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순절과 관련된 책들을 읽기는 하지만, 그 책들중 상당수는 예수님의 십자가 여정을 살펴보다가 부활 직전에멈춥니다. 아니면 기껏해야 마지막 장에서 부활을 언급하는정도지요. 저는 오랫동안 부활절을 거쳐 승천일(Ascension Day)과성령 강림절(Pentecost)에 이르는 여정으로 데려다 줄 책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부활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그리고 부활과 내 삶의 방식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책 말이지요. - P9

그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삶에 대해서, 특히 부활에 대해서 여러분만의 언어를 찾도록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 P13

실제로 종말에 대한 믿음을 전제해야 비로소 부활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종말을 전제하지 않는다면신약성경에 담긴 신학의 상당 부분이 그 논리를 잃어버리게됩니다. 여러분이 가진 생각이 어떠하든지간에, 우리가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세계는 분명종말에 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이해한 부활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들의관점을 따라야 합니다. - P14

부활을 이해하고자 할 때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1세기 유대인 청중들에게 부활은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부활에 관해 생각하는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더 깊이 생각하는 일을 돕기 위해 저는 부활에 관해서 깊이 살펴 보았습니다. 즉, 부활이 과거에 어떤 의미였고 지금은 어떤의미인지에 관해서, 그리고 부활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해서 깊이 묵상하며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 묵상이 유용한 렌즈라고 느끼고 각각의성경 본문들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낄 것입니다. 반대로제 묵상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신학적이라고 느낄 분들도 있을수 있습니다.  - P17

 봄꽃들이 새 생명을 얻는 것과 예수님의 부활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은, 그 꽃들의 새생명은 순환의 과정속에 이루어지고 결국엔 죽음과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새 생명으로 부활하셨고 다시는 죽음을 겪지 않으십니다. - P23

왜냐하면 나사로는 마치 봄꽃들과 같이 결국 다시 죽음을 맞았고 또 다른 부활을 기다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시 죽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죽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와 같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른"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나사로에게 일어난 일은부활(resurrection, 영원한 새 생명으로 살아남)이 아니라 복원(revivification,
갱신된 옛 생명으로 살아남)이었습니다. 이것은 까다로운 구분이지만그만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그이상의 무언가"가 부활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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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욥기 전에 미리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고, 인간의 악과 고난을 생각하기보다는 우주의 무량대수의 별과 무량대수의 천군천사를 부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악과 고난을 인간의 관심사로만 축소시켜 생각하지 말고 우주 통치자이신 하나님 관점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악의 문제를 인간의 윤리적 문제로보지 말고, 지구적 사건으로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우주통치 과정이요그 우주통치의 일부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봐야 한다.  - P77

욥기는 창세기를 배경으로 쓰여졌지만, 창세기에서처럼 창조주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순종하는 지구보다 그 이전의 야생적 지구와 우주를 보여준다. 욥기는 우주적인 시좌를 가지고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무량대수만큼의 별들을 지휘, 통제하시는 그 하나님이 태양계 중에서도 지구적 삶을 유난히 주목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 P77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는 자기충족적인 하나님이시다. 자기충족적인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해야 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통해서도 자신을 만족시키셔야 한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에스스로 자신이 좋은 하나님이 맞는지 계속 검열하신다.  - P78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것을 보고 음미하시는 분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것을 보고 일곱 번이나 "좋다"라고 말씀하시며,
자기평가를 하신다. 왜 하나님은 자기평가적이실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칭찬받는 것이 하나님에게 대체 무엇이 좋을까? 하나님은 누구에게 칭찬받으면 스스로 자존감이 높아지는 그런 의존적인 하나님이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찬양을 받고 감사하다는 말을들으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해명할 수 없는 신비다. - P78

하나님은 이미 충분히 높아진 분이지만 또한 겸손하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기의식적이면서도 그만큼 타자의식적이기도 하시다. 이런 이유로 홀로 완전하신 하나님이 또한 사람의 찬양, 인간의믿음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교제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자기결핍적 존재가 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찬양과 믿음으로 기분 좋아지실 여지를 남겨 두셨다는 것이다.  - P78

하나님은 한 사람의 죄인이 회개하면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진다고 하실만큼 인간의 회개를 엄청나게 기뻐하신다. 이런 하나님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아퀴나스가 말하는 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우발적인 행동을 통해서 놀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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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레몬에게 보낸 편지의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뒤에서 좀 더 살펴보겠지만,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가 성공적으로 경전이 되기는 했어도 이 편지가 처음부터 경전으로 간주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 P107

다른 한편 공관 복음과는 달리요한의 복음서는 경전을 자처하는 듯합니다. 이는 창세기 1장 1절을 상기함으로써 자신이 곧 신약의 창세기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첫머리("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에 잘 드러납니다.
적어도 요한의 복음서는 저자가 고유한 관점을 가지고 예수의 삶을 장엄하고 신중하게 해설하기 위해 쓴 듯하며, 단순한 일화 모음으로 보이는 것을 가능한 한 피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책들은 처음부터 경전으로서의 중요성을 내포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P107

