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와 요한의 복음서는 사도들이 쓴 것이라 하여 앞에 두고, 마르코와 루가의 복음서는 ‘아포스톨리키 apostolici, 즉 ‘사도들의 제자들‘이 쓴 것이라 하여 뒤에 배치하기도 했습니다(마르코는 베드로가 그에게 이야기한 것을 기록했으리라 추측되고, 루가는 바울과 동행했지요. 다시 말해 둘 중 누구도 예수를 직접보지 못했습니다).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복음서 가운데 사도가쓴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고대 세계의 모든 이는 마태오와 요한의 복음서를 사도들이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 P93
저술 연대를 추정하여 나열한 경우도 있습니다.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260~340)는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최초의 역사가인데, 저술 연대를 근거로 네 복음서를 우리에게 익숙한 순서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대로 나열했습니다. - P93
이 같은 현실에 대한 마르키온의 반대는 그의 계승자들을 거치며 잦아들었지만, 몇몇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네 개의 일관성 없는 복음서들보다 단일하고 균질화된 복음서가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잘 드러난 가장 유명한 예는 타티아누스Tatian의 저작입니다. 150~60년쯤 그는 『디아테사론』Diatessaron, 즉 ‘네 복음서 발췌 합본‘을 만들어 냈는데, 동방의 일부 교회는 이를 극찬했으며 네 편의 복음서라는 선집이 그 권위를 인정받은 뒤에도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이 복음서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불일치하는 내용을 모두 제거하고 모든 이야기와 가르침을한 책으로 통합한 ‘네 복음서 발췌 합본‘은 오늘날에도 몇몇그리스도교인들이 쓰고 있습니다. - P100
는 것입니다. 고대 세계의 선집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다양했고 더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 P102
. 이를테면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직전 요르단 강 건너편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부족들에게 남긴 말임을 밝힙니다. 이는 처음부터 신명기가 특별한 권위를 지닌 책으로 의도되었음을, 단순한 재미를 주기 위한 책이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처음부터 신명기는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경전에 속할 만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자신이 경전임을 의식합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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