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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올해는 작가들의 산문집이 많이 나왔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는 조지 오웰의 말처럼 산문은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경험과 시선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김영하의 산문은 그 점에서 믿을만 하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는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일상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깊이 생각하고 그것들을 정연하게 써내도록 스스로 강제하게 된다. 그렇게 적은 것을 다시 보고 고치는 것이 그 마지막이다. 이 순환이야말로 한 사회와 세상을 온전히 경험하는 방법이 아닐까.”
<보다>에서 김영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고심하던 20대 청년시절 부터 자신만의 개성과 문체로 독보적인 위치의 작가로 살아가는 최근까지의 경험과 생각들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사회상에 이르기까지,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과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유가 간간히 소개하는 영화와 함께 읽는 맛을 더해 준다.
이 책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정리했다.
‘나는 주어진 시간들의 진정한 주인이고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많이 소유하고 많이 여행하고 즐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 죽음에 대해 제대로 인식한 자만이 현재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잘 설계된 우회로(이야기)가 필요하다. 연극적 자아는 인간의 본성이고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부단히 변화하는 일상이다. 우리에게 자기실현적인 암시가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준비가 됐는가.’
주위의 중년들을 보면 대게 두 개의 분야로 관심이 좁혀진다. 여행과 건강. 이 둘은 마치 행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예상치 못한 돈이 생기면 무엇을 할 거냐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여행하겠다는 답이 많다. 또, 누구는 어디가 아프고 자신은 이러저러한 증상으로 고생 중인데 역시 건강 검진을 자주 해야 한다는 소리를 일상적으로 귀가 닳도록 듣게 된다. 여행과 건강의 공통분모는 매력적이고 활기찬 육체일 터인데 그러한 육체가 지향하는 ‘행복’은 현대에 강력한 신흥종교가 된 것 같다. 삶의 의미의 중력이 과연 외형적이고 과시적인 이러한 눈요기에 있겠는가. 우리의 시선을 좀 더 높이 멀리 깊게 던져봐야 한다. 가난하고 몸이 아파도 친구가 있고 신앙이 있어 행복한 사람이 있다. 암을 앓기 전보다 삶이 더 소중하고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책 속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에 대해 나오는데 딱 나 같은 사람이구나, 싶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피겨여왕 김연아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영화 <그래비티>는 사고로 우주 공간에 홀로 있게 된(게다가 얼마 전 딸을 잃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톤박사의 사투를 그린 이야기다. 그녀가 앓고 있는 우울증은 삶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죽음을 앞당기려는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동료들의 모습을 통해 그녀는 죽음은 죽음일 뿐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공허와 죽음 앞에서 그녀는 내면에 숨어있던 순수한 생의 의지와 삶에 대한 그리움을 끄집어 내게 된다. 생에 대한 의지를 연료삼아 시도한 지구로의 귀환은 성공한다. 우울함 속에서도 제대로 자신과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머지않아 그 우울에서 벗어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획일주의와 ‘무슨무슨‘ 열풍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거기에는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비교의식과 소비지향적인 삶의 패턴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지만 개인의식의 얄팍함과 철학(윤리학)이 없음이 한 몫 한다. 그러기에 “사람을, 세상을, 우리를, ‘다르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인생의 시간에 자주 브레이크를 걸고 쉼을 주는 시간 말이다. 지하철에서건 누구를 기다리는 시간이건, 어디서든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뭔가르 끄적이는 시간은 우리를 세상과 민감하게 연결시키는 통로가 될 것이다. 김영하의 <보다>가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보다’가 되는데 꽤 매력적인 모델이 될 것 같다. 앞으로 나올 <읽다>와 <말하다>도 기대된다.