그러나 ‘랍비 유대교 rabbinic Judaism라 불린 (차츰 유대교의 표준이 된 종파에서는 경전 본문이 보편적인 적용 가능성과 유효성을 지닌다고 믿었습니다. 미슈나Mishnah(랍비들의 가르침과 판정을 모은 것으로 기원후 2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를 보면 자신들의 윤리 규칙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서 본문을 인용합니다. 흥미롭게도 랍비 문헌 저자들은 오경못지않게 잠언도 많이 인용했습니다. 잠언이 어느 때나 유효한 본문들의 모음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 P122

복된 사도 바울은 요한의 선례를 따라 일곱 교회에만 편지를 썼다. ... 그러나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교회는 분명 하나다. 요한은 묵시록에서 일곱 교회에만 편지를 썼으나 사실상 모든 이를 향해 이야기한다.
- P124

테르툴리아누스Tertulian(160~225) 또한 골로사이인들을 라오디게아인들이라 불러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바울은 특정한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인을 염두에 두고 편지를 썼다고 주장합니다.
사도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모든 사람을 향해 썼기 때문에 제목은 중요하지 않다. - P124

그리스도교인들도 신약을 읽으며 이러한 해석을 적용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신약을 중시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자주 쓴 방법은 우의 allegory, 즉 본문의 표면적인 의미가사뭇 다른 무언가를 가리킨다고 보는 방법이었습니다. 가장유명한 예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e of Hippo(354-430)가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해석한 것입니다. 그는 이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사마리아인이 다친 사람에게 한 일은 곧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는일을 뜻한다고 보았습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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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와 요한의 복음서는 사도들이 쓴 것이라 하여 앞에 두고, 마르코와 루가의 복음서는 ‘아포스톨리키 apostolici,
즉 ‘사도들의 제자들‘이 쓴 것이라 하여 뒤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마르코는 베드로가 그에게 이야기한 것을 기록했으리라 추측되고, 루가는 바울과 동행했지요. 다시 말해 둘 중 누구도 예수를 직접보지 못했습니다).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복음서 가운데 사도가쓴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고대 세계의 모든 이는 마태오와 요한의 복음서를 사도들이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 P93

저술 연대를 추정하여 나열한 경우도 있습니다.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260~340)는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최초의 역사가인데, 저술 연대를 근거로 네 복음서를 우리에게 익숙한 순서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대로 나열했습니다. - P93

이 같은 현실에 대한 마르키온의 반대는 그의 계승자들을 거치며 잦아들었지만, 몇몇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네 개의 일관성 없는 복음서들보다 단일하고 균질화된 복음서가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잘 드러난 가장 유명한 예는 타티아누스Tatian의 저작입니다. 150~60년쯤 그는 『디아테사론』Diatessaron, 즉 ‘네 복음서 발췌 합본‘을 만들어 냈는데, 동방의 일부 교회는 이를 극찬했으며 네 편의 복음서라는 선집이 그 권위를 인정받은 뒤에도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이 복음서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불일치하는 내용을 모두 제거하고 모든 이야기와 가르침을한 책으로 통합한 ‘네 복음서 발췌 합본‘은 오늘날에도 몇몇그리스도교인들이 쓰고 있습니다.
- P100

는 것입니다. 고대 세계의 선집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다양했고 더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 P102

. 이를테면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직전 요르단 강 건너편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부족들에게 남긴 말임을 밝힙니다. 이는 처음부터 신명기가 특별한 권위를 지닌 책으로 의도되었음을, 단순한 재미를 주기 위한 책이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처음부터 신명기는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경전에 속할 만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자신이 경전임을 의식합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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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iah‘s prophecy lays out how the Messiah will take up our pain and sufferingand bring peace and healing.  - P57

He will be sentenced to death with the wickedand be buried in a rich man‘s grave even though He has done nothing wrong.
- P57

God will justify many people through Him. Afterwards, He will be given a placeof honor because He made intercession for sinners. - P57

When we read the story of Jesus‘ suffering and death, it may seem likethe Father and the Son were somehow at odds with each other whenJesus was on the cross.  - P58

Some might even think that the Father actedcruelly toward the Son by allowing Him to suffer and then abandoningHim.  - P58

But the key to seeing the good news in the tragedy of the cross isto have a right understanding of sin. Our sin is an affront to God andScripture clearly states that death is the only appropriate punishment.
- P58

But God laid our sins upon Christ and condemned sin in the body ofthe incarnate Son (Rom. 8:3).  - P58

The wrath of God belongs to both theFather and the Son and is ultimately aimed at destroying sin.
- P58

The good news of the gospel is that the cross secures the forgiveness ofour sins. But it does not end there.  - P58

Isaiah prophesies that the Messiahwill rise again from the dead, and He will see those whom He hassaved. Not only are our sins forgiven, but death itself will give way toeternal life!  - P58

The honor and glory bestowed upon Jesus are His rewardsfor completing the task for which the Father sent Him, and this is whyHe is worthy of the highest worship. - P58

 Jesus poured Himself out as asacrifice for our sins, so we offer Him everything we have from a heartof devotion and gratitude.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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