는 삼사의 언론에국왕은 강경하게 맞섰다. 그는 "대간의 말 때문에 육경을 모두 바꾸다면 권세가 대간에 있는 것"이며 "그렇다면 그대들을 삼공에 제수해야하느냐"고 반문하면서 "너희는 자질구레한 문서 업무나 처리하는 관리라고 질타했다(3.2.19신묘). - P116

영의정 노사신은 본관이 경기도 교하로 명망 있는 가문의 추세였다. 그의 조부는 세종 때 우의정을 역임한 노한이고, 아버지는 역시 세종 때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노물재였다영의정이라는 관직
이 보여주듯이, 노사신의 이력은 이런 훌륭한 선조들을 능가했다.  - P118

그는단종 1년(1453) 급제한 뒤 집현전 박사를 거쳐 세조대에는 부수찬·용교 · 지평 · 도승지 · 직제학 · 호조판서 등 삼사와 승정원·육조의 요직을 섭렵했으며, 성종대에는 좌·우찬성을 역임하고 정승좌의정의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공신에도 두 번이나 책봉되었다(익대3등 · 좌리2등).
연산군이 즉위했을 때 그는 성종 때의 관직을 그대로 유지해 좌의정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 P118

그는 삼사를 누구보다도 직설적으로 비판했고, 당연히 삼사의 격렬하고 집요한 탄핵의 대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그와 삼사의 발언과 행동은 무오사화라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원인과 본질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이므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 P119

결국 연산군은 대간을 하옥하라고 명령했는데,
를노사신은 그런 지시를 위엄 있는 결단칭송한 것이었다.
요즘 대간은 작은 일이라도 이기는 데 힘써 몇 달 동안 주상과 논쟁을 벌이니, 자신들이 이긴 뒤라야 그만둘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그 폐단은 점차주상의 위엄이 떨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므로 신은 그것을 항상 근심했지만 폐단을 고칠 방법이 없었습니다. 최근 대간이 왕명을 거역했으니하옥하라는 주상의 하교를 받고 신은 마음속으로 "이것은 참으로 영주의위엄 있는 결단"이라고 생각해 기뻐 경하할 겨를도 부족했는데,  - P122

삼사는 당연히 노사신을 강력하게 탄핵했다. 노사신은 즉각 사직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좀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피력했다.
생각건대 선유께서는 "정권은 하루라도 조정에 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조정에 있지 않으면 대각에 있고, 대각에 있지 않으면 궁위宮에 있게된다. 정권이 조정에 있으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대간에 있으면 어지러워지며, 궁위에 있으면 멸망하게 된다. 국가의 치란과 흥망은 모두 여기서 말미암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P123

대간이 말하면 홍문관이 뒤를 잇고, 홍문관이 말하면 태학생이 뒤를 이어서로 화답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흠 없는 데서 흠을 찾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말을 만들어내어 남이 혹시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면 그때마다논박해 갖은 수단으로 비판하니 공경대부가 그들의 입을 두려워해 감히가부의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융성한 시대의 아름다운 일이며 조정의 큰 체통이라고 하겠습니까. - P124

이런 습속은 예전에도 없었고 우리 조정에서도 없었습니다. 이런 습속이그치지 않아 권력이 대각으로 돌아가 대신들이 입을 다물게 된다면 조정의일이 어찌 한심스러워지지 않겠습니까. 노신은 최근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를까 항상 걱정해 "이 폐단은 신하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현명한 군주가 뜻을 둔 뒤에라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1.7.19경자)  - P124

그러니까 노사신은 대간을 하옥시키라는 왕명을 "영주의 위엄 있는 결단"이라고 상찬하는 강경한 발언을 천명한 지 다섯 달 만에 거의 모든공직에서 물러난 것이었다.
자신들을 정면으로 비판한 최고의 대신을 끈질긴 탄핵 끝에 체직시킨 이 사건은 연산군 초반의 정치적 갈등에서 삼사가 거둔 중요한 승리였다. 이로써 정치적 정립 구도에서 삼사의 영향력은 더욱 팽창했다. 반면 국왕과 대신의 입지는 그만큼 축소되었지만 삼사에 대한 위구심또한 그만큼 더욱 커졌다. 이런 정황은 무오사화의 원인과 본질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 P126

사안은 앞서 서술한 폐비의 추숭 문제였다. 이번에도 노사신은 생모의 추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연산군의 의도에 찬성했다. 삼사는두 달 넘게 노사신의 국문을 요청했으며, 거부되자 사직했다(2.6.10을유~19갑오 · 29갑진: 2.7.1병오~21병인; 2.8.3정축·5기묘. 8임오. 19계사 · 20갑오. 22병신) 노사신도 사직 상소를 올렸지만(2.8.25기), 이 문제는 어느 한쪽의 의견이관철되지 않은 채 일단락되었다. - P127

그 뒤 무오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인사와 관련된 문제가 몇 차례불거졌다. 우선 아들 노공필과의 상피 문제였다.  - P127

연산군 2년 후반 노사신은 사복시와 군기시 제조를 겸직했는데(이런 사실도 노사신의 위상과그에 대한 국왕의 신뢰를 보여준다), 노공필이 병조판서로 근무하고 있었다. 삼사는 부자가 서로 관련 있는 관서에 재직하고 있으므로 어느 한 사람이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타당성이 일부 인정되어 노사신은군기시 제조에서 물러나게 되었다(2.11.20계해 · 23병인 · 24 정묘.26기사). 삼사는 사복시 제조에서도 퇴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연산군은 선례가 없다면서 윤허하지 않았다(2.11.27 경오 28 신미: 2.12.8 신사. 9임오. 11갑신 ㆍ12월유). - P127

이처럼 연산군이 즉위한 직후부터 거의 4년 동안 노사신과 삼사는여러 사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한 것이었다. 그 결과 서로의 감정이 매우악화된 것은 당연했다. 삼사는 국왕이 자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은 모두 노사신이 그렇게 이끈 결과라고 지목했다(3.7.18정사),  - P128

삼사의 이런 판단은 극단적인 증오로 격화되었다. 그것을 가장 섬뜩하게보여주는 사례는 연산군 3년 7월 21일(경신) 정언조순舜(1467~1529)의 발언일 것이다. 그는 "노사신의 고기를 먹고 싶다고말했다. - P128

30세의 정언(정품)이 70세의 전직 영의정에게 투사한 이 표현은 그런 의지의 진실성이나 수사의 적절성을 떠나 대신과 삼사의 관계가 거의 치유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연산군 4년 7월의 무오사화를 꼭 1년 남겨둔 시점에서 대신과 삼사의 관계가 이런 상태였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매우 중요하다.
- P128

노사신과 관련해서 추가로 언급하고 싶은 사항이 두 가지 있다. 모두 삼사의 기능에 관련된 것인데, 우선 지금까지 노사신은 삼사의 월권적 언론에 대해서는 강력히 비판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정당한 활동을 말살하거나 탄압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삼사의정당한 활동과 월권적 언론의 경계 자체가 모호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 P129

직제학 표연말이 인정했듯이 노사신은 성종이 대간을 처벌하라고명령하면 항상 힘써 그들을 구원해왔다(1.7.20신축). 또한 이후 무오사화와관련해서 좀더 자세하게 서술하겠지만, 그는 그 사건을 기화로 ‘청의하는 선비‘ 들을 붕당으로 몰아 완전히 제압하려던 일부 대신들의 의도에 반대해 그들을 구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4.9.6신축). - P129

즉 노사신은 성종 때만 해도 삼사의 언론을 옹호하는 입장에 섰으며, 무오사화가 김종직·김일손 일파를 넘어 삼사와 동일시될 수 있는 ‘청의하는 선비‘ 들을 숙청하려는 사건으로 번지자 그런 흐름을 가장 앞장서서 방어한 대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원칙에 입각한 균형적 태도를 지녔던 그가 연산군 초반 삼사와 전면적으로 충돌한 데는 삼사의 언론권이 과도하게 팽창함으로써 정치적 정립 구도를 훼손한 상황에 좀더많은 원인이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P129

노사신을 둘러싼 논쟁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례는 이런 판단을 보강해주는 흥미로운 논거로 생각된다. 삼사가 노사신을 격렬히 탄핵하던재위 1년 8월 9일(기미) 연산군은 대간을 전면적으로 교체했다. 이 인사이동의 의도는 자명했다. 즉 대간을 대폭 교체해 노사신을 탄핵하는 국면을 바꿔보려는 것이었다.  - P130

여기서 주목할 사항은 좌찬성 한치형과 특진관 이집을 각각 겸대사헌과 겸대사간이라는 이례적인 관직에 제수한 것이다. 이 조처의 목적 또한 명확했다. 국왕은 그동안 자신과 노사신에게 협조적이었던 대신들을 대간의 수장에 임명함으로써 대간을 통제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 P130

이 사례는 해당 관직의 고유한 임무가 각 관원의 개별적인 성향이나 배경보다 일차적인 규정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중요하고 흥미로운 논거라고 생각한다.
- P131

요컨대 노사신과 삼사의 충돌은 연산군대 초반 치열하게 진행된 대신과 삼사의 대립에서 가장 첨예한 국면을 형성했다. 대신을 대표하는영의정으로서 노사신은 삼사를 하옥하라는 국왕의 지시를 "영주의 위엄있는 결단"이라고 칭송했으며, 삼사가 서로 연합해 대신의 사소한 잘못을 집요하게 탄핵하는 행위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와 국왕은 권력이 대간으로 귀속되는 현상이 나라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가장 커다란 폐단이라는 데 공감했다. - P131

더욱 심각하고 본질적이었다. 그는 삼사의 언론활동을 당시의 가장 커다란 폐단인 ‘상‘으로 규정하면서 그 풍조의 뿌리는 성종대에서 뻗어나왔다고 진단했으며, 일부 대신들의 동의와 협력을 얻어 그 현상을 일소하려고 시도했다. 그런 첫 번째 사건은 바로 무오사화였다.  - P131

성종대의 정치적 변화와 발전은 조선전기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 핵심적인 사항은 삼사의 위상이 크게 제고됨으로써 국왕·대신 · 삼사의 정치적 정립 구도가 처음으로 본격적인 구동을 시작했다는것이었다.
- P132

그러나 연산군은 바로 이런 현상을 심각한 폐단이자 퇴보로 판단했다. 그런 판단은 그의 지상 목표였던 왕권의 지고한 권위와 자유로운 행사에 삼사가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 P132

왕권의 상징적인 권위와 실제적인 권력을 최대화시키는 것은 모든 국왕들의 공통된 욕망이기도 했지만, 그런 목표에 대한 연산군의 생각과 행동은 특별히 근본적이고 과격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성종대에 증폭된 삼사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시키는 데 매진한 것은 매우논리적인 결과였다. - P132

물론 신하들도 성종을 훌륭한 군주로 칭송했다. 특히 삼사에게 성종은 이상에 가까운 국왕이었고, 그의 시정은 후대의 임금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중요한 모범이었다. 삼사는 연산군에게 모든 일에서 성종을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누차 간언했다(1.7.23갑진; 2.3.4임오; 3.5.23갑자).  - P133

그 핵심적 덕목은, 예상할 수 있듯이, 너그러운 납간이었다. 우선 성종 자신부터 그런 태도를 적극적으로 밝혔다. 삼사의 회고에 따르면 성종은 "나무가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임금이 간언을 따르면 성스러워진다"는 상서』의 구절을 읽고 커다란 깨달음과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임금의 도리 중에서 이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 내가 즉위한 이래 간언을 이유로 죄준 신하는 한 명도 없었으니, 그대들은 내 뜻에거슬릴 것을 염려하지 말고 잘못되는 일이 있거든 모두 말해야 한다 - P133

대간이 당시로서는 심야인 밤 2고 (21~23시)까지 간쟁하자 연산군은 수리를 들고 대비들께 문안을 올리는 데 지장이 있으니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3.9.11기유: 3.10.13신사)7 - P136

또한 그들은, 본원적인 임무상 자연스러운 측면일 수도 있지만, 절충안에 좀처럼 동의하지 않고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시도했으며 거부될경우 끈질기게 사직했다. 사직은 60~70번에서 100번까지 지속되기도했다(3.6.1신미 · 12혐오), 일부 신하들은 그것을 예전에 없던 현상이라고 지적했으며 (2.2.25유), 연산군도 그 의견에 동의하면서 삼사의 그런 행태는국왕에게 역정을 내는 것 같다고 불만스러워했다(3.6.1신미·18무자). - P136

연산군은 그런 생각을 즉위 직후부터 명확히 밝혔다. 삼사가 자신의82인사행정에 반대하자 그는 조정의 권한이 모두 삼사로 귀속되었다고 비관했으며(1.3.10계사: 1.5.14 병신: 1.6.29 경진; 1.8.9기미), 자신이 즉위한 이래 대간이 늘 대궐에서 논쟁하니 백성들은 사왕에게 큰 과오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개탄했다(1.12.4계축).  - P138

연산군은 삼사가 자신을 어린 국왕으로 여겨 무시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았다(1.8.2임자 · 9기마2.2.3신해: 2.3.2경전), 요컨대 삼사에 대한 연산군의 문제의식은 정무적政務的판단과 감정적 혐오가 혼재된 것이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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